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왕

Sinmu of Silla
신무왕
한글
신무왕
한자
神武王
수정 로마자 표기법신무왕
매쿠네-라이샤워신무왕
출생명
한글
김우징
한자
金祐徵
수정 로마자 표기법김우징
매쿠네-라이샤워김우징

신라 신무(재위 839년, 사망 839년)는 한국 신라의 45대 군주였다. 그의 치세는 839년 음력 4월에서 7월 7일까지만 지속되어 주 역사상 가장 짧은 치세였다.

신무는 원성왕(재위 785–798)의 후손이자 흥덕왕(재위 826–838)의 사촌인 상대등 김균정(?–836)의 아들이었다. 836년 흥덕왕이 사망하자 김균정과 그의 조카인 김제령(?–838) 사이에 후계 싸움이 일어났다. 우징과 그의 추종자 김양은 견정을 지지했고, 김명과 김리홍은 제령 곁에 섰다. 제릉 일행은 결국 승리를 거두었고 견정은 살해되었다. 그 후 836년 김제룡이 희강왕으로 즉위하였다.

양용은은 도망쳤지만 우징은 도망치지 않았다. 신왕에게 즉시 사면되었지만, 곧 상대응이 된 명씨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837년 우징은 도망쳐 청해진에서 장보고에게 몸을 맡겼다. 그러나 1년 후, 명씨는 희강왕에 대한 반란을 선동하여 왕의 측근 몇 명을 죽였다. 패배에 직면하여 희강왕은 자살했다. 이어 김명이 민애왕으로 즉위했다. 당시 수도 근처 산에 몸을 숨기고 있던 김양은 이 소식을 듣고 군대를 일으켜 청해진으로 갔다. 그는 우징에게 이러한 사건들을 말하고 복수를 하도록 설득했다. 우징은 장보고에게 나라의 혼란을 틈타 스스로 왕으로 삼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장보고는 이에 동의하고 친구 정련도 우징을 따르도록 했다. 839년 우징과 그의 추종자들은 대구 전투에서 민애왕의 군대를 격파하고 재빨리 수도로 진격하였다. 그러자 왕의 측근들은 모두 왕을 버리고 달아났기 때문에 왕은 왕궁 근처의 별장에 몸을 숨겼다. 군인들이 궁으로 들어와 왕을 찾았다. 마침내 그들은 별장에서 왕을 발견하고 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였다. 김리홍도 전사했다. 그 후 우징은 신무왕으로 즉위했다.

3개월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나 신라 수도 경주 제형산에 안장되었다. 또한 신무는 죽은 리홍이 자신에게 화살을 쏘는 것을 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신무는 화살이 그를 맞자 출발과 함께 깨어났지만, 상처는 실제 그대로 남아 점점 더 심해져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가족

  • 할아버지:혜충왕자(惠忠王子)(750–791/792년)
  • 할머니: 김씨 가문의 성목왕후(成木王后, 成木王后)
  • 아버지 : 김균중(金 gy中, 사후에 추종(秋宗)으로 호칭함
  • 어머니: 박씨 가문의 부인 박씨는 사후에 헌목왕후( named木王后)라고 이름 지었다.
  • 아내:
    • 정계왕후(正溪王后)

참고 항목

참조

신무왕
사망: 839년
섭정 직함
선행자 신라의 왕
신라
839
성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