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레만

Willi Lehmann
빌리 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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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레만
닉네임에이전트 A-201/Breitenbach
태어난1884년 3월 15일
라이프치히, 독일 제국
죽은1942년 12월 13일 (1942-12-13) (58세)
베를린
나치 독일 삭센하우젠 수용소
얼리전스독일.
USSR
근속년수1911-1942년 독일
USSR 1929-1942
순위SS-Hauptsturmfuhrer (대장)
구성 단위게슈타포

빌리(윌리) 레만(Willy) 레만(Lehmann, 1884년 3월 15일, 라이프치히에서 - 1942년 12월 13일, 베를린에서)은 나치 독일의 경찰이자 소련 요원이었다.[1]

레만은 범죄 수사관이자 SS-Hauptsturmführer(대장)로, 에이전트 A-201/Breitenbach라는 가명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레만은 독일에서 NKVD의 가장 귀중한 공급원 중 한 명이었다.

전기

레만은 1911년 베를린 경찰대에 입대했다. 1920년에 그는 대간첩 부국장이 되었다. 1929년에 레만은 NKVD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산주의자의 동정심에서가 아니라 결혼했고, 여자 친구도 있었고, 돈도 필요했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말에 돈을 거는 것을 좋아했다.[2]

1933년에 레만은 게슈타포에 가입했다. 게슈타포의 NKVD 코드명은 아포테케(약칭)이다. 게슈타포에서 레만은 소련의 스파이 활동을 격퇴하는 사단장이 되었다. 레만의 정보 덕분에 소련은 나중에 킴 필비를 영입한 에이전트 아놀드 도이치를 석방할 수 있었다.[3]

레만은 1934년에 SS에 입대했다. 6월 말에 헤르만 괴링은 레만에게 정권의 반대자들을 청산하기 위해 뢰름 푸치를 조직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레만은 나중에 NKVD에 자신이 '긴 칼의 밤' 동안 저지른 살인이 자신을 병들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의 게슈타포 상관들과 그의 지위를 굳혔다.

1939년 레만은 제국 보안 본청(RSHA), 사단 4로 전근했다. 그의 책임은 소련이 독일 군비산업을 염탐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이 지위는 레만이 독일군 병력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소련에 제공할 수 있게 했다. 1941년 6월 19일 레만은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할 계획을 세운 정확한 날짜를 NKVD에 보고했다. 바르바로사 작전은 1941년 6월 22일에 개시되었다. 그의 메시지는 베리아와 스탈린에게 전보되었다.

1942년 독일군의 붉은 오케스트라 발견으로 레만은 하인리히 힘러의 명령으로 체포되어 재판 없이 총살되었다. 하인리히 힘러의 명령으로 레만은 이 모든 것을 숨겼다.

참조

  1. ^ Klussmann, Uwe (29 September 2009). "Spying in World War II Stalin's man in the Gestapo". SPIEGELnet GmbH. Der Spiegel. Retrieved 31 December 2018.
  2. ^ 우베 클루스만: 게슈타포의 스탈린스 만. 슈피겔 2009년 9월 29일
  3. ^ 한스 코피: 윌리 레만; in: 한스 샤프라넥과 요하네스 투켈 (Eds):크리그는 에테르다. Widestand und Spionage im Zweiten Weltkrieg. Picus Verlag: 2004년, ISBN 3-85452-470-6

참고 문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