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바나바라 항공 참사

1994 Vanavara air disaster
1994년 바나바라 항공 참사
Yakovlev Yak-40, Aero Limousine JP7766396.jpg
참사와 비슷한 야크-40
사고
날짜1994년 9월 26일
요약파일럿 오류로 인한 연료 소모
사이트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의 이븐키 자치구 바나바리
항공기
항공기형식야코블레프 야크-40
연산자체렘샨카 항공
등록RA-87468
비행원점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 공항
목적지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의 투라 공항
승객들24
크루4
사망률28
생존자0

좌표: 60°41′34″N 102°4′56″E / 60.69278°N 102.08222°E / 60.69278; 102.08222

1994년 바나바라 항공 참사는 1994년 9월 26일 러시아 지역 항공사인 체렘샨카 항공이 운영하는 야코블레프 야크-40이 러시아 바나바라 인근 강둑에 추락하면서 발생했다. 승객 24명과 승무원 4명 전원이 사망했다.[1]

러시아 수사팀은 조종사 실수가 추락의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나쁜 기상 조건 때문에 비행은 몇 번의 착륙 시도를 중단해야 했고 항공 승무원들은 연료량에 대한 인식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이로 인해 연료 소진으로 항공기가 추락했다.

이어 조사단은 "기상 상황을 제때 승무원들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공항을 비난했다.[1][2]

항공기

관련 항공기는 야코블레프 야크-40으로 러시아에서 RA-87468을 등록했다. 이 여객기는 1974년 11월 11일 사라토프 항공 공장에서 일련번호 9441337로 제조되었다. CCCP-87468로 재등록되어 구소련 민간항공부에 넘겨졌다. 11월 16일, 그 항공기는 카자흐스탄 민간 항공국으로 보내졌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1988년 11월 16일, 87468호는 크라스노야르스크 민간항공청에 의해 운영되었다. 체렘샨카 항공은 이후 1993년에 야크-40을 회수했다.[3]

항공기의 총 운항 시간은 22,203회의 비행시간과 17,220회의 비행 사이클이었다.[3]

비행

이 항공편은 크라스노야크 체렘산카 공항에 본사를 둔 지역 항공사 체렘산카 항공이 운항했다. 사고 당시 야코블레프 야크-40에는 성인 21명과 어린이 3명 등 승객 24명과 승무원 4명이 타고 있었다. 그 비행의 조종사는 아나톨리 A 선장이었다. Danilov와 부조종사는 Anatoliy G 1등 장교였다. 셰르바코프. 또한 비행기 정비사 미하일 N도 탑승했다. 슈르파토프와 승무원 한 명.[3]

항공기가 투라 공항으로 가는 동안 기상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으나 투라의 ATC는 운항 승무원에게 상황 변화를 알리지 못했다. 따라서 승무원들은 투라에 도착했을 때의 궂은 날씨에 자신도 모르게 붙잡혔다. 시야가 제한되어 승무원들은 공항을 빠져 나갔다. 세 번의 착륙 시도가 실패한 후, 승무원들은 투라 공항에서 453km 떨어진 작은 공항인 바나바라 비행장으로 우회하기로 결정했다.[3]

바나바라에서 41km 떨어진 고도 3000m에서 연료 공급이 소진되면서 여객기의 엔진은 활활 타올랐다. 그 후 승무원들은 늪에 비상 착륙하기로 결정했다. 헬리콥터 두 대와 안-24 항공기가 도와주려 하고 있었는데, 야크-40이 비상 착륙이 가능한 늪으로 가는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 후 선원들은 참바 강둑에 착륙하기로 결정했다.[3]

다닐로프 대위는 슈체르바코프 제1경관과 비행 정비사 슈르파토프에게 창밖을 내다보고 참바 강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명령했다. 착륙장비는 선원들이 초기 하강을 시작함으로써 연장되었다. 시속 235km의 속도로 항공기는 나무 꼭대기와 오른쪽 날개를 기체에서 분리했다. 그 후 야크-40호는 오른쪽으로 심하게 굴러 참바 강의 둑을 거꾸로 들이받았고, 앞부분은 물에, 앞부분은 해안에 놓여 있었다. 항공기의 연료가 떨어져 폭발이나 화재는 없었지만, 그 충격은 생존할 수 없었다. 탑승자 28명 전원이 숨졌다.[3]

헬리콥터에서 찍은 추락 현장의 영상에는 야크-40호의 조종석이 완전히 파괴된 모습이 담겨 있었다. 꼬리 부분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에서 기체가 심하게 찌그러졌다. 사고 희생자들은 소지품과 함께 잔해 근처의 큰 풀밭에 흩어져 있었다.[3]

조사

공식 조사가 시작되기 전 승무원들이 투라공항에서 ATC와 나눈 대화 녹음 내용이 어떻게든 분실돼 수사에 차질을 빚었다. 체렘샨카 항공의 사장 A.M 체르노프는 수사팀에 기록이 이관되기 전에 먼저 이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러시아 수사팀에 기록이 이관된 뒤 이 녹음 파일은 발견되지 않아 체르노프의 방해 공작 가능성을 나타낼 수 있었다.[3]

조사 결과 체렘샨카 항공의 비행 업무 조직과 투라 공항의 항공 교통 관제에서의 비행 안전 문화에서 몇 가지 심각한 단점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Tura ATC 직원들은 편지를 썼고 노동조합 회의에서 Tura ATC의 해체와 안전 문화 부족이 고유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투라항공사의 경영은 이러한 단점을 제거하지 못했고,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항공운송부는 업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3]

러시아 수사팀 결론

이 사건을 조사 중인 위원회는 이번 참사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다.

  • 승무원이 비행에 필요한 연료 공급을 잘못 계산함
  • V.A. 쓰리코프 체렘산카 공항의 당직 항해사는 승무원들의 비행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 파견원은 투라공항의 급격한 기상악화에 대해 제때 승무원에게 알리지 않았다.
  • 기내에 연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승무원들은 베이킷 비행장이 100km 더 가까울 때(354km) 400km 이상 떨어진 바나바라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 바나바라에서 접근했을 때, 승무원들은 하강 시작 지점뿐만 아니라 비행 레벨을 잘못 선택했다.

참조

  1. ^ a b "Crash of a Yakovlev Yak-40 in Vanavara: 28 killed". Bureau of Aircraft Accidents Archive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7-04-21. Retrieved 2017-04-20.
  2. ^ "Plane crashes for airlines of Russia and the former Soviet Union". AirSafe.com.
  3. ^ a b c d e f g h i "Авиационные происшествия, инциденты и авиакатастрофы в СССР и России" (in Russian). Air Disasters.ru.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