삼국사기
Samguk sagi작가 | 김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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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 삼국사기 (三國史記) |
나라 | 고려 |
언어 | 중국 고전 |
제목 | 대한민국의 역사 |
장르. | 고대사, 상고사 |
발행일자 | 1145 |
삼국사기(한국어: 三國史記; 한자: 三國史記, 삼국사)는 삼국사기의 역사 기록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고대 한국 문인들의 문어인 고전 한문으로 씌어 있으며, 편찬은 고려 인종(재위 1122~1146)이 명하고 관직·역사학자 김부식(한국어: 김식식; 한자: 金金)과 후학들이 맡았다. 1145년에 완공된 이 책은 한국에서 한국 역사의 가장 오래된 연대기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문서는 국사편찬소에서 디지털화하였으며 한글로 된 현대 한국어 번역본과 중국어로 된 원문본으로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다.[1]
배경
이 절에는 아마도 독창적인 연구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2020년 8월) (이 과 시기 |
삼국사기를 편찬하는 과제("편찬")를 맡으면서 김부식은 역사의 많은 부분을 초기 역사기록에서 따왔기 때문에 '쓰기'보다 더 정확하다"는 과제를 떠맡으면서, 마치 중국 제국 전통에 대한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모형화하고 있었다. 마치 그가 중국의 선비들을 본떠 역사의 형식을 본떠서 만든 것처럼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구한(기원전 206년~기원전 24년)의 관료인 사마천의 일을 되짚어 듣고 있었다. 오늘날 위대한 역사학자의 기록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기원전 100년 경에 Sh morejì 史記이라는 좀 더 겸손한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암시적으로 김부식은 자신의 작품을 called史記, 즉 삼국사기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사기는 중국 쉬찌의 한국어 독서가 되었다.[2]
중국의 역사학 전통에서도 채택된 것은 표준 왕조사를 실록(봉기, 本語), 표(표, mon), 모노그래프(지, 志), 전기(열전, 列)로 나눈 고전적인 4부작이었다.
12세기 《삼국사기》 편찬 뒤에는 여러 가지 동기 요인이 있었다. 이것들은 대략 이념과 정치로 분류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요인은 역사학자가 말하는 김부식이 쓴 이 작품의 서문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 오늘날의 학자들과 고위 관료들 중에는 학식이 풍부하고 오행과 다른 철학적 논설을 상세히 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진과 한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무지하다. 이것은 참으로 한탄스럽다.[3]
이 인용문은 두 가지 분명한 동기를 밝혀낼 수 있다. 하나는 한국의 삼국시대에 관한 방대한 지식 격차를 메우는 것이었다. 고구려·백제·신라 각 3국은 각기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어 냈지만, 이러한 역사들은 계속되는 전쟁과 고구려·백제의 멸망, 그리고 기록의 분산으로 크게 소실되었다. 또 다른 동기는 한국 고유의 문인들을 토착 역사에서 교육시키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 그들에게 유교적 덕목을 보여주는 한국적인 모범을 제공하는 것이었다.[citation needed] 고려 중엽에는 왕조가 점점 유교화됨에 따라 특히 이것이 중요했다. (Lee 1984, 페이지 167 대상 (
그러나 그다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다른 요소들이 있었다. 중국 전통에서는 왕조사의 편찬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다. 왕조 역사는 후대 왕조에 의해 쓰여졌고 바로 그 글을 쓰는 행위는 후대 왕조가 전임 왕조로부터 통치권을 물려받았음을 보여주는 데 기여했다.[citation needed] 이런 맥락에서 삼국사기의 편찬은 고려왕이 의뢰한 공식 후원 사업이었으며, 편찬 담당자들이 중앙 관료의 승인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의 목적의 한 측면은 유교화된 관료사회의 학자들과 관료들을 그들의 토착유산에 교육시키는 것이었고, 유교적 미덕을 성취할 수 있는 토착적 잠재력이었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해 토속유산이 일차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은 삼국유산이 작품의 표면적으로 더 넓은 목적을 갖게 하고, 그것은 삼국(부여, 마한, 가야 등 경쟁국들이 삼국에 흡수된 것과 대조적으로)을 정통 지배계 혈통으로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한국의 gdoms, 그리고 따라서 고려 국가의 정통성과 위신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삼국지의 정당한 후계자로서.[citation needed] 이렇게 해서 그것은 정통 統 idea, 즉 "정통적인 계승 노선"의 사상을 새로운 왕조에게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145년 김부식이 제출한 추모비에는 이런 목적이 직접 명시되지 않았지만 취지는 분명히 파악됐다.[citation needed] 고려 인종이 김부식을 두드려 삼국사기를 편찬한 것은 바로 그런 의도로였다.[citation needed] 고려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집필을 통해 그 정통성을 확보하고 삼국지(三國之)로부터 '권위(權衛)'(또는 하늘의 명령)를 계승하기 위해 추구한 것은 제왕운기(帝王雲記)나 고려도경(高國道經)과는 달리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편찬자들이 통일신라를 강조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삼국 중 마지막 생존자로 발해를 무시했다.
내용물
《삼국사기》는 50권으로 나뉜다. 원래는 두루마리(권, 卷)에 각각 적혀 있었다. 다음과 같이 다시 도장한다.
신라의 기록
12개의 두루마리, 나기/실라봉기, 나기/라라, 羅//新本本語.[4]
- 01호 거서간혁거세, 차차웅남해, 이사금유리, 탈해, 파사, 지마, 일성
- 02권. 이사금 아달라, 벌휴, 내해, 조반, 첨해, 미추, 유례, 기림, 헐해.
- 03권. 이사금내물, 실성, 마립간눌지, 자비, 소지
- 04권. 마립간지증,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 제05권 선덕여왕, 진덕여왕, 태종무열왕
- 06권. 문무왕 - 1부
- 07권. 문무왕 - 2부
- 08권 신문왕, 효소왕, 성덕왕
- 09호 효성왕, 경덕왕, 혜공왕, 선덕왕
- 10권. 원성왕, 소성왕, 애장왕, 헌덕왕, 흥덕왕, 희강왕, 민애왕, 신무왕.
- 제11권. 문성왕후, 헌안왕후, 경문왕후, 헌강왕후, 헌강왕후, 정강왕후, 진성왕후.
- 12권. 효공왕, 신덕왕, 경명왕, 경애왕, 경순왕
고구려의 기록
10개의 두루마리, 여기/고려봉이, 여기/고려기, 麗紀/高句本本語.[5]
- 13권. 세이지왕 동명왕, 밝은 유리왕,
- 14권. 대무신왕과 민정, 모본,
- 15권. 태조대왕, 차대왕
- 16권. 신대왕, 고국천, 산상
- 17권. 동천왕, 중천, 서천, 봉상, 미천
- 18권. 고국원왕, 소수림, 고국양, 광개토, 장수,
- 19권. 문자왕, 안장왕, 안원왕, 양원왕, 평원왕,
- 20권. 영양왕, 영양왕
- 21권. 보장왕 - 1부
- 22권. 보장왕 - 2부
백제의 기록
6개의 두루마리, 제기/백제봉기, 제기/백記, 濟紀/百本語.[6]
- 23권. 온조왕(다이나믹 창시자), 다루, 기루, 개루, 초고
- 24권. 구수왕, 사반왕, 고이, 채계, 분서, 비류, 계, 근초고, 건구수, 침류
- 25권. 진사왕, 아신, 전지, 기신, 비유, 개로
- 26권 문주왕, 삼근, 동성, 무령, 성씨
- 27권. 와덕왕, 혜, 법, 무
- 28권. 의자왕
시간표
연표, pyo,, 3表 세 두루마리.
모노그래프스
지, 지, 지, 지, 지 9 두루마리.[7]
- 32권. 의식과 음악
- 33권 차량, 의류 및 주거지
- 34권. 신라의 지리
- 35권. 고구려의 지리와 경덕왕이 부여한 새로운 이름
- 36권 백제의 지리 및 경덕왕이 부여한 새로운 이름
- 37권 지리(이 섹션은 https://web.archive.org/web/20160305201052/https:///www.khaan.net/history/samkooksagi/samkooksagi.htm)에서 비어 있음
- 38권. 신라 관공서.
- 39권. 신라 관공서.
- 40권. 신라 관공서.
전기
열전, 열전, 열,, 列傳.[8]
- 44권. Eulji Mundeok 을지문덕, Geochilbu 김거칠부 , Geodo 거도, Yi Sabu 이사부, Kim Immun 김인문, Kim Yang 김양, Heukchi Sangji 흑치상지, Jang Bogo 장보고, Jeong Nyeon 정년, Prince Sadaham 사다함공
- 45권 Eulpaso 을파소, Kim Hujik 김후직, [nog zhēn] 祿真, Milu 밀우, Nyuyu 유유 纽由, Myeongnim Dap-bu 명림답부, Seok Uro 석우로, Park Jesang 박제상, Gwisan 귀산, Ondal 온달
- 47권 화랑. Haenon 해론, Sona 소나, Chwido 취도(驟徒), Nulchoi 눌최, Seol Gyedu 설계두, Kim Ryeong-yun 김영윤(金令胤), Gwanchang 관창, Kim Heum-un 김흠운, Yeolgi 열기(裂起), Binyeongja 비령자(丕寧子), Jukjuk 죽죽, Pilbu 필부(匹夫), Gyebaek 계백
- 48권 공훈. Hyangdeok (son), Seonggak (son), Silhye 실혜 (實兮) (poet), Mulgyeja 물계자 (soldier), Teacher Baekgyeol 백결 선생 (music), Prince Kim 검군, Kim Saeng 김생 (calligrapher) and Yo Gukil, Solgeo 솔거 (painter), Chiun (daughter), Seolssi (daughter), Domi (wife).[9]
- 49권 넘어지다. Chang Jori 창조리, Yeon Gaesomun 연개소문
사료
《삼국사기》는 구삼국사(九三國史, 삼국유사)와 화랑세기(華랑세기, 화랑실록) 등 초기 역사기록에 기초하여 쓴 것으로, 이들 대부분은 더 이상 존속되지 않는다.
외부 출처와 관련해서는 712년, 720년에 각각 발매된 《고지키》, 《고대 사물의 기록》, 《니혼쇼키》, 《일본의 연대기》와 같이 일본 연대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김부식이 이들을 몰랐거나 일본 소식통을 인용하는 데 경멸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해 그는 관대하게 중국 왕조 실록 그리고 심지어는 비공식적인 중국 기록, 가장 두드러지게는 Weishu(魏書, 책을), Sanguo Zhi(三國志), 진 슈(晉書), 지우 Tangshu(당나라의 舊唐書, 오래 된 역사), 신 Tangshu(당나라의 新唐書, 새로운 역사), 그리고 자치 통감(정부에서 지원을 資治通鑑, 종합적인 거울)에서 솟아 있다.[표창 필요한]
비판
김부식은 신라 태생의 귀족으로, 비록 그 자신이 불교에 대한 실천적 불교 신자였지만, 통치의 지도원리로서 불교보다 유교를 지지하였고, 중국과의 갈등을 막고 고귀한 (사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선호하였다.[citation needed] 따라서 그의 배경과 성향이 삼국사기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citation needed]
형식적으로 고구려와 백제는 구 신라와 동등하게 취급된다. 세 사람 모두 아육(아육, 我國)과 그 세력을 각각 '우리 민족'과 '우리 군대'를 뜻하는 '아병(아육, ,,)'으로 지칭한다. 일례로 21권(고구려의 보장)에서 김부식은 안시성 포위전에서 당 태종 황제를 무찌른 고구려의 사령관 양만춘을 칭송하고 그를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의 경우 대상자의 대다수가 신라 출신(68%)이고, 신라의 두루마리는 충성과 용맹의 찬란한 예들로 채워져 있다. 어쨌든 통일전쟁 때 기록물이 파괴된 패전국 신라보다 승전국 신라의 문서에 접근하는 것이 더 쉬웠다.[10]
일부 한국 역사학자들은 중국과 옛 신라에 대한 편견을 들어 삼국사기에 수록된 기록에 대해 비판해 왔다. 그중에서도 신채호 씨. 맥브라이드에 따르면 [11]신채호의 논문은 다음과 같다.
- 삼국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고구려 장군 을지 먼데크가 612년 수나라 황제 양티의 거대한 침략군을 살수(청천)강의 함정으로 유인해 화려한 승리를 공학적(그러나 44권 한 장만 받아도 좋다)이었다.
- 오히려 41권부터 43권까지 받을 자격이 있는 대웅 김유신은 지혜와 용맹을 타고난 유명한 장군이 아니라 독수리처럼 교활하고 맹렬했던 정치가였다. 은밀한 계략으로[12] 이웃나라를 괴롭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생애의 큰 장점은 전쟁터에서 싸운 것이 아니었다.
- 게다가 삼국사기 편찬자들은 그의 사소한 승리를 과장하면서[13] 김씨의 손실을 하찮은 승리로 바꾸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모든 구분은 유교에 대한 엄격한 집착과 삼국시대에 너무나 명백한 무신(武神)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의 죄악화와 고구려의 옛 만주 영토를 잃은 모든 것.
그러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맥브라이드와[14] 함께) 주목할 수 있다.
- 왕이 말하였다. `당나라 군대가 우리의 원수를 멸망시켰는데, 반대로 우리가 그들과 전쟁을 하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느냐 ?'
- 유신은 '개는 주인을 무서워하지만 주인이 다리를 밟으면 개가 주인을 물 것이다. 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빠져나갈 수 없을까? 대왕께 허락해 주시기를 청한다.'(42권)
그리고 고려의 권력자와 계급의 복잡성에 대한 사대주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은 전기들이 결론에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김기중과[15] 함께) 주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죽죽 전기(47권)에서는 평신도 죽죽 자신의 용맹과 애국심보다는 신라에서도 최고 귀족인 김품석 왕자의 비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쨌든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한국사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작품과 그 불교 상대인 삼국유사가 이 시기의 유일한 한국 출처일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는 많은 양의 정보와 세부 사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5권과 36권에 제시된 번역표는 구 고구려어의 잠정적인 재구성에 사용되어 왔다.[16]
참고 문헌 목록
원시 텍스트
- "삼국 사기 (Samguk Sagi)" (in Korean). KHAAN. 1145.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6-03-05. Retrieved 2015-09-21.
- "Full text on Wikisource". Retrieved 2018-07-18.
서양어 번역
삼국사기의 서양어 전문 번역본은 1959년과 2001년 두 파트로 등장한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박이 번역한 러시아판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일부가 다양한 영어책과 기사에 등장했는데, 특히 다음과 같은 점이 눈에 띈다.
신라본기 전체의 번역
- Shultz, Edward J.; Kang, Hugh H.W.; Kane, Daniel C. (2012). 'The Silla Annals of the Samguk Sagi. Seongnam-si: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Press. p. 468. ISBN 978-8971058602.
고구려봉기 전체의 번역
- Shultz, Edward J.; Kang, Hugh H.W.; Kane, Daniel C.; Gardiner, Kenneth H.J. (2011). 'The Koguryo Annals of the Samguk Sagi. Seongnam-si: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Press. p. 300. ISBN 9788971057919.
백제 봉지 통역
- Best, Jonathan (2007). A History of the Early Korean Kingdom of Paekche [Baekje], together with an annotated translation of The Paekche Annals of the Samguk Sagi. Harvard East Asian Monographs. Vol. 256.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p. 555. ISBN 978-0674019577.
격리된 번역
- Byington, Mark E. (1992). "Samguk Sagi Volume 48 Biographies Book 8" (PDF).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Royal Asiatic Society. 67: 71–81.
- 가디너, 케네스 H.J. 1982. "고구려의 전설 (I-II): 삼국사기, 고구려의 연보." 한국일보, 22(1) : 60-69, 22(2) : 31-48. [고구려 봉기 1권 번역]
- 제이미슨, 존 찰스 1969. "삼국사기 및 통일전쟁."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박사논문 [신라본기의 6, 7책과 전기 11권의 번역, 주로 신라 사람 들이다]
- 이, 소은, 신정수. 2018. "'삼국사기' 44장, 45장: 을지문덕 등의 전기[sic] 주석 번역" 한국학 검토, 21(2): 165-145. [전기섹션의 44권, 45권]
- 나, 상훈, 유진숙, 신정수. 2018. "삼국사기 41장, 42장, 43장: [sic] 김유신 전기 주석 번역." 한국학 리뷰, 21(1) : 191-262.
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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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Kichung (1996). "Chap 4. Notes on the Samguk Sagi and Samguk yusa". An Introduction to Classical Korean Literature. Routledge. p. 256. ISBN 978-1563247866.
- Lee, Peter H. (1992). Sourcebook of Korean Civilizatio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p. 750. ISBN 978-0231079129.
- Lee, Ki-baik; Wagner, Eward W. (1984). A new History of Korea. Harvard University Press. p. 518. ISBN 978-0674615762.
- Sin, Chaeho (1931). "조선상고사" [History of Ancient Korea, 2 vols]. Reprinted in 단재 신 채호 전집 [Collected works of Danjae Sin Chaeho] (in Korean). ed: 단재 신 채호 전집 편찬 위원회 (Compilation Committee), Seoul, Munjangsa, 1982.
퍼블릭 도메인 연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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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te 저널은 필요로 한다.journal=
(도움말)
완료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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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동아시아 역사는 https://www.eastasianhistory.org/archive에서 볼 수 있다.
- 심, 승자. "삼국사기 지명 속의 식물과 동물들" 1985년 4월 10~15일 제9차 연례 회의의 진행에서 유럽한국학협회. 르아브르: 1985년 유럽한국학협회.
- 솔로비오프, 알렉산더 V. "김부식 삼국사기: 한국 문화에 대한 12세기 인간의 관점" 한국 문화사의 주요 이슈: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3차 한국학 국제회의의 1996년 12월 17~20일. 모스크바: 국제한국학센터, 1997:71-74.
- 이, 종항. 『삼국사기』의 '왜'의 실체에 대하여. 한국일보 17:11 (1977년 11월) : 51-59.
참고 항목
참조
위키미디어 커먼즈에는 삼국사기 관련 매체가 있다. |
Chinese Wikisource는 이 기사와 관련된 원문을 가지고 있다. |
- ^ "삼국사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Retrieved 3 January 2022.
- ^ 1996년, 페이지 62
- ^ 1992년 페이지 464
- ^ Societas Koreana. "TOC of Silla's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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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벡위드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