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롬헬드

Heinz Roemheld

하인츠 롬헬드(Heinz Roemhold, 1901년 5월 1일 ~ 1985년 2월 11일)는 미국작곡가였다.

어린 시절과 경력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태어난 하인츠 에릭 롬헬드(Heinz Eric Roemhold)는 독일 이민자 하인리히 롬헬드와 그의 아내 패니 라우터버그 롬헬드의 네 자녀 중 한 명이었다.[1][2] 하인리히는 약사였지만,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음악적이었다. 하인즈의 동생 에드거(1898~1964)가 지휘자가 되고, 누나 이르므가르드(1904~1995)는 밀워키 음악 교사와 라디오 방송인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Roemhold는 4살 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 신동이었다. 19세에 밀워키 음대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피아노공부할 돈을 벌기 위해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1920년 베를린에 가서 휴고 카운, 페루치오 부소니, 에곤 페트리 등과 함께 공부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여 출연하였다.[citation needed]

그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Roemhold는 피아니스트로서나 지휘자로서 무성 영화의 음악에 관여하게 되었다. 1925년 그곳 유니버설 픽처스 극장의 수장으로 베를린으로 돌려보냈으나 나치즘의 발흥으로 1929년 떠나야 했다.[citation needed]

미국으로 돌아온 롬헬드는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저명한 영화 작곡가가 되었다. 그는 비록 스크린에서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애틀랜타를 불태우는 등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몇 장면을 기록했다. 1942년, 그는 양키 두들 댄디로 아카데미 오리지널 음악상을 수상했다. 그가 작곡한 400편이 넘는 다른 영화들 중에는 "상하이에서 온 부인"인 신사 짐과 "보이지 않는 남자"인 "샤인 온" 하베스트 문"이 있었다.[citation needed] 그리고 "Shine On Harvest Moon"인 "Harvest Moon"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롬헬드는 다시 한번 독일로 돌아와 유럽에 있는 미군 정보 중앙부대의 영화, 극장, 음악부장이 되었다. 그는 1950년대 후반까지 몇몇 주요 영화 스튜디오에서 글을 계속 썼으며, 잠시 텔레비전에서 일한 후 1964년 은퇴하여 고전적인 작문에 전념하였다. 그는 영화 루비 젠트리(1952년)의 '루비'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이 곡이 기준이 됐다.

사생활

그는 전 밀워키 양인 에밀린 데프넷(1901~1980)과 결혼했고, 이후 이혼했다. 그들에게는 게임쇼 진행자나르즈와 수년 동안 결혼한 메리 루 롬브드, 그리고 게임쇼 진행자 빌 컬런과 결혼한 앤이라는 두 딸이 있었다.[3]

죽음

Roemhold는 1985년 2월 11일 헌팅턴 해변의 요양원에서 3주 전에 폐렴에 걸린 후 사망했다.[4]

부분 필모그래피

참조

  1. ^ [1]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태어난 하인리히 에리히 롬브르트는 독일 이민자 하인리히 롬브르트와 그의 아내 패니 라우터버그 롬브르트의 네 자녀 중 한 명이었다."
  2. ^ [2]"밀워키 태생인 하인츠 롬브드는 영화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위한 중요한 길을 따랐다. 4살 때 그는 피아노 신동으로 밝혀졌다. 그는 나중에 베를린에서 페루치오 부소니, 에곤 페트리와 함께 공부했고, 23살에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객원 독주자로 공연했다."
  3. ^ 1985년 2월 13일 시카고 트리뷴, 부고 url=https://www.chicagotribune.com/news/ct-xpm-1985-02-13-8501090214-story.html%7Cretrieved= 2019년 5월 1일
  4. ^ 1985년 2월 13일 시카고 트리뷴, 부고 url=https://www.chicagotribune.com/news/ct-xpm-1985-02-13-8501090214-story.html%7Cretrieved= 2019년 5월 1일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