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밴

Living van
리빙 밴이 장착된 트랙션 엔진

살아있는 밴견인 엔진의 떠돌이 승무원들이 사용하는 휴대용 캐러밴이다.[1]

살아있는 밴은 목초지 사이를 이동하면서 양떼를 따라 이동 가능한 숙소를 제공하던 이전의 목동 마차에서 발전했다.

빅토리아 시기의 견인 엔진은 그 시기의 최신 농업 기술에 대한 고가의 자본 투자를 의미했다. 많은 수의 계약자들이 필요에 따라 그들을 고용하기 위해 농장으로부터 농장까지 옮길 것이다.[2]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수확기 이후의 탈곡 등이 있었다. 엔진 갈퀴, 탈곡기, 살아 있는 승합차, 그리고 종종 물마차[i] 필요에 따라 농장을 돌아다니며 며칠씩씩씩 멈추곤 했다. 1840년경 최초의 엔진은 이동 가능한 엔진이었다. 이동 가능한 증기 엔진은 그들을 농장들 사이에 옮기기 위해 말이 끄는 것이었다.[3] 1860년대부터 기관차 견인 엔진이 등장하여 이제는 자체 동력 아래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4] 이 엔진의 승무원은 운전사, 조타수, 그리고 종종 소년도 포함한다. 타작 작업을 수행하는 다른 농업 노동자들은 이미 농장에 거주하고 있을 것이다.[ii] 평균 규모 50에이커(20ha)의 농장을 타작하는 데는 약 2주가 소요되기 때문에 엔진 투자와 '드럼'[iii] 투자로 인한 자본비용은 농장들로 하여금 그러한 장비를 공동 출자하는 것과 같이 구매하도록 유도하거나, 다른 농장들은 순회 계약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5][5] 탈곡은 수확이 끝난 후 겨울까지 계속되곤 했는데, 그 때까지 옥수수가 핥아먹었다.[6] 최초의 기관차 타작팀은 지역적이었고 살아 있는 승합차, 운전자는 집에서 10마일(16km)까지 걷거나 자전거를 탈 필요가 없었다. 밴의 사용은 1880년대에 이르러서야 타작용으로 널리 쓰이지 않았다. 그들이 쟁기로 인기를 얻은 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7]

쌍으로 작동하는 대형 엔진은 쟁기질 엔진으로도 사용되었다. 이것들 역시 떠돌이여서 살아있는 밴과 그들 뒤에 있는 잔금 쟁기를 끌곤 했다. 쟁기질하는 팀들은 처음부터 살아있는 승합차와 함께 더 먼 거리를 여행했다.[7]

그의 마지막 TV 시리즈인 Fred Dibnah의 Made in Britain에서 Fred Dibnah는 견인 엔진을 가지고 영국 산업계를 돌아다녔지만, 비록 그의 병으로 인해 그는 더 이상 그 안에서 살 수 없었다.

건설

1938년 뉴캐슬 타운 무어호핑스에서 Walker Hoadley의 살아있는 마차

밴은 나무 섀시에 수직으로 성냥 판넬을 씌운 나무로 만들어졌다. 전통적으로 그것들은 밖에는 짙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안쪽에는 흰색으로 칠해져 있어 가벼웠다. 지붕은 나무틀 위에 캔버스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이것은 방습용 타르를 입히거나 방수용 기름보로 처리될 것이다. 셰퍼드의 마차는 도로에 정기적으로 견인되는 마차에는 사용되지 않은 것 같지만, 흔히 골판지 철제였다. 일부 작은 창문들은 빛과 환기를 위해 제공되었고 종종 너무 높아서 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그들은 4륜 섀시를 가지고 있었고, 전면 차축은 단순한 단일 피봇 플랫폼 조향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스티어링은 조향되기보다는 엔진에서 차량 연결봉을 따라갔다. 이전의 말이 끄는 마차와는 확연히 달리, 그들의 앞쪽에는 운전자의 위치가 필요 없었다. 바퀴 초크는 항상 운반되었지만 브레이크는 장착되지 않았다.

바퀴는 주철로 되어있었고, 초기 예로는 나무포수레바퀴로 되어있었다. 쟁기 엔진의 건설자인 파울러는 엔진 자체에 대해 리벳으로 강철로 된 바퀴를 만들었다.[8] 그들의 대형 승합차는 후면보다는 사이드 도어, 수평 판넬링, 위쪽의 클리어스토리 윈도우의 일반적인 사용 등 수많은 세부 사항에서 다른 제작자들과 뚜렷하게 달랐다. 이후 1900년경부터 밴은 단단한 고무 타이어를 운반했다. 현대적인 예들은 때때로 공기압 타이어로 재장착되었다. 도로 건설에 나선 증기 롤러 갱들을 위한 리빙 밴은 1930년대에 새로 생긴 아스팔트의 손상을 피하기 위해 공압 타이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생활용 승합차에는 작업의 계절적 성격에 따라 난방과 조리용 석탄난로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파라핀 난로가 요리에 쓰일 것이다. 기관차와 달리 엔진 자체 소방함은 너무 비좁고 아침에 처음 차를 끓일 방법도 없어 불을 붙이기 전에 '삽 위에서' 요리하는 데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쇼맨 마차

농업용 생활용 승합차는 심지어 주인 운전자들이 점유하고 있을 때에도 평범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쇼맨들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마차로 유명해졌다. 이것들은 잘린 유리창, 레이스 커튼, 그리고 중국을 위한 진열장 안쪽에 새겨진 유리로 구분되었는데, 이상적으로는 로열 크라운 더비였다.[9]

쇼맨의 마차는 오늘 이후로도 찾고 있으며 여전히 새로운 서커스 가족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10][11]

참고 항목

참조

  1. ^ 영국의 곡물 작물의 주요 경작 가능 지역은 이스트 앵글리아에 있으며 비교적 건조하다.
  2. ^ 전체 팀은 8명 또는 9명일 수 있다.
  3. ^ 타작기는 '드럼'이나 '박스', 때로는 스코틀랜드에서 '밀'로 알려져 있었다.[5]
  1. ^ Nick Holt (September 24, 2014). "More heavy horse and living van…".
  2. ^ Johnson, Brian (1971). Steam Traction Engines, Wagons and Rollers. Blandford Press. p. 42. ISBN 07137-0547-7.
  3. ^ 존슨(1971년), 페이지 16-17.
  4. ^ 존슨(1971년), 페이지 18~19.
  5. ^ a b c Whitehead, Robert A. (1970). "2: The Traction Engine At Work". The Age of the Traction Engine. Ian Allan. p. 29. ISBN 0-7110-0129-4.
  6. ^ 화이트헤드(1970), 페이지 63-64.
  7. ^ a b 화이트헤드(1970), 페이지 65.
  8. ^ "Fowler Ploughing Van". Preston Steam Services. Retrieved 2015-06-21.
  9. ^ "Living Vans". Carter's Steam Fair.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3-05-09. Retrieved 2015-06-21.
  10. ^ "The Bullzini Famil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5-06-22. Retrieved 2015-06-21.
  11. ^ "Bullzini Family Living Van At Glastonbury 2014". Traveller Homes. June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