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선왕후

Queen Inseon
인선왕후
인선왕후
조선왕후
테뉴어1659년 3월 23일 – 1674년 3월 19일
전임자다우거 자우이 왕후
후계자현렬왕후
조선왕후
테뉴어1649년 6월 17일 – 1659년 3월 23일
전임자장렬왕후
후계자명성황후
조선의 왕세자비
테뉴어1645 – 1649년 6월 17일
전임자민회 황태자비
후계자김황공주
태어난1619년 2월 9일
경기도 안산, 조선왕국
죽은1674년 3월 19일 (1674-03-20) (55세)
회상관, 경덕궁(경희궁), 조선 한성
매장
영릉
배우자효종 이호
이슈숙신공주
의순공주(입양)
수칸공주
익명의 왕자
숙명공주
이연, 현종
숙휘공주
익명의 왕자
숙정공주
숙경공주
사후명
효숙경렬명헌인선왕후 孝肅貞範敬烈明獻仁宣王后
장덕수
아버지장유
어머니안동 김씨 영가 내조

덕수 장씨 문중의 인선왕후(한글: 인신왕후 장장, 한자: 仁臣王后, 1619년 2월 9일 ~ 1674년[1] 3월 19일)는 효종 이호의 처와 왕비에게 추증된 사후 이름이다. 그녀는 1649년부터 1659년 남편이 사망할 때까지 조선의 왕비였으며, 그 후 효숙왕후(孝 queen王后, 효uk大王后)로 추대되었다. 그녀는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최초의 조선 왕비였다.

전기

초년기

미래의 왕비는 광해왕 11년(1619년) 2월 9일에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장유는 덕수 장씨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안동 김씨 가문의 일원이었다. 장씨는 어머니를 통해 김장생의 손녀인 인경왕후와 먼 친척을 맺게 하는 외손녀로, 김장생의 증손녀이기도 하다.

덕수 장씨 일가의 귀인황후는 아버지의 후예였다. 그녀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의 후궁이 되었고, 황의왕자 이강의 어머니였다.

예의가 바르고, 성격이 온화하며, 볼이 통통한 귀여운 몸매를 가졌다고 한다.

인조는 그녀가 12세 되던 1630년 차남 이호 봉림대군의 배우자를 직접 임명하였다. 인조는 장유의 딸을 현명하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 아들의 아내로 삼기로 했다. 이듬해 보람대군과 함께 상서로운 의식을 치른 후 풍안공주(風安公主, 풍안부빈)라는 칭호를 받았다.

풍안은 대궐에 들어간 뒤 매일같이 행실을 조심하고, 한결같이 장로들을 섬기고 존경하면서 시어머니 인렬왕후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4년 후, 그녀는 남편과 함께 궁전을 떠나 민가에서 살았다. 이쯤 되면 집안일을 슬기롭게 처리하고 집에서 온갖 일을 처리하는 등 신중함을 발휘했다.

칭 침공

1636년 청나라 침공이 일어나자 풍안은 남편의 처제인 봉림, 황태자비 강씨, 외할아버지 김상용 제3국참의원 등과 함께 광하도로 피신하였다. 이후 청나라 군대가 광하도에 직접 상륙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한편 모두가 혼란에 빠져 외치자 풍안은 침착함을 보이며 평소처럼 침착하게 위기를 수습했다.

적이 광하도에 상륙하여 성을 점령하자 김상용은 화약에 불을 지르고 적들과 함께 자멸했다. 사후 영의정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결국 청나라 침공 때 '삼전도 유랑'으로 알려진 패배를 당했다. 이에 봉림과 그의 형 소현세자는 인질로 청나라 선양으로 끌려갔다. 이때 풍안도 봉림을 따라 청나라로 갔다. 그녀는 8년 동안 온갖 어려운 일을 하며 남편을 부양했고, 그곳에서 딸 3명과 아들 2명을 낳았는데, 그중 한 명은 성인이 된 외아들인 이연이었다.

몇 년 후 태자는 풀려나 귀향했지만, 독살로 의심되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1645년 봉림이 청나라에서 돌아오자 황태자로 임명되어 풍안이 자동으로 황태자비가 되었다. 강태자 때문에 조선 역사상 가장 계몽적인 왕녀였던 고 소현 태자의 미망인이 인조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차기 왕세자비로서 그녀는 전 왕세자비 공주의 죽음을 교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왕비 및 다우거

1649년 인조가 죽은 후 봉림세자는 제17대 조선군주로 즉위하였다(사명:사명: 효종), 즉 황태자비를 자동적으로 왕비로 삼는다. 궁녀들의 우두머리로서 그녀는 현명하게 궁녀들을 이끌고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태도로 부하들을 친절하게 대했다.

예를 들어 왕의 후궁 중 한 명인 경주 이씨 일가의 왕비 안씨(安氏)는 딸인 숙녕공주를 '너'라고 부른 뒤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왕후들은 왕후보다 혈육의 왕자와 공주가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친모라 하더라도 왕의 자녀들에게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왕은 이안빈을 처벌하려 하였으나 왕비는 왕을 설득하여 통과시켰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진심으로 부하들을 아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朝鮮王祖實書)에 기록된 왕비의 비문에는 "아내가 자기를 높이 평가한다면 그런 태도는 좀처럼 가정이나 나라에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암탉이 새벽에 울어서는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또한 그것에 대해 엄격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 왕세자비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하는 증인으로서, 그런 사고방식은 당시의 복잡한 정치상황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왕비는 결혼한 딸들과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이 중 숙신공주와 숙명공주에게 왕후 사이에 보낸 한글 편지 70통이 현재 입수 가능하다. 왕후도 이안빈의 딸이자 왕후로부터 효종의 외동딸인 수영공주를 차별 없이 소중히 여겼다. 일례로 왕과 왕비가 자식들에게 선물을 주는 일이 있었는데, 왕비가 후궁의 딸에게 아무런 선물도 주지 않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의식하면서 공주들에게만 선물을 주었을 때, 이에 대해 걱정하던 왕비는 수경공주를 선물과 함께 개인적으로 불렀다.

나아가 왕후 역시 효종 못지않은 북벌 원정을 주창하였으므로, 왕후 재임 중 엑소시즘(굿판이라 함)을 근절하고 음주를 금지하였다. 그녀는 담요의 색을 빨강과 파랑의 두 가지 색으로 통일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군복을 입도록 준비했고, 준비된 이 모든 재정이 북쪽을 정복하는 데 사용되었다.

1659년, 왕이 머리에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침을 맞고 있을 때, 그 과정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상태가 위독해지고, 결국 의료사고로 헛되이 죽었다. 이에 대해 여왕은 심한 통곡으로 슬픔을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절차를 의미 있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발톱은 물론 손톱까지 직접 다듬고 몸도 씻었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3개월 동안 묽은 쌀죽만 먹었다.

이연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8대 조선군주(임시명: 현종)과 그녀는 효숙왕후(孝uk王后)로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뒤 건강을 돌보지 못해 병이 났다. 그 후 효숙이는 온양에 자주 가서 온천에서 목욕을 하여 건강상태가 약간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1674년 56세가 되자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회상관 경덕궁(당시 경희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묘는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영릉에 있으며, 남편과 함께 동원상하릉 성단에 안장되어 있다(왕의 묘는 아내의 묘와 일렬로 있다). 그녀의 사후 칭호로는 인(人, 인)이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선(善)은 선(善)을 주변과 타인에게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사후에 인선왕후로 추증되었다.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리고 여섯 살 연하의 시어머니인 다우거 자위왕후도 참석했던 인조의 두 번째 왕비가 있었기 때문에, 효종 사후 문제가 된 '예송쟁'[2]이 다시 불거졌다. 이로 인해 조선 제2차 예송 분쟁이 촉발되었다.

가족

부모

  • 대증조부
    • Jang Ok (장옥, 張玉)
  • 증조부
    • 장자종(張子宗, 長子宗)
  • 증조부
    • Jang Il (장일, 張逸)
  • 할아버지
    • Jang Un-ik (1561 – 1599) (장운익, 張雲翼)
  • 할머니
    • 밀양 박씨(? – 1632년)의 부인 박씨(朴氏朴氏, 朴氏, 朴氏)
  • 아버지
    • 장유 (1587년 1월 22일 – 1638년 4월 30일) (장, 張維)
      • 삼촌 - 장신 (장신, 張신) (? - 1637)
  • 어머니
    • 안동 김씨 문중의 영가 내조(永家) 영가(永家) 영가(永家, 安東人 安東人 金?) (? - 1654년 1월 19일)[3][4]
      • 할아버지 - 김상용 (金相龍, 金相容) (1561년 - 1637년 1월 22일)[5][6][7]
      • 할머니 - 광산 김씨 가문의 부인 김씨(金氏 金氏, 金氏 金氏, [8]金氏 金氏)

형제의

  • 누나 - 덕수장씨 장씨(덕수장)
  • 동생 - 장선징(장선징, 張善澂)
    • 조카 - 장환(張장, 張楦)

배우자

이슈

  • 딸 - 숙신공주 (1635 – 1637) ()神公主)
  • 양녀 - 이애숙, 의순공주(1635~1662) (이혜숙, 李愛淑)[9][10]
    • 양자 사위 - 도르곤 왕자 (1612년 11월 17일 – 1650년 12월 31일) (도위)[11]
    • 양자 사위 - 로 왕세자 (1613년 – 1652년 4월 23일) ( 참조)[12]
  • 딸 - 수칸 공주 (1636년 – 1697년 12월 22일) ( (공)
    • 사위 - 홍득기(1635~1673년) (홍 son基, 洪得箕)[13]
      • 손자 - 홍치상(洪治相, 洪治相) (1654년 - 1689년)
  • 익명의 왕자 (? - 1642년)
  • 딸 - 숙명공주(1640년 – 1699년 3월 17일) (공明公主)
    • 사위 - 심익현(심 ikhyeon, 沈益顯)[14]
      • 손자 - 심정보(心正報, 沈廷輔) (1658년 - ?
      • 손자 - 심정협(心正hye, 1659년 ~ ?)
  • 손 - 이연, 현종 (1641년 3월 14일 ~ 1674년 9월 17일) (조선 현)
    • 며느리 − 명성황후는 청풍 김 씨의 clan(136월 1642년 – 1월 21일 1684년)(명성왕후 김씨).
      • 익명의 손녀 (1658년 - 1658년
      • 손녀 - 명선공주(明善公主, 明善公主, 1659년 - 1673년 9월 12일)
      • 손자 - 이선, 숙종(숙宗, ,大王) (1661년 10월 7일 - 1720년 1월 12일)
      • 손녀 - 명혜공주(明惠公主, 明惠公主, 1663년 9월 12일 - 1673년 6월 11일)
      • 손녀 - 이은희, 명안공주(李安公主, 李溫姬 安安公主) (1665년 1월 30일 ~ 1687년 5월 16일)
  • 딸 - 숙휘공주(1642년 – 1696년 10월 27일) (주)
    • 사위 - 정제현(鄭帝縣, 鄭齊賢)[15]
      • 손자 - 정태일(鄭太一, ,台一) (1661년 - 1685년)
  • 익명의 왕자 (1645년 - 1645년)
  • 딸 - 숙정공주 (1646년 – 1668년 6월 13일) (주)
    • 사위 - 정재륜(1648~1723) (정재륜, 鄭載崙)[16]
      • 손자 - 정효선(鄭孝善, 1663년 - 1680년)
      • 손녀 - 동래 정씨(동래 정씨, 東氏 東氏)
  • 딸 - 숙경공주 (1648년 – 1671년 1월 9일) (주)
    • 사위 - 원몽린 (1648년–1674년) (원몽린, 元夢麟)[17]
      • 손녀 - 원석희(元石熙, 1668년 - ?
      • 양손자 - 원명구(元明九, 元明九);[18] 원몽익(元明ik, 元明ik)[19]의 아들

대중문화에서

외부 링크

  • 인선왕후 (in Korean). Doosan Encyclopedia.
  • Queen Inseon, Queen consort of Hyojong of the Joseon Dynasty (in Korean). 역사패치.

메모들

  1. ^ 음력으로는 1618년 12월 25일에 왕비가 태어나 1674년 2월 24일에 사망하였다.
  2. ^ 상복을 입을지 상복을 입을지
  3. ^ 그녀의 둘째 사촌 김수증(金壽 su, 金壽壽)은 안동 김씨(숙종의 후궁)의 영부인(永夫人)의 조부가 되었다.
  4. ^ 그녀는 김장생의 반쪽이다.
  5. ^ 동생 김상관(金尙官, 金正官)은 결국 순원왕후김좌근의 6대 증조부가 되었다.
  6. ^ 그의 처남 김장생(金長生, 金長生, 1548년 8월 8일 ~ 1631년 8월 3일)은 김지브의 아버지, 인경왕후의 친증조부가 되었다.
  7. ^ 손자인 김수인(金壽仁, 金壽仁)은 장렬왕후의 형 조윤석(趙尹石, 1615년 ~ 1664년)의 장인이 되었다.
  8. ^ 그녀는 김장생의 여동생이다.
  9. ^ 이계윤의 딸, 문화유씨 금림왕자와 유씨.
  10. ^ 그녀는 성종의 4대 증손녀다.
  11. ^ 누르하치아바하이의 아들이었다.
  12. ^ 아바타이의 셋째 아들이었다.
  13. ^ 남양 홍씨(南陽洪氏, 洪氏) 출신이다.
  14. ^ 청성심씨(靑城心氏, 靑城心氏) 출신이다.
  15. ^ 연일정씨(延一正氏, 迎日正氏) 출신이다.
  16. ^ 그는 동래 정씨(동래 정씨, 東氏) 출신이다.
  17. ^ 원주원씨(元氏, 주氏, 原氏) 출신이다.
  18. ^ 송준길의 증손자, 인현왕후의 사촌지간이다.
  19. ^ 원몽익이 인현왕후의 외사촌(송준길 손녀)과 결혼했다.
인선왕후
덕수 장씨
왕실의 직함
선행자
장렬왕후
양주 조씨 가문의
조선의 왕비
1649 – 1659
성공자
명성황후
청풍 김씨 가문의
선행자 조선왕후
1659 – 1674
성공자
현렬왕후(명성)
청풍 김씨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