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바투에카스

Tomas Batuecas
토마스 바투카스 마루간
Tomas Batuecas Marugan.jpg
태어난1893년 3월 7일
죽은1972년 10월 21일 (78세 또는 79세)
국적스페인어
모교마드리드 콤푸텐세 대학교
로 알려져 있다.원자량 결정
과학 경력
필드물리화학
기관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학교
박사학위 자문위원블라스 카브레라 펠리페

토마스 바투에카스 마루간(1893~1972)은 원소의 원자 무게에 관한 연구로 가장 유명한 스페인의 화학자였다.바투에카스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학의 화학 교수 겸 부총장을 지냈다.[1]

인생

1913년 살라망카 대학 과학부 교수를 우등으로 졸업했고 같은 해 블라스 카브레라 펠리페 휘하의 마드리드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했다.1916년에 바투에카스는 필립 A와 함께 제네바 대학에서 공부했다. 실제 가스의 밀도와 압축성에 관심이 있었던 구예.제네바에서 그는 또한 엔리케 몰스 오르멜라를 만났는데, 그는 그의 오랜 연구 동료가 되었다.

1917년 마드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한 뒤 잠시 제네바대학으로 돌아와 화학을 가르쳤다.마드리드 콤푸텐세 대학으로 복귀한 그는 카브레라, 몰레와 함께 가스의 성질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1932년 바투에카스는 산티아고 대학에 입학하여 1963년 은퇴할 때까지 남아 있었다.1936년 그는 부총장으로 임명되었다.[2]

그의 경력 동안, 바투에카스는 130개 이상의 과학 논문을 발표했다.그의 연구는 주로 가스의 밀도 측정이나 X선 결정학을 이용한 원자 무게의 측정을 포함했다.원자 무게에 관한 작업은 1916년 구예와 함께 제네바에서 시작되었고, 실제 가스의 밀도를 제한하는 다니엘 베르테롯의 방법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마드리드 (1924년)에서도 바투에카스는 원소의 원자 무게를 결정하기 위한 X선 결정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분야에서 바투에카스의 가장 주목할 만한 공헌은 아마도 탄소-12 핵종에 기초한 원자 무게의 국제 척도를 채택한 그의 역할일 것이다.바투에카스는 1960~1963년 국제원자력기구(IAUPAC) 총회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위원장을 지냈으며, 1961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국제순수응화학(IUPAC) 총회에서 새로운 원자량 규모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명예

바투에카스가 40년 동안 살았던 산티아고 시는 그가 죽기 전날에 이 도시의 은메달을 그에게 수여했다.산티아고에서 거리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3]그리고 그의 고향에서도.[4]

참조

  1. ^ Bermejo Patiño, Manuel; Fandiño Veiga, Xosé Ramón (2013). "Tomas Batuecas Marugan". culturagalega.org.
  2. ^ Fernandez Alonso, J.I. (1964). "Vida universitaria: biografía del profesor T. Batuecas". Nova Acta Científica Compostelana (Bioloxía). 26: 163–183.
  3. ^ "Calle Tomas Batuecas Marugan".
  4. ^ "Plaza Doctor Tomas Batuecas Maru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