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살로란타 M/26
Lahti-Saloranta M/26라티살로란타 M/26 LM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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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경기관총 |
원산지 | 핀란드 |
서비스 이력 | |
가동중 | 1930년대 |
전쟁 | 윈터 워 제2차 중일 전쟁 계속 전쟁 라플란드 전쟁 |
생산이력 | |
디자이너 | 아이모 라티 & 아르보 살로란타 |
설계된 | 1925 |
제조사 | 발티온 키베라이테흐다스 |
No. 지은 | > 6200 |
변형 | LS-26-31 (75라운드 드럼 매거진 수용 가능) |
사양 | |
미사 | 9.3kg(20.5lbs) |
길이 | 1,570 mm |
배럴 길이 | 500mm |
카트리지 | 7.62×53mmR & 7.92×57mm |
액션 | 단레코일 운전 |
화재율 | 450~550라운드/분 |
입마개 속도 | 800m/s(2,624ft/s) |
유효 사격장 | 400미터 |
공급 시스템 | 20바퀴 또는 75바퀴짜리 잡지 |
라티살로란타 M/26(대체로 LS/26)은 1926년 아이모 라티와 아르보 살로란타가 설계한 경기관총이다. 이 무기는 완전 자동과 반자동 모드로 모두 발사할 수 있었다. 20라운드 박스와 75라운드 드럼 잡지 모두 제작됐지만 핀란드군은 20라운드짜리 작은 잡지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계 전쟁에서는 각 소대에 10인 소총 소총 소대 2대에 엄호사격을 제공하는 2개 분대가 있었다. 각 분대에는 M/26 포병 1명, 조교 1명, 나머지 소총을 든 대원들이 있었다. 군인들은 잡지가 만원일 때 그것이 걸리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종종 그들은 잡지를 한 바퀴 돌면서 한 경찰관이 그것을 검사하지 않기를 바랐다.
역사
M/26은 1925년 핀란드 육군 대회에서 우승하여 육군 주력 경기관총으로 선정되었다. 1927년 국영 소총 공장인 VKT(Valtion kivéritehdas)에서 생산이 시작되어 1942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 5,000개 이상의 무기가 생산되었다. 중국도 1937년 M/26 3만대를 7.92×57mm 마우저에 발주했지만, 일본의 외교적 압력으로 실제 납품된 무기는 1200개에 불과했다.
디자인
전쟁터에서는 라티살로란타 M/26이 총 188부분으로 인해 무겁고 세척이 어려우며 잡지 용량이 부족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은 "다양한 실수"라는 별명으로 쿠투트 바이러스시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반면 숙련된 포병들은 무기의 뛰어난 정확성을 좋아하고 충분히 활용했으며, 겨울철에 맞게 변형된 오일링으로 매우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citation needed]
핀란드군이 처음 접하는 문제 때문에 소련에서 수천 발을 포로로 잡아서 이전 주인에게 불리하게 사용할 때 종종 데그티아레프 경기관총을 선호했다. 전체적으로 1944년 여름, 전방에는 겨우 3,400 M/26대가 있었는데 9,000개가 넘는 데그티아레브에 비하면 말이다.[citation needed]
사용자
참조
- ^ Jowett, Philip (10 Jul 2005). The Chinese Army 1937–49: World War II and Civil War. Men-at-Arms 424. Osprey Publishing. pp. 15, 44. ISBN 9781841769042.
외부 링크
- 라티/살로란타 m/26 LMG - 핀란드 무기 시리즈
- 7,62mm Lahti-Saloranta M/26 - Jaegerpla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