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혁명의 연표
Timeline of the Orange Revolution아래는 2004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오렌지 혁명'을 촉발한 결선투표 이후 일어난 사건들의 시간표다.
11월 21일
저녁 투표소가 문을 닫은 직후 여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빅토르 유셴코에게 상당한 우위를 보였다. 몇몇 우크라이나 연구단체들이 실시한 1차 여론조사는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43%에 대해 54%의 지지를 얻은 유첸코에게 투표했다. 전국 500여 개 투표소에서 질문받은 유권자 3만여 명 중 77%가 답한 결과다. 우크라이나 사회감시센터가 실시한 2차 여론조사에서 유셴코가 49.5% 대 45.9%로 앞섰다. 야누코비치 선거팀이 자체 출구조사 결과를 인용, 후보를 3%대 5%로 앞섰다.
뽀라학생운동 회원 등 수만 명의 야권 지지자들은 이 결과를 TV로 생중계하기 위해 키이브 독립광장에 모였다.
11월 22일
02:00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CEC)는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33%의 득표율을 기록한 후 빅토르 유셴코 후보가 50% 대 46%로 앞섰다고 발표했다. 이 자료는 투표가 종료된 직후에 유셴코의 승리를 선언한 몇몇 사회학자 집단의 결과에서 크게 벗어났다. 유셴코는 세르히 키발로프를 만나기 위해 CEC로 여행을 갔다. 유시첸코는 이날 비공개로 열린 회의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리는 우리의 지지자들에게 독립의 메단에게 와서 그들의 자유를 지켜줄 것을 요구한다."
같은 날 밤 키이브 장갑차들이 도착했다. BTRs가 CEC 건물 옆에 나타났다. 강화된 보안하에 대통령 행정부의 건물 단지를 점령했다. 수도에서의 명령은 내무부와 스파츠나즈 소속의 몇 만 명의 군인이 수행했다.
우크라이나 CEC는 99%의 득표율로 야누코비치가 49.4%, 유셴코가 46.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야당에 의해 거부되었고, 유셴코는 지지자들에게 "투표의 총체적 위변조"에 항의할 것을 요구했다. 키예프에서의 집회는 규모가 커졌고 우크라이나의 다른 곳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 중 일부는 키예프 독립광장에 텐트를 쳤다. 그날 밤 늦게 유셴코는 지지자들에게 텐트를 해체하려는 보안군으로부터 텐트 진지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광장에 하룻밤 머물라고 말했다.
우리는 당국이 오전 3시에 텐트 도시를 파괴하기를 원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2시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모든 밤나무와[nb 1] 텐트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여기 오래 있다는 걸 당국에 보여줘야 해 여기엔 매 시간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야.
리비브와 이바노프랑키브스크 등 서부 우크라이나 4대 도시의 시의회는 공식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유셴코가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옵서버 역할을 하는 보리스 그리즐로프 러시아 두마 대통령은 선언된 결과를 최종으로 추정하고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승리를 축하했고, 블라디미르 푸틴도 이를 축하했다.
군용차량과 특수작전요원의 이전으로 인한 추운 날씨와 공포에도 불구하고 유셴코 지지자들은 10만~15만 명 정도의 팔로워를 모았다. 회의에는 빅토르 유셴코, 율리아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올렉산드르 모로즈 사회당 당수, 아나톨리 키나크 기업가 대표 등 야당 지도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유셴코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조직적인 저항운동에 불러들였다. 티모셴코는 산업계와 고등교육기관에서 대규모 파업의 시작은 물론 모든 도로, 공항, 철도의 폐쇄를 요구했다.
유셴코 행정부는 선거구 폐쇄 이후 참관인이나 언론인이 출입할 수 없는 도네츠크·루한스크 주(州) 선거공보물인 라다 특별석좌를 요청했다.
뽀라 조직의 수많은 천막들이 크레스차티크 지역과 그 근처의 거리 및 광장에 설치되었다.
리처드 루가르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이제 선거 당일의 공격적이고 강력한 위변조 및 침해 계획이 정부와의 조율이나 협조 아래 이뤄진 것이 분명해졌다"고 선언했다. 엘마르 브록 유럽의회 외교위원장은 위변조 관련 정보가 확인될 경우 금융제재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다. 유리 우샤코프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는 A 국무장관의 보좌관과의 회담에 초청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 빅토르 야누코비치에게 축하를 보내자 서두를 우려를 표하는 엘리자베스 존스.
11월 23일
약 10만 명의 유셴코 지지자들은 키예프에 모여 우크라이나 의회인 베르호브나 라다 회기를 기다렸다가 사기 혐의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기를 희망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수도로 이동했지만, 주요 도로와 공항의 정부 폐쇄로 인해 여정이 중단되었다. 시위대의 유사한 집회가 다른 주요 도시, 특히 L'viv에서 열렸다.
야누코비치 지지자들에 의해 보이콧된 의회 회기에서, 유셴코는 합법적으로 이것을 하기 위한 의회의 정족수는 부족했지만 대통령 선서를 했다. 맹세를 하는 것은 따라서 순전히 상징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11월 24일
야누코비치 주지사와 유셴코 주지사가 선거 결과에 대한 협상을 위해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나중에 거부되었고, 정부 반대파는 야누코비치 주지사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키예프에서는 유셴코의 계속되는 항소가 있은 후 사흘째 시위가 계속되었다. 더 많은 양측의 지지자들이 그 나라의 외곽 지역에서 그 도시에 도착했다. 선거관리위원회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전경들이 출동했다.
유셴코는 자신의 선거 색깔 이후 지지자들에게 정부를 무력화시키고 야누코비치에게 패배를 인정하도록 할 목적으로 일련의 전국적인 총파업 - "오렌지 혁명"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키예프 독립광장에는 수백 개의 천막이 세워졌고 인근 레닌 도서관은 시위대의 본부 역할을 하기 위해 인수되었다. 시위대는 또한 키예프의 각료회의를 봉쇄하여 정부를 마비시켰다.
11월 25일
우크라이나 대법원은 야당의 선거부정 혐의가 소명될 때까지 선거결과를 공표하지 말 것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명령했다. 이는 야당으로서는 결과의 공식 인정을 사실상 중단한 것이어서 큰 승리로 받아들여졌다.
11월 26일
외진 레오니드 쿠흐마 대통령이 마련한 라운드 테이블 회담은 야누코비치와 유셴코 사이에서 시작됐다. 쿠치마의 요청에 따라 고위급 외국 중재자들도 회담에 참가했다. 알렉산더 크웨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 발다스 아담쿠스 리투아니아 대통령, 보리스 그리즐로프 러시아 두마 의장,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수장, 얀 쿠비시 OSCE 사무총장 등이 그것이었다. 이날 라운드 테이블에는 우크라이나 의회 의장 볼로디미르 리빈도 참석했다. (ABC뉴스)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야당 집회의 텔레비전 보도는 이제 크게 늘었고 야당 성명은 처음으로 널리 보도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동부 야누코비치의 중심지인 야누코비치의 지역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시위 장면들을 상영하지 않음으로써 정부 노선을 계속 따라갔다.[citation needed]
11월 27일
야누코비치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유셴코는 추가 협상안이 표결에 부쳐질 경우에만 동의하겠다고 밝혔다.(워싱턴타임스)
같은 날 우크라이나 의회인 베르호브나 라다는 여론조사 결과 무효를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불신임 투표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번 선언은 구속력이 없었고 대법원 판결의 필요성도 뒤집지 않았다.(BBC)
11월 28일
분리주의 문제는 동부 및 남부 지역의 주지사들이 루한스크 지역의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야누코비치 주지사와 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 시장을 만나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위한 자치권이나 별도의 공화국을 논의하면서 불거졌다. 보리스 콜레스니코프 도네츠크 지역협의회 의장은 우크라이나를 연방으로 만들고 수도를 하르키브에 두고 새로운 남동부 우크라이나 자치공화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1][2] 유셴코는 이런 사상을 반헌법적이라고 비판했고, 관측통들은 야누코비치의 명백한 분리주의 지지로 정부 측의 입지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세르게이 팝코프 중장의 말에 따르면 키예프 독립광장에서 시위 진압에 1만 명 이상의 IM(내부) 부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SBU(Ukrainian Security Service, KGB 후임)는 야당 지도자들에게 단속에 대해 경고했다. 올렉산데프 갈라카 GRU(군사정보국) 대표는 "유혈사태를 예방하라"고 요구했다. 육군 대령 이호르 P. 스페스코(SBU 서장)와 비탈리 로마첸코 소령(군사반첩 서장)은 모두 팝코프에게 병력을 철수하라고 경고했는데, 그가 그렇게 했다.
11월 29일, 11월 30일
유셴코는 야누코비치 총리를 야당이 대통령직을 수락할 경우 총리직의 야누코비치 총리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정부와 야당 사이에 회담이 결렬됐다. 야누코비치의 대안적인 제안은 자신이나 유셴코를 후보로 내세우지 않은 신선한 선거였다. 이 또한 거절당했다. 레오니드 쿠흐마 전 대통령은 논란이 되고 있는 2차 선거의 재집행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개최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1월 29일, 야누코비치의 선거 관리자인 Serhiy Tyyhypko는 야누코비치 선거 운동에서의 그의 지위와 우크라이나의 국립 은행 총재직을 모두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타이히프코는 재선거가 진행될 경우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채널5 TV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야누코비치는 타이히프코의 움직임에 대해 "잘못된 고양이"라고 부르며 화를 내며 반응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의회가 당초 야누코비치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야누코비치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야권은 차질을 빚는 듯했다.
12월 1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야누코비치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찬성 229표로 통과시키고 '국민 신뢰의 정부'를 만들자는 투표를 했다. 이 투표는 레오니드 쿠흐마 대통령이 야누코비치를 해임하고 총리 지명자를 임명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데, 그는 아마도 볼로디미르 리빈 국회의장이 될 것이다. 쿠치마는 투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의회가 과반수(450명의 대의원 중 301명)를 확보해야 하는 새로운 투표로 거부권을 무효화할 수 있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투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측근들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원탁회담은 재개됐다. 호의의 표시로 유셴코는 지지자들에게 정부 작업이 재개될 수 있도록 키예프의 공식 건물 봉쇄를 중단하라고 말하는데 동의했다.
야누코비치 캠프는 우크라이나와 키예프 지역의 유셴코 지원지역 비리에 항의하는 소장을 우크라이나 대법원에 제출했다. 현재 양 진영 모두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무효를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무효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12월 2일
쿠치마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만나 현재 진행 중인 위기를 논의했다. 두 대통령은 성명서를 발표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2차 선거의 재집행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 제안은 쿠치마가 몇 달 더 집권할 수 있게 하고 반대파의 기세를 꺾을 수 있기 때문에 유셴코 진영에서는 거절당했다. 유셴코는 즉각 재주행을 고집하겠다고 선언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새로운 여론조사는 공개돼야 하고 공정해야 하며 외세의 영향력이 없어야 한다"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뜻을 알고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위기가 우크라이나 경제에 끼칠 수 있는 피해에 대한 우려가 표출됐다. 국가 통화인 '흐리브니아'는 다른 통화에 대해 계속 하락했고 우크라이나 중앙 은행은 통화 개발의 실행을 경계하기 위해 모든 은행에 현금 인출 한도를 부과했다.
12월 3일
우크라이나 대법원은 5일간의 심의 끝에 결선투표 결과를 무효로 선언했다. 아나톨리 야레마 법원 의장은 12월 5일(즉, 12월 26일)부터 3주 이내에 재투표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쿠치마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지지했던 3개월간의 완전히 새로운 선거가 아닌 결선투표만을 재집권하는 것이 될 것이다. 유셴코 진영은 법정에서 2라운드만 유효성을 공격했고, 따라서 대법원은 2라운드 결과만 무효화할 수 있었다. 1차 투표 역시 무효화·반복되려면(쿠치마/야누코비치 진영이 원하는 대로), 1차 투표의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추가 증거가 나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그렇게 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양측은 자신들이 최종적인 것으로 간주한 법원의 결정에 따르기로 약속했다.
한편 의회는 1600명의 이라크 주둔군을 철수시킬 것을 레오니드 쿠흐마 전 대통령에게 요청하기로 의결했다. 이 제안은 공산당이 제안했고, 450명의 의원들 중 257명이 통과했다. 두 대선 후보 모두 이전에 우크라이나 철군을 지지했었다.
12월 4일
유셴코 지지자들은 우크라이나 대법원에서 원하는 것을 받아내면서 오렌지 혁명의 지지자들은 독립광장에 남아 있지만 키예프에서는 시위가 진정됐다.
이날 우크라이나 의회는 유셴코파가 요구한 선거법 개정안을 채택하지 못했다. 쿠치마는 그가 더 이른 날짜에 이루어진 합의를 어겼다고 비난했다. 사회당과 공산당은 만약 야당이 차례로 헌법 개정을 지지한다면 선거의 변화에 찬성표를 던지기로 합의했었다. 이는 수상과 의회에 유리한 대통령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셴코가 선거 후에야 개헌이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 합의는 무산되었다.
12월 5일
유셴코는 BBC TV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외국 관찰자들을 환영했지만, 새로운 선거에 국제사회가 간섭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유시첸코의 가장 유명한 동맹인 정치인 율리아 티모셴코는 유시첸코가 승리하면 총리로 임명되고 싶다고 말했다.
쿠치마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이후 첫 인터뷰에서 자신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다짐하고 무력 사용이나 국가비상사태 도입 등 어떤 억압적인 조치도 배제했다. 그는 또 결선투표 조작에 공모한 것으로 보여 강한 비판을 받았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5명을 개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야누코비치 총리 해임 요구를 거부해 당초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던 우크라이나 의회와 새로운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
12월 6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터키에서 열린 연설에서 서구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강요하려 한다고 비난하며 우크라이나의 새 선거에 대한 외국의 간섭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유셴코는 부재자 투표와 민가에서의 투표를 금지하는 선거법 개정 운동을 계속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처음 두 표에서 가장 남용되는 선거 조항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을 희석하고 부분적으로 의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쿠치마의 제안도 거부했는데, 이 제안은 여전히 친야누코비치 세력이 막강한 상황이다.
12월 7일 - 12월 8일
며칠간의 열띤 토론 끝에 베르호브나 라다(우크라이나 의회)는 선거법을 바꾸고 우크라이나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기하기 위한 개혁 방안에 합의했다. 개혁의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 중앙선관위 변경 및 위원 일부 해촉
- 부재자 투표 및 자택 투표에 대한 엄격한 규정으로 부정 투표 가능성 감소
- 대통령이 오직 총리, 국방부 및 외무장관만을 임명하는 데 국한되어 의회의 승인을 받는 대통령 권한 축소
- 서부와 동부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지역들을 위한 더 큰 강대국들.
개혁안은 450명의 의원 중 402명(반대 21표, 기권 19표)의 찬성을 얻어 구치마 대통령이 즉각 법안으로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야당은 1900년(현지 시간)부터 정부청사 봉쇄를 12월 8일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이 개혁은 우크라이나 내 힘의 균형을 강력한 대통령제에서 의회제로 옮겨간다. 이번 선거 결과는 경쟁 진영 간 타협으로 보여지는데, 새로운 선거 규정이 유셴코의 승리 가능성을 향상시키겠지만 헌법 개정으로 쿠흐마·야누코비치 진영은 선거 이후 의회와 지역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쿠흐마는 야누코비치에게 12월 26일 치러진 선거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휴직을 허가했고, 총리대행을 맡을 미콜라 아자로프 제1부총리를 임명했다.
더 타임스는 오스트리아 의사들이 유셴코의 의문의 질병이 생물학적 또는 화학 물질에 의한 중독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루돌피너하우스 클리닉의 회장인 마이클 짐퍼 박사는 그의 병은 "대부분 구강으로 투여된 고농도의 다이옥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3]
1월 6일
야누코비치 주지사는 25일 대법원에서 자신이 성공할 가망이 없음을 인정했음에도 결선투표 패배에 도전한다. 그 항소는 나중에 기각되었다.
1월 10일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11시30분(키이브 시간) 위원회 회의 생중계를 통해 빅토르 유셴코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차전을 반복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등록 유권자 수: | 37 657 704 | |
전달된 투표용지 수: | 29 073 276 | |
투표 수: | 29 068 971 | |
유효하지 않은 투표용지 수: | 422 492 | |
유시첸코에 대한 투표: | 15 115 712 | 51.99% |
야누코비치에 대한 투표: | 12 848 528 | 44.20% |
양쪽에 반대표를 던지다: | 682 239 | 2.34% |
1월 11일
우크라이나 대법원은 야누코비치 주지사의 선거결과에 대한 상고심이 법원에서 검토될 때까지 선거공식 결과 발표를 잠정 중단했다.
1월 20일
우크라이나 대법원은 이날 오전 2시40분(키이브 시간) 야누코비치의 상고 기각 결정을 발표했다. 선거 결과 (2005년 1월 10일자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 제14호)가 베르호브나 라다(Verkhovna Rada)와 우크라이나 각료 내각의 공식 신문에 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베르호브나 라다(Verkhovna Rada)는 빅토르 유셴코의 의원직 권한을 (그의 요청에 따라) 종료시켰다. 의회는 또 2005년 1월 23일 정오(키이브 시간)를 취임식을 개최할 의전일시와 시간으로 지정했다.
1월 23일
정오(현지시간) 빅토르 유셴코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1월 24일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신임 대통령이 율리아 티모셴코 총리 대행을 임명한다.
참고 항목
메모들
참조
- ^ 키이브 포스트(2004년 11월 28일)는 리보트의 모멘텀이 구축됨에 따라 유셴코와 야누코비치 보좌관들을 테이블로 복귀시켰다.
- ^ 연방대법원은 우크라이나 선거 상고심, 동부 지역은 자치권을 국민투표로 정함, 키이브 포스트(2004년 11월 29일)
- ^ 로이터
외부 링크
Wikimedia Commons에는 우크라이나_premise_선거와 관련된 미디어가 있음C_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