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담화

Farewell Discourse
예수는 1308–1311, 두치오마에스타에서 남은 11명의 제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신약성경에서 요한복음 14~17장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밤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만찬이 끝난 직후 제자들 중 11명에게 베푸는 작별 담론으로 알려져 있다.[1]

그 담론은 일반적으로 뚜렷한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 먼저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아버지께로 갈 것이며, 성령을 보내 제자들을 인도할 것이라고 말한다.[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과 그의 아버지 사이의 사랑의 통합의 표현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이,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라는 새로운 계명을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발현되는, 성령의 핵심 주제다.[3]

담론의 다음 부분에는 복음서의 제자양식을 바탕으로 예수를 포도나무(세상의 생명의 근원)로, 제자들을 가지로 위치시키는 참된 포도나무우화가 담겨 있다.[4][5] 포도당은 다시 제자들의 사랑을 강조하지만, 예수님은 곧 닥칠 박해를 제자들에게 경고한다. "세상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그들이 당신보다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기억하라."[1]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을 하였으니, 너희가 내 안에 평화가 깃들도록 하여라. 이 세상에서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 나는 세상을 극복했다." 요한 16장 33절

담론의 마지막 부분(요 17:1-26)에서 예수님은 그의 추종자들과 다가오는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이것은 복음서 중 어느 복음서에서도 예수의 가장 긴 기도로서 고별기도 또는 고승기도로 알려져 있다.[6][7] 기도의 핵심 주제는 아버지 찬양과 사랑을 통한 제자들의 단결 청원이다.[2] 예수님은 아버지께 그의 추종자들이 "우리 모두가 하나이듯 하나 될 수 있다"고 기도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이 그 안에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있을 수 있다"[2][6]

구조 및 개요

고별 담화 말기부터 요한 17:23–24를 포함하는 파피루스 108 (2세기 또는 3세기)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는 더 크고 획일적인 단위로 볼 수 있지만, 13장의 대부분은 작별을 위한 준비로 볼 수 있고, 17장의 고별기도는 그 결론으로 볼 수 있다.[8][9]

담화는 13:31–38(유다가 마지막 만찬을 떠난 직후)에 선행되는데, 예수는 남은 열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신명령을 내리고 곧 십자가에 못박히는 동안 베드로가 자신을 아는 것을 부정하는 것을 예언한다. 담론은 유다의 출발을 통해 문자 그대로의 정화(발 씻기)와 제자 공동체를 비유적으로 정화한 후에 시작된다.[10]

담화는 네 가지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6][11]

  • 제1차 담화: 14:1~31, 이 부분의 주제는 출발과 귀환, 평화와 기쁨이며, 제3차 담화와 비슷하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되 제자들을 위해 "복서자"를 보내실 것이다.
  • 두 번째 담화: 15:1–17. 이 부분은 '넝쿨'이라고도 불리며 예수의 사랑과 예수가 어떻게 공동체의 생명의 근원이 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를 끝으로 다음 섹션에서는 세계의 증오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 세 번째 담화: 15:18–16:33. 이 섹션에서는 예수의 출발과 제자들에게 다가올 컴포터를 다시 다루고, 예수의 사랑과 세상의 증오심을 대조한다.
  • "배서 기도": 17:1–26. 여기서 예수는 제자들과 추종자 집단을 위해 기도할 때 아버지께 다섯 가지 구체적인 탄원서를 제출한다.[6]

그러나 이 4부 구조는 학자들 사이에 보편적인 합의의 대상이 아니며, 때때로 3부는 요한복음 16장 시작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가정한다.[2] 일부 학자들은 15장과 16장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3부 구조를 사용한다.[4]

'내가 너희에게 한 이런 말들'이라는 말은 담화 내내 여러 번 일어나며, 예수님이 하신 작별의 말을 잊지 말 것을 강조한다.[12] "내가 아직 너와 함께 있는 동안"이라는 문장은 또한 주어진 최종 지시사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2]

이 담론에는 그리스도론적 내용이 풍부하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세상이 있기 전' 아버지와 가졌던 영광을 언급할 때 요한복음 17장 5절에서 '예수의 전존'을 반복한다.[13]

담화의 네 가지 요소

1부: 당신에게 주는 나의 평화

노틀담 대성당, 축복을 비는 예수상

여기의 세 가지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2]

  •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서 그와의 신성한 관계를 다시 다짐하시겠다고 (14:1–14)
  • 사랑의 계명과 성령의 도착(14:15–24)
  •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고 제자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안심시켜 주신다(14:25–31)

이 파트의 시작 부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로 가겠다고 말하여 제자들이 그의 출발을 불안해하게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아버지 집에 가서, 그들을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여 주실 것이며, 그들이 그 길을 아실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셨다.[10] 요한복음 14장 6절의 성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길이다. 진리다. 그리고 삶이다. 아무도 아버지께로 가지 못한다. 그러나 나 때문에 오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를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가르침의 일부분으로 삼았으며, 사도 베드로4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10]

[구원] `다른 어느 것에도 구원이 없다. 하늘 아래 다른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가운데서도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 곳에도 없다.'

예수님을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밝히기 위해서입니다.[10] [예수께서 요한복음 14장 7절 9절]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7절 9절에서 아버지와의 단결을 주장하십니다.[14]

"나를 알면 너도 나의 아버지를 알게 될 거야." "나를 본 사람이 아버지를 본 적이 있을 거야."

요한복음 14장 11절의 성명은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내 안에 아버지"는 예수와 아버지의 특별한 관계를 더욱 주장하고 있다.[10]

요한복음 14장 26절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이라는 성명은 요한복음 속 '보송하는 관계'의 틀 안에 있다.[15] 요한복음 9장 4절(그리고 14장 24절)에서 예수는 아버지를 "나를 보낸 자"라고 지칭하며, 요한복음 20장 21절에서는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처럼, 그렇게도 너를 보내라"고 명시하고 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 예수께서도 영을 보내신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겠다. 나의 증인이 될 것"[15] 요한복음에서 아버지는 결코 보내지지 않으며 그는 예수와 성령의 "발신자"이다. 성령님은 결코 보낸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와 예수님이 보낸 것이다(그러나 필리오케 논쟁 참조).[15]

14장 27절의 예수의 평화의 예수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여 정치적 "세계 평화"와 대조를 이룬다.[15]

"내가 너와 함께 떠나는 평화, 나의 평화, 내가 너에게 주는 평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주는 평화"

코이스틴버거는 이것이 당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제정한 팍스 로마나 같은 세속적인 평화에 대한 시도와 예수의 '천국의 평화'를 대조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말한다.[15] 요한복음에서는 평화(그리스어로 에레네)라는 말을 사용하는 일이 드물고, 고별담론(16:33)의 다른 한 경우와는 별도로 요한복음 20장 19~26절에서 부활한 예수만이 사용한다.[16]

2부: 나는 포도나무, 너는 나뭇가지다.

16세기 그리스도의 우상인 그리스도의 포도나무

이 부분은 예수를 공동체의 생명의 근원으로서 묵상하는 것으로 복음서의 제자성 양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4][5]

처음에 예수님은 "나는 진정한 덩굴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가르침을 언급하기 위해 "넝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4] 제자들(그리고 따라서 공동체)은 덩굴에 의존하는 가지를 가리킨다.

나는 넝쿨이고, 너는 나뭇가지다. 나와 내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나와 같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와는 별개로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요한복음 15장 5

요한복음 15장 9절~10절의 구절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아버지와 예수의 관계와 유사하다.[5]

"아버지가 날 사랑하셨듯이 나도 널 사랑했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 것처럼 내 계명을 지켜라"

담화 후반에는 요한복음 17장 18절에도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데, 요한복음 17장 18절에도 예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듯이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주셨다'는 내용이 나온다.[10]

이러한 제자 의식의 패턴은 요한복음 10:1-21에서 복종을 통해 "그의 삶을 내려놓고 있다"는 굿 셰퍼드 가르침을 다시 강조한다.[5][17]

그리고 나서 그 가르침의 주제는 예수를 따르는 것은 결실을 맺게 하고, 시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4] 그리고 예수는 이제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내가 명령한 대로 하면, 내 친구야." – 존 15:14

담론의 이 구성 요소는 다시 15:17에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런 것들,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리라는 것"[4]이라는 사랑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끝난다.

3부: 세상이 당신을 싫어한다면

작별 담화에서 인용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 "세상에는 고난이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18절–16절:3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갈등과 증오를 준비시켜 주셨다. 예수 또한 역경에 직면했음을 상기시켜 주셨다.[1]

「세상이 당신을 싫어했다면, 전에 나를 미워했던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들은 명분도 없이 나를 미워했소.」

제자들에게 오는 박해를 경고하며,[1]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나를 핍박하면 그들도 너를 핍박할 것이다."

이것은 다시 예수와 그의 제자들 사이에 유사성을 끌어낸다. 앞서 담화에서 그렸듯이 말이다.[4] 요한의 첫 번째 서간(3:13)에서 형제들은 다시 이것을 상기한다: "세상이 당신을 부화시킨다면, 형제자매 여러분".[4]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23절에서 다시 평행선을 그렸다.

"나를 부화시킨 자는 아버지도 부화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어 그의 증인을 받들게 하시겠다고 확신시켜 그들을 위로하신다.[1]

"그러나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내어 너희 아버지에게서 진리의 영을 너희에게 보내어 줄 컴포터가 오면, 그는 나의 증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성령을 떠나지 않으면 도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이 세상에서 그의 일의 계속은 성령에 의해 수행될 것임을 나타낸다.[18]

예수께서는 또한 그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의 제자들을 확신시키시며, 또 다시 유사함을 이끌어 내신다.[4]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고 믿었으므로, 아버지 자신도 너를 사랑한다."
"세상에는 고난이 있다. 그러나 크게 기뻐하라. 나는 이 세상을 이겨냈다."

이러한 진술이 있은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한 일련의 기도를 시작한다.

4부: 이별의 기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예수

요한복음 17:1-26은 다가오는 교회를 위한 중보라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고별 기도 또는 대제사장 기도라고 알려져 있다.[6][19] 그것은 복음서에서 예수의 가장 긴 기도문이다.[7] 담화의 초기 부분은 제자들에게 전달되는 반면, 이 마지막 부분은 예수가 눈을 하늘로 돌리고 기도하는 것처럼 아버지께 이야기한다.[6]

기도는 예수의 사역, 그의 추종자들에게 마지막 지시의 끝, 그리고 그의 '열정'의 시작에 독특한 시기에 이루어진다.[7] 기도가 일단 끝나면 예수님의 '열정'과 '지상의 삶'의 종말의 사건들이 다소 빨리 펼쳐진다.[7] 기도에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지상의 사역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아버지께 기도함으로써 아버지께의 완전한 의존을 반복한다.[7]

기도는 예수가 아버지의 미화를 탄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 일이 완성되어 제자들과 추종자들의 공동체의 성공을 위한 중개를 계속하고 있다.[6]

기도의 핵심 주제는 아버지의 찬양이다. 1부에서 예수는 아버지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따라서 그것을 제자들에게 간접적으로 반복한다.[2]

그리고 그들의 관계의 본질을 반영하여,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아버지께서 요한 17장 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영생의 주제를 언급하시면서, 지상의 사역에서도 그러하셨듯이 아버지를 미화하셨듯이, 아버지를 미화시켜 달라고 요청하십니다.[2]

"그리고 이것은 영원한 삶이며, 그들은 오직 하나뿐인 진정한 신을 알아야 한다."

고별기도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청원으로 구성된다.[6]

  • 17:1–5: 작품 완성을 바탕으로 미화 청원
  • 17:6–10: 제자들을 위한 탄원서
  • 17:11–19: 세상에 '자신'의 보존과 신성화를 청원한다.
  • 17:20–23: "자신의"의 단결을 청원한다.
  • 17:24–26: 자신과 "자신"의 결합을 청원한다.

마지막 두 개의 청원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는 단결을 위한 것이다.

"나는 네가 내게 준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고, 그들이 우리처럼 하나 되게 해주었다." – 요한 17:22
"나는 그들에게 네 이름을 알려 주었고, 그것을 알릴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사랑이 그 안에 있을 것이며, 내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 요한 17:26

마지막 탄원서는 예수의 추종자들과의 영원한 단결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2]

바리새파에게 고발당한 예수(오른쪽)는 최후의 만찬 다음 날, 두치오에게 고발당했다.

요한복음 17장 6절과 요한복음 17장 26절의 '시 이름'에 대한 언급은 기독교에서 신의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기독교의 가르침(예: 알렉산드리아의 키릴)에서는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와 같이 충실한 "그의 이름을 믿는 것"에 대해 드러난 "진실성"의 전체 체계를 나타낸 것으로 보여 왔다.[20][21]

역사성

예수세미나요한복음 14장 30절~31절은 결론을 나타내고, 그 다음 세 장은 나중에 본문에 삽입되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주장은 고별 담론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고 간주하고, 그것이 예수가 죽은 후 구성되었다고 가정한다.[22] 마찬가지로 스티븐 해리스도 그 담론이 시놉틱 복음서에는 없고 요한 복음서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그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23] 그러나 헤르만 리더보스와 같은 학자들은 요한복음 14:30–31을 단지 그 부분만을 담론의 '임시 결말'로 보고 전체 담론의 결말은 아니다.[12]

페르난도 세고비아는 담론이 원래 14장에 불과했고, 나머지 장들은 나중에 추가됐지만 게리 M. 버지는 작품의 전체적인 신학적, 문학적 통일성을 감안할 때 그러한 주장에 반대하며, 담론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주제, 그리고 자신의 보살핌과 같은 복음 전체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24]

2004년 스콧 켈럼은 고별담론 전체의 문학적 통합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발표하여, 그것이 한 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요한복음 내부의 구조와 배치는 그 나머지 복음서와 일치한다고 진술하였다.[9][25]

참고 항목

참조

  1. ^ a b c d e 바이 게일 R. 오데이, 수잔 하이렌 2006 ISBN978-0-664-25260-1, 15장: 고별 담화, 페이지 142-168
  2. ^ a b c d e f g h i 요한복음: 주디스 슈베르트 2009 ISBN 0809145499 페이지 112–127
  3. ^ 리차드 A의 예수를 흉내내는 것. 버리지 2007 ISBN 0802844588 페이지 301
  4. ^ a b c d e f g h i Reading John: Charles H의 4번째 복음에 대한 문학과 신학적 논평 탈버트 1999 ISBN 1573122785 페이지 219–229
  5. ^ a b c d 리차드 롱게네커 1996 ISBN 0802841694 페이지 85-87에 의한 신약성서의 제자선정 패턴
  6. ^ a b c d e f g h 헤르만 리더보스 1997 ISBN 978-0-8028-0453-2 존의 복음서: 546-564
  7. ^ a b c d e by Andreas J. Köstenberger 2004 ISBN 080102644X 페이지 482
  8. ^ John by Andreas J. Köstenberger 2004 ISBN 080102644X 페이지 419
  9. ^ a b L. Scott Kellum 2004 ISBN 0567080765 페이지 1-6
  10. ^ a b c d e f John by Andreas J. Kostenberger 2004 ISBN 080102644X 페이지 424–441
  11. ^ 요하네스 뷰틀러, 2001년 로버트 톰슨 포트나, 톰 대처, 루이스빌 2001 ISBN 978-0-664-22219-2페이지 165–174가 요한나인 전통의 "요한나인 이별 담론 속의 시놉틱 예수 전통"
  12. ^ a b c 헤만 리더보스 1997 ISBN 978-0-8028-0453-2 페이지 510-512에 의한 요한의 복음서
  13. ^ 2002 ISBN 3-16-147789-8페이지 233
  14. ^ 내가 누구라고 그래?: 잭 딘 딘 킹스베리, 마크 앨런 파월, 데이비드 R의 그리스도학에 관한 에세이. Bauer 1999 ISBN 0-664-25752-6 페이지 246–251
  15. ^ a b c d e John by Andreas J. Köstenberger 2004 ISBN 080102644X 페이지 442
  16. ^ 1, 2, 3 존 by Robert W. Yarbrough 2008 ISBN 0801026873 페이지 336
  17. ^ 생명의 말씀: 크레이그 R의 요한복음 신학 코에스터 2008 ISBN 0802829384 페이지 196
  18. ^ by Andreas J. Kostenberger 2004 ISBN 080102644X 페이지 470
  19. ^ 예수와 그의 소유: 다니엘 B의 요한복음 13-17에 대한 논평. 스테빅(2011) ISBN 0802848656 페이지 217
  20. ^ Arthur W. Pink(2007) ISBN 1589603753 페이지 23–24
  21. ^ Joel C의 John 11-21 (Ancentive Christian Assemption on Sorth) Elowsky(2007) ISBN 0830810994 페이지 237
  22. ^ 펑크, 로버트 W, 로이 W. 후버, 그리고 예수 세미나. 다섯 복음서. 하퍼산프랑시스코 1993. "소개", 페이지 1~30.
  23. ^ 해리스, 스티븐 L 성경의 이해 팔로 알토: 메이필드. 1985. "존" 페이지 3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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