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둘리우스
Gaius Duilius다음 시리즈의 일부 |
고대 로마의 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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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둘리우스(Gaius Duilius, BC 3세기 동안 살았다)는 로마의 정치인이자 제1차 포에니 전쟁에 관여했던 제독이었다.[1]
로마 귀족의 전통 가문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의 노부스 호모였기 때문에 그의 집안 배경이나 초기 경력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자 기원전 260년 영사로 선출되었다. 패트리샤 그나에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나의 후배 파트너로서 뒤편 함대의 지휘권을 두리우스에게 부여해 큰 활약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키피오 아시나의 순진함은 그를 리파리 제도 전투에서 붙잡아 두리우스를 상급 지휘관으로 남겨두게 했다. 그는 곧이어 한니발 지스코와 나머지 포니크 함대를 만났다.[2]
이어지는 밀래 전투는 주로 코버스 탑승장치의 사용으로 로마에 놀라운 승리였다. 둘리우스는 지스코의 기함 등 적 함선 여러 척을 나포했고, 따라서 해전에서 성공한 최초의 로마인이 되었다.[3][4] 그는 나중에 컬럼나 로스트라타 C라는 칼럼을 장식할, 포획된 카르타고 군함의 "병아리"를 묘사한 승리 퍼레이드를 받았다. 둘리이는 로마 포럼에서 둘리우스의 명예를 위해 세워졌다. 로마에 있을 때도 밤에 외출할 때마다 횃불베어, 플루트 연주자와 동행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 획기적인 승리 때문에, 그는 세네카에 의해 그의 드 브레비테 비테에서 해군 전투에서 첫 승을 거둔 사람으로 주장되었다. [5]
그는 기원전 258년 루치우스 코넬리우스 스키피오와 함께 검열을 받았다. 노부스 호모에게 검열을 의뢰한 것은 매우 드문 영광이었다.
배
이탈리아 군함 4척의 이름은 둘리우스(Duilius)의 이름을 딴 것이다.
- 1880년에 취역한 철갑함 두일리오함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함으로 여겨졌다.
- 드레드노트 전함 두일리오.
- 1962년 발사된 미사일 순양함 카이오 두일리오.
- 2009년 취역한 오리지널급 구축함 카이오 두일리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