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
Gyeongsun of Silla경순왕 敬順王 경순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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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 | |
군림하다 | 927–935 |
대관식 | 927 |
전임자 | 경애왕 |
후계자 | 왕조 폐지 (고려 태조왕) |
태어난 | 896 통일신라 (라이터신라) |
죽은 | 978년(81~82) 고려 왕국 |
배우자 | 죽방 아가씨 낙랑공주 |
이슈 그 중에서도... | 마우이 황태자 헌숙왕후 |
집 | 김의 집 |
아버지 | 김효종 |
어머니 | 계아공주 |
종교 | 불교 |
경순왕 | |
한글 | 경순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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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敬順王 |
수정 로마자 표기법 | 경순왕 |
매쿠네-라이샤워 | 경순왕 |
출생명 | |
한글 | 김부 |
한자 | 金傅 |
수정 로마자 표기법 | 김부 |
매쿠네-라이샤워 | 김뿌 |
한국의 군주 |
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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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이후) |
신라 경순(896~978)은 한국 신라의 56번째이자 마지막 통치자였다.
전기
문성왕의 6대손인 그는 계아공주가 효공(孝公)의 아들로 헌강왕의 딸이었다. 그의 아내는 죽산공원 일가의 죽방부인, 장남은 마우이 왕세자, 막내 아들은 범공이었다.[1]
경순은 927년 후백제군이 경주를 축출한 후 후백제왕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이 나라는 이미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경순은 935년 고려 태조를 위해 마침내 퇴위할 때까지 옛 신라 영토의 아주 작은 잔재를 다스렸다. 태조의 딸 난랑공주(南 and公主)와 재혼하여 경주의 사심관(司心館, 검사장)에 임명되어 고려 사심관 제1호(司心官)가 되었다. 그는 여생을 고려 수도(현대 개성) 근처에서 살았다.[2]
978년 사망하였고, 묘는 대한민국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있다.[2]
경순의 아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마우이 왕세자는 아버지의 고려 복종을 반대해 금강산의 은둔자가 되었다고 한다.[3]
가족
- 아버지:신라 신흥왕 김효종([4]金孝宗)
- 할아버지: 신라 의흥왕(의왕)[5]
- 어머니 : 경주 김씨 문중의 계아대공주(계아大公主 계계)
- 할아버지: 신라 헌강왕 (? – 886) (신la 헌왕)
- 부군 및 각 호:
- 죽산박씨(죽산박씨)의 죽방부인( (죽人 박씨)
- 마우이 황태자(마마의 자)
- 김덕지, 범공(김德之)
- 김명종, 영분공(永bun公)
- 경주 김씨 일족 헌숙왕후(헌숙왕王后, 숙씨))
- 개성왕씨 낙랑공주(낙rang公主, 낙씨)[6]
- 개성왕씨 왕공주(王公主, [9]王公主) – 문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