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스테스
Thyestes그리스 신화에서 티에스테스(Tyestes)는 올림피아 왕이었다. 티에스트와 그의 형 아트레우스는 올림피아 왕좌에 대한 욕망으로 이복동생인 크리시푸스를 살해한 죄로 아버지로부터 유배되었다. 그들은 미케네로 피신하였는데, 거기서 헤라클라테와 싸우던 에우리스트헤우스 왕의 부재로 왕위에 올랐다. 에우리스테우스는 그들의 영주가 임시로 될 것을 의미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영속적인 영주가 되었다.
가장 인기 있는 티에스테스의 표현은 서기 62년 세네카의 희곡 티에스테스의 표현이다. 이 연극은 복수극 장르의 원조 중 하나이다. 그리스 신화와 전설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세네카의 버전은 다르다.
가족
티에스테스는 펠롭스와 히포다미아의 아들이며 펠로피아와 이지스투스의 아버지였다. 아트레우스에 의해 살해된 그의 세 아들은 아그라우스, 오르코메모누스, 칼라에우스라고 이름 붙여졌다.[1]
신화
펠롭스와 히포다미아는 티에스테스의 부모다. 그러나 그들은 히포다미아의 아버지 외노마우스 왕의 신하인 미르틸루스로부터 저주를 받았다. 미르틸로스는 히포다미아의 처녀성과 펠롭스 왕국의 절반에 대한 권리를 약속받았으나 펠롭스는 그에게 둘 다 부인했고 그를 바다에 던져 죽였다. 죽어가는 헐떡임과 함께 미르틸로스는 그들의 대사를 저주했고, 바로 그곳이 바로 티에스테스와 아트레우스가 들어오는 곳이다.
티에스테스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트레우스는 아르테미스에게 자신의 가장 좋은 양을 희생시키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의 양떼를 뒤지자, Atreus는 여신에게 숨기기 위해 아내 Aerope에게 준 황금 양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것을 그녀의 연인인 티에스테스에게 주었고, 티에스테스는 그 후 아트레우스를 설득하여 그 양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백성이 어린 양을 낳고 왕좌를 차지하였다.
아트레우스는 헤르메스로부터 받은 충고를 이용하여 왕위를 되찾았다. 티에스테스는 태양이 하늘에서 뒤로 움직였을 때 제우스가 이룬 업적인 왕국을 돌려주기로 동의했다. 아트레우스는 왕위를 되찾고 티에스테스를 추방했다.
아트레우스는 그 후 티에스테스와 아에로페의 간통 사실을 알고 복수를 모의했다. 그는 티에스테스의 아들들을 죽이고, 요리하여, 그들의 손과 머리를 구하였다. 그는 자기 아들들을 섬기고 나서, 그들의 손과 머리로 그를 조롱하였다. 이것은 현대적인 구절인 "시테스페스티벌"의 근원이며, 즉 인육이 차려지는 곳이다. 티에스테스가 잔치를 끝냈을 때, 그는 포만감과 쾌락과 자제력을 잃은 것을 나타내는 큰 트림을 풀었다.
그러자 한 신탁이 티에스테스에게 자신의 딸 펠로피아를 둔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이 아트레우스를 죽일 것이라고 충고했다. 티에스테스는 펠로피아(그에게 숨겨진 그의 정체성)를 강간함으로써 그렇게 했고 아들 이지스투스는 아트레우스를 죽였다. 그러나 이지스투스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아들의 기원을 부끄러워하며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 양치기가 아기 이지스투스를 발견하여 아트레우스에게 주었는데, 아트레우스는 그를 친아들로 키웠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티에스테스는 이지스투스에게 진실을 밝혔고, 그는 소년에게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테우스는 그의 삼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이지스투스는 아트레우스를 죽였다.
티에스테스가 미케네를 다스리는 동안 아트레우스와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아들들은 스파르타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틴다레우스 왕은 그들을 왕족으로 받아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형제들이 미케네로 돌아와 티에스테스를 타도하는 것을 도와 그가 죽은 키티라에서 살도록 강요했다.
레거시
선한 의지와 충성의 표시로 틴다레우스 왕은 딸들을 아가멤논과 메넬라우스에게 각각 아내로, 클라이템네스트라와 헬렌에게 바쳤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위해 미케네를 떠나자 이지스투스는 아가멤논의 아내 클라이템네스트라를 유혹했고, 부부는 아가멤논이 돌아오자 남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아가멤논과 그의 새 첩 카산드라를 죽이면서 성공했다. 클라이템네스트라와 이지스투스에게는 다음과 같은 세 아이가 있었다. 아레테스, 에리고네, 그리고 갓난아기 때 죽은 헬렌.
아가멤논이 죽은 지 7,8년이 지난 후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미케네로 돌아와 사촌 필라데스와 누이 엘렉트라의 도움으로 어머니 클라이템네스트라와 이지스투스를 모두 죽였다.
유혈사태에 지친 신들은 에실루스의 희곡 <유메니데스>에 묘사된 바와 같이 오레스트를 무죄로 선언하고 이를 아트레우스의 집에 대한 저주의 종말을 선포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에서는 알레테스와 에리고네가 성년이 되어 미케네에서 통치자가 되었을 때, 오레스테스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이복동생을 죽이고 이복동생을 강간했는데, 이복동생은 아들 펜틸루스를 낳았다.
극장
서기 1세기에 젊은 세네카는 티에스테스라는 비극을 썼다. 1560년 당시 옥스퍼드 올 소울스 칼리지의 펠로우였던 재스퍼 헤이우드가 운문 번역을 발표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티투스 안드로니쿠스는 티투스 안드로니쿠스의 줄거리 요소 중 일부를 티에스테스의 이야기에서 파생한다. 1681년, 존 크라운은 세네카의 티에스테스를 바탕으로 한 티에스테스, 비극을 썼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랑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프로스퍼 졸요트 크레빌론 (1674년-1762)은 에드가 앨런 포의 2편의 라티오싱 이야기에서 두드러지는 비극 "아트리 엣 티에스트" (1707년)를 썼다. 1796년 우고 포스콜로(1778년–1827년)는 1년 뒤 베니스에서 처음 제시된 티에스트라는 비극을 썼다. 영국의 극작가 카릴 처칠도 티에스테스의 연출을 썼다. 처칠의 구체적인 번역은 1994년[2] 6월 7일 런던 위층 궁정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04년 얀 반 벨리멘(1935–2004)은 그의 오페라 티에스테를 완성했다. 리브레토는 위고 클로스가 프랑스어로 쓴 텍스트로, 같은 제목의 20세기 연극(네덜란드어: 흉허물. 티에스테스는 포드 아인스워스의 단막극 페르세포네에 등장한다.
문학에서 세네카의 영향력은 다른 작품들을 통해 반영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아놀드의 소네트에서는 세네카의 영향이 뚜렷하다. "세네카의 티에스테스에 나오는 아트레우스의 연설의 추억은 클레오파트라 자신의 열정적이고 확장된 안토니우스에 대한 미사여구를 미묘하게 그려낼지도 모른다."([3]에지컴, 257)
문헌의 참고 문헌
- 비블리오테카 대명사 2.10-2.15
- 히기누스, 파불래, 85: 크리시푸스, 86:펠롭스, 88:아트레우스
- 에스킬루스 아가멤논
- 에드거 앨런 포, 청첩장, 140
- 밀턴, 파라다이스 로스트, 10권 687-691호
참조
- ^ 존 체츠 칠리데스, 1.18호선 449번길
- ^ 세네카; 처칠, 카릴. 티에스테스 : 닉 헨 북스, 2014. 이북 도서관. 웹. 2015년 10월 21일.
- ^ 에지컴, 로드니 스텐닝 "아놀드의 소네트 셰익스피어에 대한 세네카에게 빚" 참고 및 질의 60.2(2013): 258. 인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