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계 오스트레일리아인
Laotian Australians총인구 | |
---|---|
10,402(태생) | |
모집단이 유의한 지역 | |
뉴사우스웨일스 | 5,227 |
빅토리아 | 2,224 |
퀸즐랜드 | 1,421 |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 | 681 |
언어들 | |
오스트레일리아계 영어 · 라오 · 흐몽 | |
종교 | |
테라바다 불교 · 기독교 · 기타 | |
관련 민족 | |
라오스인, 이사인, 태국인, 기타 아시아계 호주인 |
라오스-호주라고도 알려진 라오스-호주인들은 라오스에서 이주했거나 라오스 조상이 있는 호주인들을 가리킨다. 호주에 거주하게 된 최초의 라오스인들은 1960년대 콜롬보 계획을 통해 도착했는데,[1] 이 계획은 많은 라오스인들이 호주에서 살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라오스의 이주는 1975년 공산주의 정권 인수 이후 인도차이나 난민 사태로 시작되었다.[2] 2016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뉴사우스웨일스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라오스 태생 호주인은 10,402명이다.[3]
인구통계학
호주의 라오스에서 태어난 이 공동체는 원주민인 라오, 중국인, 흐몽, 베트남인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6년 호주 인구조사에 따르면 라오스계 호주인 대부분이 민족적으로 라오스인(64.3%), 중국인(15.1%), 흐몽인(7.6%), 베트남인(5.4%), 기타 조상으로 파악된 7.5% 순이다. 대부분의 라오스는 라오어를 집에서 사용한다고 말했고, 영어, 흐몽, 만다린어가 그 뒤를 이었다. 호주의 라오스인들의 역사는 다른 이주인구에 비해 더 최근이며, 라오스 태생의 80% 이상이 2007년 이전에 호주에 도착하는 데 비해 전체 해외 태생의 60%는 호주에 도착한다.[3]
지리적으로 라오스-호주인들은 대부분 뉴사우스웨일스(50.2%)와 빅토리아(21.4%)에 집중돼 있어 최근 입국한 이주민들을 수용한 이들 지역에 이주호스텔이 역사적으로 정착된 데 기인할 수 있다.[2]
과거 인구 통계
호주. | 뉴사우스웨일스 | 빅토리아 | 퀸즐랜드 |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 | |||||||||||
---|---|---|---|---|---|---|---|---|---|---|---|---|---|---|---|
인구조사년 | 남성 | 여성 | 합계 | 남성 | 여성 | 합계 | 남성 | 여성 | 합계 | 남성 | 여성 | 합계 | 남성 | 여성 | 합계 |
1976 | 232 | 191 | 423 | 124 | 110 | 235 | 59 | 34 | 92 | 4 | 0 | 4 | 15 | 17 | 32 |
1981 | 2674 | 2589 | 5263 | 1714 | 1666 | 3380 | 563 | 531 | 1094 | 60 | 58 | 118 | 61 | 85 | 146 |
1986 | 3784 | 3598 | 7382 | 2365 | 2220 | 4585 | 846 | 829 | 1675 | 126 | 106 | 232 | 96 | 107 | 203 |
1991 | 4877 | 4748 | 9625 | 2916 | 2782 | 5698 | 1076 | 1098 | 2174 | 264 | 260 | 524 | 108 | 119 | 227 |
1996 | 4945 | 4938 | 9883 | 2802 | 2769 | 5571 | 1071 | 1099 | 2170 | 400 | 398 | 798 | 134 | 145 | 279 |
2001 | 4697 | 4868 | 9565 | 2613 | 2686 | 5299 | 983 | 1041 | 2024 | 438 | 449 | 887 | 208 | 219 | 427 |
2006 | 4515 | 4857 | 9372 | 2403 | 2632 | 5035 | 982 | 1063 | 2045 | 511 | 523 | 1034 | 216 | 218 | 434 |
2011 | 4687 | 5244 | 9931 | 2397 | 2703 | 5100 | 1018 | 1142 | 2160 | 635 | 678 | 1313 | 211 | 233 | 444 |
2016[5][Note 1] | 5100 | 5850 | 10950 | 2600 | 2920 | 5520 | 1080 | 1270 | 2350 | 690 | 830 | 1510 | 280 | 280 | 560 |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 태즈메이니아 | 노던 준주 |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 | ||||||||||||
인구조사년 | 남성 | 여성 | 합계 | 남성 | 여성 | 합계 | 남성 | 여성 | 합계 | 남성 | 여성 | 합계 | |||
1976 | 10 | 4 | 14 | 7 | 8 | 15 | 0 | 3 | 3 | 10 | 12 | 22 | |||
1981 | 38 | 34 | 72 | 13 | 16 | 29 | 8 | 19 | 18 | 198 | 182 | 380 | |||
1986 | 40 | 45 | 85 | 15 | 17 | 32 | 13 | 20 | 33 | 283 | 254 | 537 | |||
1991 | 56 | 56 | 112 | 68 | 67 | 135 | 15 | 20 | 35 | 374 | 346 | 720 | |||
1996 | 61 | 62 | 123 | 84 | 80 | 164 | 19 | 21 | 40 | 374 | 364 | 738 | |||
2001 | 75 | 79 | 154 | 42 | 40 | 82 | 16 | 19 | 35 | 322 | 335 | 657 | |||
2006 | 72 | 80 | 152 | 12 | 13 | 25 | 16 | 16 | 32 | 303 | 313 | 616 | |||
2011 | 87 | 116 | 203 | 11 | 17 | 28 | 21 | 23 | 44 | 307 | 332 | 639 | |||
2016[5][Note 1] | 90 | 150 | 230 | 20 | 20 | 40 | 20 | 20 | 40 | 330 | 360 | 700 |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
마이그레이션 전 및 화이트 오스트레일리아 정책
1901년 1월 1일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의 설립에 이어, 통과된 최초의 입법 중 하나는 1901년의 이민 제한법이었는데, 이것은 불명예스럽게도 '백호주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법은 비유럽 이민에 제한을 두었고, 특히 아시아인들이 호주로 이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6] 그 법은 모든 이주민들이 그 나라에 머물기 위해 유럽어 받아쓰기 시험을 통과하도록 의무화했다.[7] 그 후, 대부분의 아시아 이민자들은 이민국 공무원들의 재량에 따라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호주를 백인으로 유지하려는 의도는 '치나만'에 대해 말한 에드먼드 바튼(Edmund Barton) 호주 초대 총리에게 힘을 얻었다.
"나는 인간평등의 교리가 정말로 인종평등을 포함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종적 평등은 없다. 기본적인 불평등이 있다. 이 인종들은 백인종족과 비교해서-아무도 이 사실을 납득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 부적격하고 열악해."[8]
당시 호주인의 압도적 다수(98%)는 백인이었다.[9] 1958년 받아쓰기 시험 통과 요건이 없어졌고 1975년 휘틀람 정부는 인종차별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사실상 화이트 오스트레일리아 정책을 종료함으로써,[10] 이후 몇 년 안에 아시아 이주가 시작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콜롬보 플랜
호주에 체류하는 라오스인들의 첫 번째 사례는 주로 콜롬보 계획을 통해 도착한 학생들로 구성되었다.[11] 1975년 이전까지 약 150명의 라오스인들이 호주에 거주했으며, 1975년 초에는 모두 600명이 넘는 인도차이나 학생들이 호주에 거주했다.[12]
인도차이나 난민 집단 이주, 1970~80년대
1975년 라오스 왕국의 폐지와 그에 따른 공산주의 국가 수립으로 라오스 인구의 10분의 1이 이 나라를 탈출하게 되었다.[13] 호주 정부는 라오스 난민들이 호주에[14] 정착할 수 있도록 난민으로 망명하려는 인도차이나 이민자들의 유입에 대한 대응으로 1977년 인도주의 프로그램을 제정했다.
1976년 중반, 호주에는 400명 이상의 라오스 태생이 있었고,[15] 1986년에는 이 수치가 7,000명 이상으로 확대되었다.[16] 1986년 재입국한 베트남인 8만 명과 캄보디아인 13,000명에 비해 라오족은 인도차이나 난민 중 작은 부분을 차지했다.[5] 이 이주기간 동안 라오스인들은 배나 수영을 통해 라오스-타이 국경을 넘어 태국 난민촌에 정착했다. 배를 타고 이주한 대부분의 라오스인들은 배우자, 친척, 또는 친구들과 함께 동행했는데, 태국 난민 수용소로 이동하는 동안 가족, 친구들과 종종 헤어진 다른 인도차이나 난민들의 경험과는 대조적이다.[17]
1970-80년대 이주자 센터 경험
1970년대 중후반 대규모 이주 이후, 인도차이나 난민들 중 라오스인들은 처음에 이주 호스텔에 수용되었다. 정부가 후원하는 기관인 커먼웰스 호스텔스 리미티드(Commonwealth Hostels Limited)는 25개의[18] 호스텔을 운영했는데, 이 호스텔은 숙박 외에도 영어 강좌, 헬스케어, 케이터링, 복지 서비스를 신규 이주민들에게 제공했다.[2] 뉴사우스웨일스의 여러 호스텔은 카브라마타, 웨스트브리지, 이스트힐스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 지역들 근처에 인도차이나 거주지가 설립되고 현재의 2010년대에는 더 넓은 페어필드 지방정부 지역(LGA)이 설립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19][20] 빅토리아에는 브로드메데도스, 누나와딩, 프레스턴에 이주 센터가 있었고,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글렌글그와 스미스필드에는 호스텔이 있었다.[21]
이들 이주센터에서의 초기 체류는 라오스인들이 음식에 대한 불만(22.6%)과 지역사회의 친인척 및 가까운 친구와의 입주 희망(54.8%) 등으로 인해 많이 떠나 단명했다. 라오스 이주자의 4분의 1이 한 달도 안 돼 센터를 떠났고, 1~3개월 안에 39%가 더 떠났다. 그러나 라오스인들은 여전히 센터 내 체류로 인해 호주 사회로 통합될 수 있는 서류 작업 능력(33.9%)과 영어 수업(9.7%)[22] 등 일부 혜택을 인식하고 있었다.
라오족과 다른 인도차이나 민족들은 그들의 친척들과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이주 센터 근처의 페어필드 LGA에 거주지를 형성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영어 능력 수준이 낮은 라오스인들은 언어 장벽의 장애물 없이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라오스인들의 페어필드 LGA 정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으로는 주거의 저렴함과 자녀 학교와의 근접성이 있었다. 페어펠트 시 외곽의 서부 교외에서 살기로 선택한 라오스 사람들에게, 이 결정에 영향을 미친 지배적인 요인은 그들의 직업에 더 가까워지려는 욕구였다.[22]
1990년대 호주 라오스인들의 정착
1990년대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호주 시민이 되는 과정이 덜 엄격하여 라오스인들이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귀화 과정을 거치면 최소 5년의 영주권이 필요한 반면,[23] 호주 시민법은 이민자들이 기본적인 영어 능력만 갖추면 2년만 거주하면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했다.[24] 1984년에는, 나이든 개인이 영어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인정하여 시민권을 신청하는 50세 이상의 개인에게 면제를 제공하도록 법이 개정되었다.[24] 호주에 정착한 라오스인들의 대다수는 호주에서 처음 3년 이내에 시민권을 획득했다. 1975년부터 1990년대까지 라오스 난민의 4분의 3 이상이 호주 시민이 되었는데, 캄보디아인은 65%, 베트남 난민은 63%에 불과했다.[17]
정착이 라오스 가족구조에 미치는 영향
라오스 여성들과 배우자들의 관계는 호주로 이주하면서 두드러지게 영향을 받았으며, 라오스 난민 중 95%가 남편이나 아내와의 관계가 호주로 온 이후 달라졌다고 말했다. 라오스에서 전업주부로 지정된 많은 여성들은 남편으로부터의 수입 한 가지에 의존하는 것이 호주에서의 생활비에 불충분하여 호주 노동력에 가입해야 했다.[17] 성별 역학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가사 노동력을 보다 고르게 분배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 라오스 여성들은 그들의 남편이 라오에 있는 고향보다 더 많은 가사 업무를 맡았다고 진술했다. 라오 여성들은 보통 가정의 가장이 일을 끝내고 남은 시간을 친구들과 여유롭게 술을 마시며 보낸다.[17] 그러나 일부 라오스 여성들이 직면한 도전은 가정폭력의 위협으로 최근 입국한 이주민들이 지원체계 미비로 특히 취약해졌다. 라오스에서는 가정폭력이 가족이나 친구들의 개입을 통해 일반적으로 예방되거나 최소화되었지만, 호주에서는 이것이 일부 라오스 여성들에게는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라오스 남성들이 호주로 이주할 때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향에 기여하는 요인으로는 이주 경험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재정 관련 압박 등이 있었다.[25]
오스트레일리아의 고용
1970년대에는 라오인의 3분의 1이 친구, 친지와의 연계를 통해 고용을 확보했고, 많은 일자리가 제조업에 집중되었다. 보다 적은 비율(28.2%)의 라오호주인들이 이주 센터들이 제공하는 자원을 고용관리사들의 지원을 포함한 일자리 확보에 활용했다고 답했다.[22] 구직활동을 하는 라오스 실업자의 경우 낮은 수준의 영어능력(85.7%)이 취업의 걸림돌로 꼽혔고, 이어 빈자리 부족(42.9%)이 뒤를 이었다. 1990년대 동안, 라오스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라오스 남성들과 함께 공장에서 일했지만, 일부 남성들은 관리인, 정원사 또는 건설업에서 일했다.[17]
교육 경험
많은 라오스 어린이들이 교육 환경에서 언어 장벽에 직면했고 호주 어린이들에 비해 숙제를 끝내는 데 두 배나 많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라오스 아이들은 호주 사회에 빠르게 통합되어 라오스 전통보다 서구적 가치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라오스 아이들은 라오스의 전통처럼 부모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경향이 줄어들었다. 라오스 청소년이 호주 문화에 동화되는 것은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학교 행사나 파티에 자녀가 데이트를 하고 참석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 부모와의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됐다.[17]
문화적 차이
호주에서는 서양 전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라오스 사람들에 의해 생일 축하가 종종 이루어지지만, 라오스에서는 이러한 관습이 덜 잦다. 전통적으로 라오스 문화는 여성이 여전히 복종적이고 온순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다른 아시아 문화만큼 가부장적인 문화는 아니다. 많은 라오스 여성들은 어느 정도 독립할 수 있고, 심지어 라오스-호주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라오스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배우자의 성을 따랐지만, 호주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이 전통을 따르지 않고 대신에 그들 자신의 성을 지키기로 선택한다. 호주에서 좀처럼 실천되지 않는 라오스 여성들이 뒤따르는 또 다른 전통은 배우자를 따라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러나 라오스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여주는 다른 관습에는 남편의 빨래를 그녀 자신의 빨래와 따로 세탁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1990년 한 연구에서 일부 여성들은 여전히 그 뒤를 따랐다.[17]
라오스 문화에서 연장자에 대한 존경심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지배적인 가치로 작용하며, 지위가 낮다고 판단되는 젊은이나 개인이 연장자/상위자에게 존경을 표한다고 본다. 라오스 남녀는 영어로 번역하면 인위적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어른들에게 연설하기 위해 격식을 차린 연설을 한다. 반대로, 호주의 라오스인들은 영어를 말할 때 '부탁한다' '고맙다'와 같은 공손한 문구를 포함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한 용어는 라오스어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26]
조직
라오스인들이 호주에서 설립한 단체로는 라오스학회, 해외 라오스 평의회, 라오스 팻씬 협회, 라오스 케어 주식회사, 라오스 여성회 등이 있다. 이들 조직의 지도력은 라오스 공산화 이전 정부의 공무원들과 그 정부 시절 콜롬보 계획에 따라 호주로 오기 위해 후원을 받은 유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이끌어진다.[27]
다른 단체로는 포레스트 힐에 본부를 둔 라오호주 복지 협회, VIC[28], 라오호주 문화 발전을 주장하는[29] 라오호주 협회 등이 있다. 또한 SBS 라디오가 라오스 커뮤니티에 파견하여 운영하는 라오스어 프로그램도 매주 월요일부터 오후 4~5시, 토요일 오후 9~10시에 운영된다.[30]
종교
호주의 라오스인(70%)은 대부분 테라바다 불교 신자로 가톨릭 신자가 소수다.[3] 호주의 라오스에는 NSW[31] 에덴소르 공원에 위치한 왓 프라요르케오 닥마야나람, NSW 웨더번(Wedderburn)의 왓 불상 등 라오스인들이 자주 찾는 주요 사찰들이 여럿 있다.[32] 빅토리아주에는 왓담마니베사야라고도 알려진 빅토리아 라오스 주요 사찰이 있다.[33]
불교 사찰은 종교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라오호주인들의 공동체 회의 장소로도 기능하고 있다. 라오스 문화의 주요 축제는 4월 중순에 열리는 라오스 새해(일명 피마이 또는 송크란)를 비롯한 주요 사찰에서 열린다. 물뿌리는 것은 축제 기간 동안 지배적인 활동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행운을 기원하는 수단이다.[34]
참고 항목
메모들
참조
- ^ Oakman, Daniel (2004). Facing Asia: A History of the Colombo Plan. Canberra: Pandanus Books. p. 80. ISBN 9781921666926.
- ^ a b c Senate Standing Committee on Foreign Affairs and Defence (16 February 1982). "Indochinese Refugee Resettlement - Australia's Involvement". Parliament of Australia. Retrieved 6 November 2020.
- ^ a b c Department of Home Affairs (2018). "Community Information Summary - Laos-born" (PDF). Department of Home Affairs. Retrieved 6 November 2020.
- ^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18 September 2014). "3105.0.65.001 - Australian Historical Population Statistics, 2014".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Retrieved 23 November 2020.
- ^ a b c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2019). "3105.0.65.001 Australian Historical Population Statistics, 2019".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Retrieved 23 November 2020.
- ^ National Museum Australia (2020). "White Australia policy". www.nma.gov.au. Retrieved 24 November 2020.
- ^ National Archives of Australia (2020). "The Immigration Restriction Act 1901". Retrieved 24 November 2020.
- ^ Barton, Edmund (1901). "Immigration Restriction Bill". Parliament of Australia. Retrieved 24 November 2020.
- ^ "FOREIGN MIGRATION TO AUSTRALIA". Daily Telegraph. 26 February 1925. Retrieved 24 November 2020.
- ^ Jones, Benjamin T. (10 April 2017). "What was the White Australia Policy, and how does it still affect us now?". SBS. Retrieved 24 November 2020.
- ^ Coughlan, James E. (2010). "The Countries of Birth and Ethnicities of Australia's Hmong and Lao Communities: An Analysis of Recent Australian Census Data" (PDF). Journal of Lao Studies. 1: 55–85.
- ^ Asians in Australia : the dynamics of migration and settlement. Inglis, Christine, 1944-.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1992. p. 75. ISBN 981-3016-33-7. OCLC 28831531.CS1 maint: 기타(링크)
- ^ Museums Victoria (2017). "Immigration History from Laos to Victoria". Museums Victoria. Retrieved 6 November 2020.
- ^ Phillips, Janet; Koleth, Elsa; Karlsen, Elibritt (21 January 2011). "Seeking asylum: Australia's humanitarian program". Department of Parliamentary Services. Retrieved 6 November 2020.
- ^ Australia Bureau of Statistics (20 November 1979). "Population and Dwellings: Summary Tables" (PDF).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Retrieved 6 November 2020.
- ^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1991). "Multicultural Australia" (PDF).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Retrieved 6 November 2020.
- ^ a b c d e f g Ngaosyvathn, Mayoury (1993). The Lao in Australia : perspectives on settlement experiences. Queensland: Griffith University. pp. 5–6, 11, 14–15, 16, 23–24. ISBN 9780868574790.
- ^ Department of Immigration (1970). Migrant Hostels in Australia. Department of Immigration. p. 2.
- ^ Brew, Kerry (1985). "What's happened to Cabramatta?". Macquarie University. hdl:1959.14/22271. Retrieved 6 November 2020.
- ^ Commonwealth Hostels Ltd (1967). "Facts about Commonwealth Hostels Limited".
- ^ Commonwealth Hostels Ltd (1967). Facts about Commonwealth Hostels Limited. Commonwealth Hostels Ltd.
- ^ a b c MSJ Keys Young Planners, and Australia (1980). The Settlement Process of the Vietnamese, Lao, Kampuchean and Timorese in Sydney. Department of Immigration Ethnic Affairs. pp. 35, 42, 47, 65, 96, 98.
- ^ Woodrow-Lafield, Karen A.; Xu, Xiaohe; Kersen, Thomas; Poch, Bunnak (June 2004). "Naturalization of U.S. Immigrants". Population Research and Policy Review. 23 (3): 187–218. doi:10.1023/b:popu.0000034097.35915.e1. ISSN 0167-5923. PMC 2613363. PMID 19122767.
- ^ a b Parliament of Australia (11 September 2009). "Australian citizenship: a chronology of major developments in policy and law". www.aph.gov.au. Retrieved 23 November 2020.
- ^ Dang, Kien; Alcorso, Caroline (1990). Better on your own? A survey of domestic violence victims in the Vietnamese, Khmer and Lao communities. Lidcombe, NSW: Vietnamese Women's Association. pp. 26–28.
- ^ Brick, Jean (1984). Language and culture: Laos: Background notes for teachers in the Adult Migrant Education Program. Sydney: N.S.W. Adult Migrant Education Service. pp. 39–40.
- ^ Phoumirath, T. (2001), "Laotians", in Jupp, James (ed.), The Australian people: an encyclopedia of the nation, its people and their origi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550–552, ISBN 978-0-521-80789-0
- ^ Victorian Multicultural Commission (2020). "Lao Australian Welfare Association". Victorian Multicultural Commission. Retrieved 6 November 2020.
- ^ Victorian Multicultural Commission (2020). "Lao Australian Society". Victorian Multicultural Commission. Retrieved 6 November 2020.
- ^ SBS (2019). "Appendix 7 - SBS Radio Schedules" (PDF). SBS. Retrieved 6 November 2020.
- ^ Chapman, Adam (1 August 2004). "Music and digital media across the lao diaspora". The Asia Pacific Journal of Anthropology. 5 (2): 131. doi:10.1080/1444221042000247670. ISSN 1444-2213. S2CID 145600547.
- ^ Carruthers, Ashley; Meuansanith, Phouvanh (2010). "The Lao in Sydney". Sydney Journal. 2: 39 – via UTS ePress.
- ^ Whitehorse City Council (2020). "Wat Lao Melbourne Victoria Inc, Lao Buddhist Monastery". City of Whitehorse. Retrieved 6 November 2020.
- ^ Carruthers, Ashley; Meuansanith, Phouvanh (2010). "The Lao in Sydney". Sydney Journal. 2 (2): 36–41. doi:10.5130/sj.v2i2.1498. ISSN 1835-0151.
추가 읽기
- Gardner, J.; Sayavongsa, N.; Webster, I. (1993), "HIV education and prevention programs for the Laotian community in south western Sydney, Australia", Int Conf AIDS, 9 (2)
- Developing best practice drug and alcohol treatment service and support models for young people of Cambodian, Lao and Vietnamese Origin, Drug Treatment Services, Aged, Community and Mental Health Division Reports, Victoria: Dept. of Human Services, 1998, ISBN 978-0-7306-5122-2
외부 링크
- Ashley Carruthers and Phouvanh Meuansanith (2010). "Lao". Dictionary of Sydney. Retrieved 4 October 2015. [CC-By-SA] (시드니의 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