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부룩
Kota Buruk말 그대로 말레이어로 '폐허의 항구'라는 뜻의 [1]코타부룩은 오늘날의 캄풍 탄중 세라부, 요락, 선가이테랍, 부킷파시르, 파고, 무아르, 조호르, 말레이시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지다. 이 유적지는 원래 코타부룩(Kota Buruk) 터로 확인되어 일반인들이 방문할 수 있는 역사적 장소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인근에는 또 다른 유적지인 비아왁 부숙의 요새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요새와 비아왁 부축은 파라메스와라가 말라카로 이주하여 말라카 술탄국 제국을 열기 전에 테마시크에서 추방될 때 무아르의 파고에 머물면서 개장한 고대 말라카 역사의 두 유적지다.
이러한 사건에 관한 역사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출처가 있다.
- João de Barros wrote in 1553 in his 2nd Décadas da Ásia ("Decades of Asia"), a history of the Portuguese in India and Asia that Parameswara (Paramicura) who were driven away from Temasik after he killed the representative of the King of Siam, Temagi, had escaped in exile and stopped in Muar and built in rural areas of Muar called Pagoh.
- 툰 스리 라낭: Shellabear 버전: 세자라 멜라유 또는 말레이 연보에서는 파람스와라(술탄 이스칸다르 샤) 통치 때의 테마식(Temasik)이 마자파히트 왕국에 패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그의 추종자들을 포함한 그의 가족은 무아르의 파고로 도망쳐 무아 강둑에 비아왁 부숙이라는 두 지역을 개업하고 코타 부룩이라는 요새를 건설한 후 멜라카를 개업하였다. 1488년 말라카 술탄 알라우딘 리야트 샤 (1477–1488)가 죽어서 울루 무아르의 파고에 묻혔다.
- Tomé Pires(수마 오리엔탈): 이 소식통은 파라메스와라가 아버지 라자 샘 아기를 대신해 말라카를 개국한 팔렘방 통치자로 등장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자바 왕 바타라 타마빌의 공격을 받아 자신을 '메주라'(용서하는 자들)로 선언하고 테마식(싱가포르)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아유타야의 대표인 테마기를 살해하고 5년 동안 비밀리에 테마식 왕을 다스렸다. 그러나 아유타야 왕이 공격한 복수를 두려워하여 천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무아르의 파고로 도망하여 셀레타르 민족이 여전히 말라카를 점령하고 있을 때 6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참조
- ^ "Forts no defence against moniitor lizards, By Sim Bak Heng, Johor Streets". New Straits Times Press. 17 August 2009.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2 July 2011.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