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웰시 전쟁 목록
List of Anglo-Welsh wars이것은 훗날 영국 왕국으로 형성된 앵글로색슨족과 영국인(나중에 영국인이 웨일스인으로 알려지게 된 안토닌 장벽 이남의 영국인의 브라이토닉 인구) 사이의 전쟁과 전투, 그리고 그 후의 수세기 동안 영국과 웨일스의 갈등에 대한 불완전한 목록이다.이 목록은 서기 446년 애드벤투스 작소눔(앵글로색슨족이 영국에 도착했다고 전해지는 시기) 이후 중세 말기 1535년 영국이 웨일스 전역을 합병하면서 시작된다. 그 목록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캠페인과 주요 전투에 주목하려고 한다.
5세기
브리타니아 동부 및 남부 해안의 일부를 식민지로 삼은 이교도 게르만 부족은 일련의 이민으로 영국인(앵글로색슨족이 "웰스크"를 더빙)을 공격하고 반란을 조정한다. 올드 작센, 앤젤런, 플랜더스, 주틀란드에서 추가 증원군이 상륙하며 대부분 조약을 통해 영국 동부와 남부의 넓은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
- c.452 게르만족은 영국의 동쪽 "삭슨 쇼어"에 정착하여 헝게스트와 그의 아들들이 그들의 로마노 영국 주인들에 대항하여 주도한 반란을 일으켰다.
- c.455 Aylesford 전투 – 헨게스트가 이끄는 앵글로색슨(특히 Jutes라는 집단)은 켄트주 Aylesford 전투에서 보르티머가 이끄는 영국인(Welsh)을 물리쳤다.
- c.456 크레포드 전투 – 헨게스트가 다시 이끄는 앵글로색슨(Jutes)은 아마도 전투에서 보르티머가 이끄는 영국군(Welsh)을 물리칠 것이다. 영국인들은 헝기스트와 그의 아들 son스크와 그 후손들이 통치하는 (켄트)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c.466 위페스플뢰트 전투 – 영국인(Welsh)은 켄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앵글로색슨족(Jutes)을 격파하고 타네트 섬에 감금한다.
- c.473 앵글로색슨족(Jutes)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켄트에서 그들의 입지를 되찾는다.
- c.477 키멘소라 전투 – 슐레가 이끄는 앵글로색슨(색슨)이 셀시 가까이에 있는 칸티족을 격파했다.
- c.486 Glein 강에서의 전투 – 영국인들의 아서는 앵글로 색슨족에게 참패를 가한다.
- c.490 린누이에서 벌어진 아서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전투는 그가 영국인들을 앵글로 색슨족에게 각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이끈 현대적인 린지라고 생각되었다.
- c.491 안데리다 공방전 – 슐레가 이끄는 앵글로색슨(삭슨)은 영국인으로부터 안데리다 성을 점령하고 그곳의 모든 남자, 여자, 아이들을 학살한다. 슐레는 남색슨 왕국(Sussex)을 수립한다.
- c.492 바사스 전투 – 아서는 앵글로색슨족을 역사에 빼앗긴 장소에서 격파한다.
- c.493 기니온 전투 – 아서는 전투에서 앵글로 색슨족을 패배시킨다. 그 장소는 당시 Caer Guintguic으로 알려진 Winchester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 c.495 Urbe Regionis 전투 – 아서는 아마도 Caerleon에 의해 생각되는 "City of the Legions"에서 앵글로 색슨족을 격파한다 - 말 그대로, 군단의 도시.
- c.495 세르딕은 현대 본머스에 가까운 전투에서 브리튼스(웰시)를 격파하고 웨스트 색슨스(웨섹스) 왕국을 세운다고 평했다.
- c.496 몬스 바도니쿠스 전투 – 앵글로색슨족들은 일반적으로 배스와 가깝다고 생각되는 장소에서 브리튼족(아마 아서왕이 이끄는 것)에 의한 전투에서 완패하지만 글래모건의 마이니드 바이덴에서 더 가능성이 높다. 세드릭은 패망하여 후에 레헤이트의 신위드의 아들 중 한 명에게 쫓기고 살해되었다고 한다. 이번 패배로 작센군의 공격은 40년간 중단된다.
6세기
이반 앵글로색슨 부족은 런던, 콜체스터, 실체스터, 치체스터, 윈체스터, 그랜체스터, 레스터, 글로스터, 시린스터, 배스, 요크, 링컨, 캔터베리 등을 점령한 영국 남부를 정복한다. 세기 후반에 앵글스는 북부 영국인들을 물리치고 북동부 해안을 식민지로 삼았다.
- C.509 나탄레오드 전투 – 세르디치가 이끄는 웨스트 색슨족이 햄프셔의 네틀리에서 영국군을 격파했다고 한다.
- 519 세르디치가 승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전투. 그는 이 지점에서 웨섹스 왕국을 세운다.
- 527 세르디슬렉 전투 – 세르디치가 이끄는 웨스트 색슨족과 그의 아들 신릭이 영국인들을 패배시켰다.
- 530 와이트 섬의 영국인들은 앵글로색슨족에 의해 지배된다.
- 547 화염병 아이다가 이끄는 북각은 브라이니치 왕국의 영국인들로부터 딘 가이아로의 요새를 점령한다.
- c.550 Londinium(런던)과 Camulodunum(콜체스터)이 동 색슨족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한다.
- 575 레헤드 왕 우리엔이 이끄는 영국군의 북부동맹이 베르니시아의 앵글스를 격파하고 3일 동안 이니스 메트카우트에 포위한다.
- 577 현대 글로스터셔의 디르함 근처의 힌튼 언덕에서 웨스트 색슨족과 그 동맹국들이 영국 요새를 점령한 데오르함 전투. 작센 수도사들에 의하면, 세번 계곡의 영국인들은 이 전략적인 장소를 탈환하려고 시도했으나, 전투에서 세 명의 왕 중 세 명이 죽으면서 패배했다고 한다. 웨스트 색슨족은 계속해서 글로스터, 시린스터, 배스를 사로잡아 남서부 반도의 영국인들과 현대 웨일스의 영국인들을 분리시켰다.
- 580 베르니시아 앵글스가 에브라우크(현대 요크) 시를 점령한 에브라우크 전투.
- 584 Tewdrig와 그의 아들 Meurig가 이끄는 그웬트 왕국의 군대가 영국군을 격파하고 글로스터 지역에서 후퇴하도록 강요한 Tintern 전투. Tewdrig는 치명상을 입었고 전투 3일 후에 죽었다.
- 590 영국인들의 북부동맹은 지도자의 암살과 옛 동맹국들 간의 분열로 패배한다.
- 598 카트라에스 전투 – æ델프리스가 이끄는 북부 앵글스 전투는 고도딘과 브라이니치(베르니시아)의 영국군을 격파했다.
7세기
앵글로색슨족은 영국 남부와 동부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한다. Mercian Angles는 중부 영국(오늘날 영국 중부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에서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 캄브리아는 서북과 남서의 영국인들과 단절되어 있다. 앵글로색슨족은 세기 중반에 이르러 기독교로 개종한다. 영국인들이 영국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심각한 시도는 실패한다.
- 614 번둔 전투 – 키네길스가 이끄는 웨스트 색슨족이 도르셋 배드베리 링스에서 테우드르 ap 페레두르가 이끄는 웨스트 브리튼을 격파한다. 이후 작센의 말에 따르면, 포위 공격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2천명 이상의 영국 전사들이 이 요새를 점령한 후 사망했다고 한다. 이 전투 후에 도르셋이 웨섹스에 합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616 체스터 전투 – 노섬브리아의 아메텔프리스가 이끄는 노섬브리아 북각은 포우와 귀네드의 동맹을 격파하고 체스터 시를 점령한다.
- 619 노섬브리아의 에드윈이 이끄는 통일 노섬브리아 앵글이 근대 리즈와 가까운 영국의 영토인 엘메트를 침공하여 정복한다. 엘메트 왕국은 점령당했고 마지막 통치자인 세레티크는 그가 죽은 직후 포위스로 망명한다.
- 629 노섬브리아인은 귀네드를 침공하고 캐드월론 ap 캐드팬을 망명지로 몰아넣는다.
- 630 퐁 이 새송 테우드리그 전투(Pont y Saeson Tewdrig King of Gwent)와 함께 므리그(Meurig)와 함께 작센 침략군을 학살했다.
- 630 "롱맨드의 전투로도 알려진 세프앤 디골 전투는 630년 웨일스 풀 근처의 롱 마운틴에서 영국군이 승리하여 싸운 전투였다.
- 633 돈캐스터 근처에서 해트필드 체이스 전투. 이 전투는 에드윈 왕의 노섬브리아 군대와 귀네드 왕의 캐드월론 왕과 머시아의 펜다 왕 사이의 동맹으로 치러졌다. 이 전투는 에드윈의 죽음으로 끝나 노섬브리아 침략자들을 귀네드드로부터 몰아내고, 영국군의 노섬브리아로 진격하기 앞서 있었다. 캐드월론은 노섬브리아를 점령하여 요크를 점령하고 귀네드를 침공한 노섬브리아 왕조의 많은 일원을 살해했다.
- 634 캐드월론이 이끄는 노섬브리아의 오스왈드가 이끄는 노섬브리아인들에게 패배하여 살해되는 하드리안 성벽 근처의 천국전투. 영국인들은 노섬브리아에서 쫓겨나 북을 되찾기 위한 캠페인을 끝낸다.
- 638 [고도딘] 현대 에든버러 지역의 영국인들은 노스요크셔의 캣테릭에서 패배한다.
- 642 오스웨스트리 근교에서 벌어진 메스 코그위 전투로 영국군은 메르스 동맹군과 함께 노섬브리아군에게 패했다.
- 650 아본에서의 브래드포드 전투, 웨스트 색슨 전에서 서부 영국을 상대로 한 승리.
- 655 베르니시아의 오스위우 왕이 머시아의 펜다 왕을 무찌르고 죽인 윈위드 전투. 그위네드의 카다파엘 ap 신페드드웨 왕은 펜다와 동맹을 맺었으나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 658 현대 Shropshire에 있는 작은 영국 왕국 Pengwern은 오버런되어 Mercia에 합병되었다.
- 658 서영 연합군과 귀네드의 카드왈라드르가 패배한 서머셋의 페온넘 전투. 웨스트 색슨족은 서머셋을 점령하기 위해 이동한다.
- 665 제2차 바돈 전투, 이번에는 코츠월드 힐즈 어딘가에서 웨스트 색슨이 그웬트 왕국과 그녀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670 Cenwealh가 이끄는 웨스트 색슨족은 서머셋 중심부를 점령하고 Glastonbury에 종교 센터를 설립한다.
- 682 센트윈이 이끄는 웨스트 색슨족이 서쪽으로 이동하여 파렛 강 근처 어딘가에 있는 서영국군을 격파하고, 이들을 "바다로" 몰고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 c.685 Brut y Tywysogion은 남서부에서의 영국의 승리를 기록한다. 브리트니 왕국의 동맹국들을 포함한, 영국이 그들의 이익의 일부에서 벗어나도록 강요하는 영국을리 왕국의 동맹국들을 포함한다.
8세기
남서부(현재의 콘월 및 많은 데본)에 있는 영국 영토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영국을 밀어낸다. 현대 웨일즈의 국경들은 대체로 메르시아의 팽창으로 정의되어 있다.
- 710년 둠노니아의 게라인트(Geraint)가 이끄는 서영국 데본(Debon)을 격파하고 노턴 피츠워렌(Norton Fitzwarren)에서 거점을 점령한 후 웨섹스의 이네는 타운톤에 요새를 건설하여 '그의' 땅을 방어한다. 전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게린트 왕은 살해된다.
- c.720 로드리 몰위녹의 지원을 받아 코르니쉬 영국인들이 웨섹스에 대항하여 거의 1세기 동안 코니쉬에게 공격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 주는 승리를 거둔 두르누니아의 헤힐 전투. 브루트는 또 다른 전투가 로드리족과 색슨족간의 같은 전쟁에서 명예롭게 승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c.720 같은 해 색슨족과의 전쟁으로부터 명시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브르트가 영국의 승리로 인용한 것은 모간뉴그에서의 펜코트 전투, 가르스 마엘로그 전투, 그리고 "그와네드에서의 또 다른 전투"이다.
- 722 웨섹스의 이네가 다마르 강까지 진격하지만 패배하여 철수한다. 타운톤의 웨스트 색슨 요새는 파괴되었다.
- 영국군이 앵글로색슨족을 몰아붙인 728 그웬트의 카르노산 전투는 많은 이들이 익사했던 우스크 강으로 돌아갔다.
- 733 데바단 전투, 영국의 또 다른 승리.
- 735 길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 끝에 영국군이 승리한 제1차 헤리포드 전투.
- 743명의 메르시안과 웨스트 색슨 연합군이 영국군과 싸운다. 와트 다이크의 건설 가능성
- 752년 노섬브리아의 에드베르트가 스트라스클라이드 왕국을 침공하여 카일의 영토를 정복하였다.
- 753 커트레드가 이끄는 웨스트 색슨족은 콘월이라는 영국군과 싸운다.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코니쉬가 독립을 유지했기 때문에 코니쉬 영국의 승리가 유력해 보인다.
- 755 웨섹스 서쪽의 확장이 재개된다. 앞으로 30여 년 동안 동서남북 데본은 웨섹스에 의해 지배된다.
- 756 이드베르트가 이끄는 노섬브리아인들은 픽트족과 연합하여 영국 북부 스트라스클라이데 왕국을 침공하여, 어쩔 수 없이 복종해야 하는 두날가뉴알 왕을 물리치고 잠시 노섬브리아의 신하가 되었다. 헤어포드에서의 두 번째 전투는 브루트 y Tywysogion에서의 또 다른 영국 승리로 기록된다.
- 765년 영국군이 머시아를 침공하여 많은 참화를 초래한다.
- 769명의 머시아인들이 웨일즈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760 헤어포드 전투는 머시아의 오파(Offa of Mercia)가 이끄는 머시아인들에 대한 영국의 승리로 기록되어 있다. 영국인들은 아마도 포위스의 엘레데스 ap 그와일로그와 그의 아들 브로셔파엘 ap 엘레데스드가 이끌었을 것이다.
- 780 Offa의 다이크 건설이 시작된다. 이 국경의 도랑은 포와이스와 머시아 사이의 합의된 국경 지역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784 포위에 이어 웨섹스의 시뉴울프에게 엑세터가 붙잡힌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은 또 다시 머시아를 침공하여 대혼란을 일으킨다.
- 머시아의 코엔울프가 이끄는 798명의 메르시아인들이 웨일즈를 침공하지만, 나중에 카라독 ap 메이리온을 죽이고도 후퇴한다.
9세기
세기의 전반기 동안 다시 활기를 불어넣은 머시아가 웨일즈의 나머지 지역을 거의 정복했다. 세기가 끝날 무렵 바이킹이 영국을 급습해 영국인들의 관심을 어느 정도 딴 데로 돌리게 된다.
- 815 웨섹스의 에그버트가 콘월을 침공하고 왕국을 제압한 곳 820은 또한 이 "invasion"의 가능한 날짜로 제안되었다.
- 816명의 메르시아인들이 포위스를 침공한다.
- 822년 머시아의 쿠엘울프가 북웨일스를 침공하여 그웬드로부터 드간위이를 포로로 잡아 포위스 전체를 점령한다.
- 825 웨섹스와 코르니쉬 영국인 사이의 카멜포드 전투로 웨스트 색슨족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 828 포위스 땅은 Cyngen ap Cadell에 의해 메르카 점령으로부터 해방된다. 엘리제그의 기둥은 아마 이때 임관되었을 것이다.
- 830 웨섹스의 에그버트가 포위스를 침공하고 닌겐 ap 카델을 조약으로 옮기는 곳. 이어 에그버트는 병력을 철수시킨다.
- 838 콘월 힝스턴 다운 전투에서 코니쉬와 데인스의 연합군이 웨섹스의 우월한 숫자에 의해 패배했다.
- 853년 머시아의 버그레드가 포위스를 제압했다. Cyngan ap Cadell은 퇴위하고 로마로 은퇴하며 그의 왕국은 Gwynedd의 Rodri Mawr에 의해 합병된다.
- 865 머시아의 버그레드가 로드리 마워에 대항하여 군대를 이끌고 그위네드로부터 앙글레이시를 잠시 사로잡는다. 버그레드는 나중에 쫓겨나고 그의 방어되지 않은 왕국은 바이킹족의 침략을 받는다.
- 878년 케네스 맥칼핀과 연합하여 스트라스클라이드 영국인이 현재 바이킹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노섬브리아 북부를 침공하여 로트리아 지역을 해방시킨다.
- 적어도 890명의 "스트라스클라이드의 사람들" 중 일부는 바이킹에 의해 많이 약화된 그들의 왕국이 앵글스와 스코틀랜드에 의해 지배된 후 귀네드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
10세기
히웰 드다와 같은 상대적 평화의 시대는 웨일스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고, 머시아의 힘을 파괴한 바이킹들에 대항하여 웨섹스와 동맹을 맺는다.
- 925 코니쉬인은 영국의 애설스탠 왕에 의해 엑세터로부터 쫓겨났다. 그는 콘월을 제압하고 타마르 강에서 잉글랜드와의 콘월 국경을 규정했다.
- 937 브루난부르 AKA "위대한 전쟁"은 영국-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영국 땅에서 일어난 전투 중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였으며 5명의 왕이 사망한 것으로 유명하다. 형제 에드먼드와 많은 동맹국인 앵글로색슨 왕 에델스탠은 올라프 3세 거스프리스손, 노르스-가엘 왕 올라프 2세, 콘스탄티누스 2세 알바 왕, 오웬 1세 영국 스트라스클라이드 왕 등을 무찔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비교적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헤이스팅스 전투 전 앵글로색슨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단일 전투"라고 불렸다. 마이클 리빙스턴은 브루난버가 "영어가 성년이 되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적인 장학금은 위랄 반도의 브롬버러(Bromborough)가 전투의 현장임을 시사한다.
- 940년 귀네드의 이드왈 포엘이 영국을 침공하여 쫓겨나 후에 그의 땅을 빼앗겼을 때.
- 945년 영국군이 컴브리안 왕국을 침공한 후 영국 왕은 스코틀랜드 왕에게 그것의 일부 또는 일부를 허가하거나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스코틀랜드 인들이 컴브리안 인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 962 평화로운 에드가 왕이 귀네드를 침공하다.
- 그위네드의 985 하이웰 ap Ieuaf는 머시아의 에일만인 슐피에르와 싸우다 죽임을 당했다.
11세기
영국의 연합 왕국이 형성되다. 웨일스인들은 그뤼푸드 ap Llywelin 휘하에 잠시 단결되었지만 그는 노르만 정복의 잉글랜드 전에 다시 내분으로 죽임을 당했다. 영국의 새로운 노르만 명장들은 노르만족의 웨일스 침공을 개시하고 웨일스 왕국의 일부 지역을 황폐화시킨다.
- 1039 최근에 왕위에 오른 그뤼푸드 ap Llywelin이 브라이치니오그에서 머시아의 레오프리치가 이끄는 메르카 군대를 격침시켜 그들을 파괴하는 라이드 이 그로즈 전투.
- 1052 그뤼푸드 ap Llywelin이 Herefordshire를 침공하여 Leominster를 포로로 잡는다.
- 1055 Gruffudd ap Llywelin은 망명중인 Delfgar, Mercia 백작, 그리고 Herefordshire와 동맹을 맺었다.
- 1062년 웨섹스 백작 해롤드 고드윈슨과 그의 동생 토스티그는 수년간 국경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영국 왕관을 대신해 일련의 캠페인을 시작한다. 그루퍼드는 죽었어
- 1067년 그위네드의 공동 통치자인 블레드딘과 리월론 ap 신핀은 노르만 정복에 저항하는 영국인 반군인 에이드릭 더 와일드(Eadric the Wild)를 지지하기 위해 이퍼드셔를 침공한다.
- 1067 두 달도 안 되어 영국 전역을 완전히 정복한 노르만족 통치자들은 그웬트 왕국을 침공하고 왕 카라도그 ap 그루푸드를 추방한다.
- 1073 노르만족은 귀네드를 침공하여 아르퐁을 점령한다.
- 1085 노르만인들은 귀네드와 포위스를 대대적으로 침공한다.
- 1091 노르만인들은 모간뉴그 왕국의 저지대 중 일부를 점령하여 이셰인 ap 그르간을 망명하게 한다.
- 1093 노르만인과 그들의 영어 신하가 브라이치니오그로 진격하여 드허바스의 왕 라이스 ap 테우드르를 죽인다.
- 1094년 애버 릴렉은 몇 개의 성을 제외하고는 노르만족을 영국으로 몰아가는 웨일스를 가로지르는 국가적 봉기의 절정이다. 드허바스는 다른 남부 영토를 희생하여 영토를 획득한다.
- 1095 노르만족은 귀환하지만 웨일스를 전투에 끌어들이지는 못한다.
- 1098 노르만족은 귀네드와 앙글레이시를 점령한다. 그들은 연내에 철수한다.
12세기
잉글랜드의 노르만족의 내전으로 인해 웨일스 왕국들의 공간이 그들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세기의 끝은 부활한 귀네드가 이웃들을 희생하고 확장하는 것을 본다.
- 1116 드허바스의 웨일스인은 노르만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 1134 웨일스군이 슈롭셔를 습격하여 코인 성을 파괴했다.
- 1136 웨일스 웨일스 점령군에 대항하여 일어나 카마트헨의 영주권을 제외한 모든 웨일즈에서 그들을 몰아낸다. 루흐흐르 전투(1월)와 크루그 마우르 전투(10월).
- 1137 귀네드로부터 온 군대가 노르만 침략자들로부터 카르마틴을 붙잡는다.
- 1144 마처 영주 휴 드 모티머는 마엘리엔예드를 다시 데려간다.
- 1145 Gilbert de Clare는 Carmarthen 성을 재건한다.
- 1149 마도그 ap 마더드는 슈롭셔로 진출하여 오스웨스트리를 포와이스 왕국에 합병하고, 1157년까지 그의 소유로 남아 있다.
- 1157년 헨리 2세는 그위네드의 진정한 왕 오와인 ap 그뤼푸드를 체셔 국경에서 몰아내기 위해 대대적인 Perfeddwlad의 침략을 주도한다. 헨리 2세와 오웨인은 앵글시 상륙 실패 후 오웨인이 클루이드 강 서쪽 기슭으로 철수하기로 합의하는 데 합의했다.
- 1159 드허바스의 라이스 ap 그루푸드는 1162년 남부 웨일스의 앵글로 노만 성과 정착지를 공격하여 란도베리를 사로잡았다.
- 1163년 헨리 2세는 드허바스를 침공하는 남부 웨일즈에서 군사작전을 개시한다. 그는 펜카더에서 라이스 ap 그루퍼드를 붙잡아 영국으로 데려간다. 리스는 헨리에게 경의를 표하기로 동의한 후 1164년에 그의 영토로 복구되었다.
- 1165 Rys ap Gruffudd는 웨일스 남부와 서부의 앵글로 노먼 요새에 대한 공격을 주도한다. 귀네드, 포와우스, 드허바스, 그리고 더 작은 나라들은 영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는다. 헨리 2세는 전쟁을 선포하고 슈루즈베리로부터 포우스를 거쳐 귀네드까지 침략군을 이끌고 있다. 헨리는 악천후를 겪고 난 후, 어쩔 수 없이 철수했다.
- 1166 Rys ap Gruffudd가 노먼 왕관으로부터 카디건 성을 점령했다.
- 1167 Owain ap Gruffudd는 Ruddlan Castle과 Basingwerk가 Die강 동쪽까지 진격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 1185명의 웨일스 습격자들이 카디프를 해고했다.
- 1196 전면전이 다시 발발한다. 휴버트 월터는 슈루즈베리로부터 포위스를 침공하고 웨일스풀을 포위한다.
- 1198 웨일스 군대가 노르만족에게 패배하는 통스캐슬 전투.
13세기
그위네드의 전성기는 '웨일즈의 원리'가 릴리블린 파우르에 의해 선포되는 세기 중반까지 계속된다. 다피드 ap llywelyn의 후계자 왕자로 사망한 뒤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끝에 다피드의 조카 Llywelyn ap Gruffudd가 웨일스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 1258년 웨일스 왕자의 칭호를 걸고 포와 드허바스에서 그의 권위를 확립한다. 1282년 릴 웨일린의 죽음과 1283년 그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다피드 ap 그루퍼드의 체포와 처형은 웨일스 독립의 종말을 의미한다. 세기말에는 웨일스의 합병과 에드워드 정착지가 보인다.
- 1211 잉글랜드의 존 왕이 체스터로부터 귀네드 침공을 개시하지만 이득 없이 퇴각해야 한다. 그 해 말, 슈루즈베리로부터 두번째 침략은, 이번에는, 웨일스 마을 뱅고르를 폐허로 만들고, 존은 평화 조건의 일부로서 영국 왕관에 Perfeddwlad를 양도하기로 동의한, 그위네드의 왕자인 Llywelin Fawr의 항복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 1215 다른 왕자들과 연합하여, Llywelin Fawr는 카디건 성, 카마틴 성, 키드웰리 성 그리고 많은 다른 장소들을 점령하면서 웨일즈 전역의 영국 소유주들을 공격한다. 웨일스 의회에서 (1216년) Llywelin은 모든 면에서, 포와스와 드허바스의 귀족들에 의해 웨일스의 왕자로 인정받고 있다. 1218년 영국과의 평화협정에 따라 전투가 끝난다.
- 1223 마르케르의 영주 휴버트 드 버그는 카마트헨, 카디건, 몽고메리를 되찾는 일련의 캠페인을 시작한다.
- 1240 Llywelin Fawr가 영국의 공격을 죽였다. 마처 영주들은 Llywelyn이 얻은 영토적 이득을 다시 얻는다.
- 1241년 헨리 3세가 웨일즈를 침공하다; 다피드 ap llywelin은 항복하도록 강요당했다 (8월). 뒤이은 평화협정인 그워네그론 조약은 영국인들이 Perfeddwlad를 점령하는 것을 보게 된다.
- 1244 Dafydd는 전쟁을 선포하고, 웨일스와 영국 국경에는 웨일스-잉글랜드 국경지역에 몇 차례 웨일스군의 공습이 가해지고 있다.
- 1245 다피드의 전쟁이 격화된다. 드허바스와 포와이스 파독에 있는 그위네드와 그녀의 동맹국들은 와일스 중간에서 거의 이득을 얻지 못하지만, 몰드는 웨일스군에 의해 탈환된다. 8월에 영국은 체스터로부터 귀네드를 공격하고, 다피드에게 패배하여 침략군은 드간위까지 진격하며, 그곳에서 헨리는 격렬한 전투 끝에 중단된다. 가을에는 휴전이 합의되고 영국군은 영국으로 철수한다. 1246년 다피드의 죽음은 마처 영주 니콜라스 드 몰리스에 의해 남쪽에서 귀네드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촉발시켰는데, 이는 드허바스를 굴복시키고 그 다음 귀네드를 항복하게 만든다. 우드스톡 조약에 따라 귀네드는 Perfeddwlad에서 탈퇴한다.
- 1256 그와네드(Gwynedd)는 Llywelyn ap Gruffudd(Llywelin Fawr의 손자)가 이끄는 것으로, Perfeddwlad를 침공하고 합병한다. 그위네드는 브라이체이니오그, 마엘리엔예드, 그르테흐르니온, 부일스 (1250년대 후반)를 부속하고 있다. 더 이상의 영국 왕실의 침략을 막기 위해, Llywelin은 몽고메리 조약(1267)에 동의하며, 웨일스의 왕자로 인정받고 있다. 드허바스는 남부에서 영토를 획득한다.
- 1277년 에드워드 1세는 Llywelyn ap Gruffydd를 반란군이라고 선언하고 웨일스를 침공한다; 제1차 웨일스 독립 전쟁이 시작된다. 카르마헨에서 온 영국군은 드허바스의 왕자들을 무찌르고 체스터에서 온 군대는 포와이스 파독을 압도하며 슈루즈베리에서 온 군대는 마엘리에니드, 부일스, 브라이치니오그, 그르테리온을 탈환한다. 애버콘위 조약에서 에드워드는 클라이웰린이 콘위 강 서쪽에 있는 그웬드를 제외한 모든 웨일즈의 지배권을 양도하도록 강요했다. 포와이스 파독과 드허바스는 헤어졌다. [2]
- 1282 다피드 ap 그리푸드는 이전에 에드워드 1세와 공모한 릴레린의 동생으로 영국에 대한 반란을 조정한다. Llywelin은 결국 분쟁에 말려든다.
- 1282년 6월 16일 에드워드 1세(Endward I. 16-Landeilo Battle) 휘하의 영국군이 웨일스를 침공하고, 웨일스가 남쪽에서 영국군을 격파했지만, 에드워드의 군대는 남은 여름 동안 계속 느린 진전을 보이고 있다. 11월 6일 – Moel-ydon 전투; 웨일스인들은 메나이 해협을 가로지르는 영국의 침략을 단호히 물리친다. 오레우인 다리 전투 (12월 11일); 영국군은 킬메리에서 우연히 매복하여 Llywelyn ap Gruffydd를 죽이고 참수한다. Dafydd ap Gruffudd가 그의 뒤를 잇는다.
- 1283년 에드워드 왕의 군대는 귀네드에 남아 있는 성을 점령한다. 웨일즈 왕실은 산으로 피신하기 위해 철수한다. 영국군은 6월에 다피드 ap 그루퍼드를 포로로 잡았고 에드워드 왕은 10월에 그를 슈루즈버리에 매달아 추첨하고 안장함으로써 그의 웨일스 정복은 완료되었다. 그 결과로 맺어진 합의는 왕의 고객으로서 원주민 통치하에 있는 포와이스 원윈윈윈, 에데어니온, 글린디프르드위, 드라이슬윈 성 외에 웨일즈의 어떤 부분도 남기지 않는다.
- 1287 드허바스의 왕자인 드라이슬윈의 라이스 ap 마레두드는 에드워드 1세의 대우에 격분하여 디네프르에 있는 드허바스 왕가의 중심지를 탈환하고 예스트라드 티위호를 사로잡는 남부의 영국 소유주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고 있다. 1288년까지 그는 모든 재산을 잃었지만 1292년에 체포되어 처형될 때까지 게릴라 지도자로 남아있다.
- 1294년 앙글레이시에 거주하고 있는 애버프로의 집의 하급생인 마도그 ap 렐리블린이 이끄는 웨일스 폭동은 북쪽과 중앙 웨일즈에서 카스텔 이 베레, 카나본 성, 카디건 성, 디나스 브란, 덴비 성을 잠시 점령했다. 마독은 자신이 웨일스의 왕자임을 선포한다.
- 1295 Maes Moydog 전투 (3월 5일); 마독은 패배하고 웨일스군은 멸망한다. 마독은 곧 붙잡혀 수감된다.
14세기
영국 통치하에서 상대적인 안정의 기간으로, 두 번의 중요한 반란이 있었다.
- 1314년 글래모건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 1316년 그웬트와 모건wg에서 일어난 봉기는 Senghennydd의 영주이자 Morgannwg 왕들의 후손인 Llywelin Brend가 이끌었다. 반군들은 6주 동안 케르필리 성을 포위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브렌의 군대는 패배하고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 1326년 에드워드 2세는 사우스 웨일즈로 도망친 후 팬티브라드에서 반란군에게 붙잡힌다.
- 1345년 영국 변호사 왕 헨리 드 샬데포드와 그의 부하들이 웨일스 반군에 의해 매복되어 학살되었을 때 성 발렌타인 데이 대학살로 알려진 그위네드에서의 봉기. 1344년 루들란에서 반영어 폭동이 일찍 시작되었다.
- 1369 오와인 로고흐가 웨일스에 대한 실패한 침략 시도를 시작한다.
- 1372 오와인 로고흐는 자신과 그의 군대가 게른시에 도착하는 웨일즈의 왕좌를 차지하려는 의도를 발표한다.
- 1377 오와인 로고흐는 카스티야의 도움으로 또 다른 침략을 계획하여 1378년 오와인, 오와인이 암살된 후 영국인들이 암살자를 보내게 된다.
15세기
영국 내 시민 갈등과 리처드 2세의 퇴진은 영국으로부터 웨일스 전역을 해방시키는 데 성공한 오와인 글린 드르가 주도한 국가 봉기의 배경이다. 그는 결국 패배하고 잉글랜드의 웨일즈 지배권은 다시 부여된다.
- 1400 포와이스 가문의 귀족 오와인 글린 드르가 이끄는 포와이스 파독에서 글린더 라이징이 폭발한다. 오웨인은 웨일스의 왕자(9월 16일)를 선포하고 웨일스의 북동부 지역을 급습했다. 몇 달 동안 활동을 하지 않은 후, 반란은 그위네드 전역으로 번졌다.
- 1401 콘위 성은 오웨인의 부하들에게 잡힌다. 투틸 전투는 카에나폰 성을 포위하는 동안 결론 없이 끝난다.
- 1402년 브린 글라스 전투; 오웨인은 마르케르의 영주 에드먼드 모티머가 이끄는 영국군을 격파하고 후에 그와 동맹을 맺는다. 영국인들은 웨일즈에서 쫓겨났다.
- 1405 영국은 웨일즈에게 많은 점령된 성을 탈환하여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한다. 8월에 오웨인은 프랑코-웰시 연합군을 이끌고 영국으로 들어가 우드베리 힐까지 도달한 뒤 퇴각한다.
- 오웨인의 마지막 거점인 1409 할레흐 성은 영국군에 함락된다. 에드먼드 모티머는 죽임을 당했다. 오웨인은 게릴라 공격을 이끌며 웨일스를 가로지르며 생포되지 않는다. 그는 1415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더드 app 오와인 글린 드르는 1421년 왕실 사면을 받아들인다.
- 1485년 보즈워스 전투; 2차 독립전쟁 때 오웨인과 함께 싸웠던 웨일스 튜더 가문의 헨리 튜더(Henry Tudor)는 웨일스, 프랑스, 영국 랑카스트리아 군대와 라이스 압 토머스 데트로네스 3세, 헨리 같은 귀족들의 도움으로 영국의 왕이 된다. 헨리는 웨일스 왕국들과 영국 왕국을 병합한 웨일스 왕국으로, 그의 후계자에게 웨일스 동포들의 충성심을 심어주기 위해 그의 후계자를 위해 웨일스 왕국이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참고 항목
참조
- 일반
- 애슐리, 마이크 영국 왕과 여왕의 매머드 책, 로빈슨 역사, 1998년
- 알바니 메이저, J. 얼리 워즈 오브 웨섹스, 블랑드포드 프레스, 1913년
- 어빈슨, 스튜어트 앵글로-웰시 워즈, 브리지 북스, 2001
- 특정
- ^ Wrexham County Borough Council: 왕자와 마처 로드
- ^ 스미스, J. 비벌리, Llywelyn ap Gruffudd, 1998년 웨일스 카디프, 페이지 437-45 ISBN0-7083-14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