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리나센테

La Rinascente
리나센테
산업소매인
설립됨이탈리아 밀라노(1865년)
본부이탈리아 밀라노
주요인
수디담 시라티바트(회장)
비토리오 라디스(부회장)
상품들의류, 식품, 생활용품, 가구
수익5억 4590만 유로
직원수
1,700
부모중앙 그룹(2011-현재)
웹사이트www.rinascente.it

(La) 리나센테 ([la rinaʃʃʃʃnnte]); 이탈리아어 '리서방전트'는 패션, 액세서리, 뷰티, 홈웨어, 디자인, 식품 등에서 이탈리아와 국제 브랜드를 갖춘 고급 매장이다. 밀라노의 총본부와 로마에 있는 2개의 플래그십 스토어 등 이탈리아에 11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1959년부터 2008년까지 국제백화점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Decreams)의 회원이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CEO들이 협회 회장을 맡았다.[1]

기원

1865년 루이지와 페르디난도 보코니 형제가 이탈리아 최초의 기성복을 판매한 밀라노 비아 산타 라데곤다에 문을 열었고 이듬해까지 1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해 남성용 기성복을 제조했다. 1872년에서 1876년 사이에 그들은 로마의 비아코르소뿐만 아니라 제노바, 트리에스테, 팔레르모, 토리노에도 지점을 세웠다. 1877년 그들은 호텔 퍼스펙트에 Aux Villes d'Italie 백화점을 열었다. 이것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1883년경 노벨 오 보뉴르 다메스에서 에밀 졸라가 유명하게 만든 파리의 아리스티드 부치코트의 가게 르 본 마르케의 모델을 따라 구상되었다.[citation needed] 1880년 이 상점은 이탈리아식 이름 알레르씨타디탈리아를 따냈고 1887년 줄리오 데 안젤리스가 디자인한 새 상점이 콜론나 광장의 로마에 문을 열었고 1889년 지오반니 지아치가 디자인한 밀라노의 두오모 광장 신축 건물이 문을 열었다.

볼레티 상원의원이 소유한 회사와 1920년대의 상승세

1917년 보클레티 상원의원은 보코니 브라더스로부터 이 회사를 매입하고 시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에게 의뢰해 새로운 이름을 찾았다. 그의 제안은 가게의 '재탄'이라는 생각을 전하기 위한 이름인 리나센테였다. 1917년 9월 27일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었다.[2] 보레티의 목표는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지 않고 곧바로 상품의 질을 높이겠다고 다짐함으로써 우아함을 백화점의 특색 있는 특색 있는 캐릭터로 바꾸는 것이었다. 공식 목표는 고소득층과 중저소득층 모두의 고객을 끌어모으는 '민주적인' 사치 접근법이었다.

그랜드 오픈을 불과 며칠 앞둔 1918년 크리스마스 밤에 발생한 화재로 두오모 광장 밀라노의 가게가 전소되었다. 1919년과 1920년 사이에 토리노, 제노바, 볼로냐, 플로렌스, 로마, 나폴리, 팔레르모에 있는 가게들은 개조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파두아(1923년), 카타니아(1923년), 메시나(1924년), 바리(1925년), 밀라노의 로레토 광장, 로마의 코르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타란토, 시라큐스, 트라파니(1927년~1928년) 등 다른 상점들이 문을 열었다.

두오모 광장의 가게는 은행, 여성과 남성을 위한 미용실, 오케스트라와 우체국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포함하도록 완전히 재건, 확대, 변형, 확장된 후 1921년 3월 23일 재개장했다. 알도 마자가 매장 재개를 위해 만든 잘 알려진 포스터에는 갓 돋아난 나뭇가지와 함께 불에 탄 올리브 나무 줄기가 그려져 있어 잿더미에서 솟아나는 개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1920년대에 지오 폰티와 같은 중요한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은 리나센테 고객을 위해 새로운 현대식 가구를 디자인하기 위해 가구 실험실에서 그들의 사내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했다.[3]

대주주인 볼레티 상원의원은 사위인 움베르토 브루스티오의 손에 회사의 일상적인 운영을 맡겼다. 이 기간 동안 리나센트는 마르첼로 두다비치와의 사업 관계를 수립하고 강화했다. 트리에스테 태생의 이 예술가는 1956년까지 이 회사를 위한 광고 포스터를 계속해서 제작할 것이다.

1930년대

1928년 독일계 회사인 리온하르트 티에츠와 협력하여 이탈리아에 고정가격을 가진 매장을 선보인 후 라 리나센테는 UPIM과 합병하여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기업은 취리히에 있는 백화점 젤몰리라는 새로운 파트너를 갖게 되었고, 이탈리아 전역에 리나센테 5개와 UPIM 25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1937년 로마의 광자 콜론나 매장은 이탈리아의 한 소매점에 최초의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이 시기에는 많은 Made in Italia 제품이 출시되었고 곧 주변에서 인기를 끌었던 시기였다. 레이온, 카페오(인공 삼베), 인조 양모 등 합성 섬유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모두 중심 무대를 차지했다. 이때 리나센트는 이탈리아 기업이 제조한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고,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와의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여 일반인들의 요구에 부응하였다. 1939년 볼레티 상원의원이 사망한 후 움베르토 브루스티오는 이 회사의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미국 의류 협회는 라 리나센테의 판매 면적이 평방 미터로 스탠다와 코인을 합친 것보다 두 배였기 때문에 소매 시장의 선두주자로 선언했다. 이듬해 창립 25주년을 맞이하여 리나센테 5개, UPIM 52개 점포를 집계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그 회사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큰 손실을 입었다. 제노바와 카글리아리의 가게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8월[when?] 16일, 두오모 광장의 가게는 사실상 파괴되었다. 로마에 있는 리나센테 매장 1곳과 이탈리아 전역에 있는 37개의 UPIM 매장만이 여전히 부분적으로만 운영되고 있었다. 밀라노 시의회는 라 리나센테가 비아 메르칸티에 있는 팔라초 델라 라기오네에 있는 큰 방 세 개를 빌려서 일반 대중에게 계속 물건을 공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전후 회복과 1950년대의 화려함

전쟁이 끝난 후, 빠르고 왕성한 회복이 있었다.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리빌딩 프로젝트에는 19개의 UPIM 상점, 카글리아리의 라 리나센테, 밀라노 비아 카르두치의 본사 및 창고 시설이 포함되었다. 1950년 12월 4일 두오모 광장의 리나센테 매장이 다시 한번 멋진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건물의 전면은 페르디난도 레지오리에 의해 설계되었다. 카를로 파가니는 매장 창문과 출입구는 물론 인테리어와 가구 등을 설계하는 일을 맡았다. 현대식 에스컬레이터가 건물의 다른 층을 연결했다. 맥스 휴버는 1955년까지 알베 슈타이너가 내외부 판촉 기구와 그래픽을 담당하면서 새로운 로고를 만들었다. 이것들은 수년간의 큰 혼란이었고 이 기간 동안 Rinascente는 주로 미국에서 수입된 많은 혁신적인 제품들을 판매했고 일련의 문화 행사를 홍보했는데, 이것은 대중들에게 전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엿볼 수 있게 했다. Countries featuring in these dedicated events included Spain (1955), Japan (1956), Great Britain (1957), the USA (1958) India and Thailand (1959), Mexico (1960) and a special event to promote the culture of the Indios in 1964. 1955 saw the inauguration of the new 'Circolo della Rinascente' located in Via Durini, Milan and the setting up of a PR office; 1957년에 시장 조사를 위한 사무실이 만들어지는 동안. 로라 램은 광고 그래픽을 담당했고, 암네리스 라티스는 광고부의 아트 디렉터였다.

40년 후인 1957년 움베르토 브루스티오는 최고 경영직을 떠나 명예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볼레티 상원의원의 아들인 알도 볼레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체사레, 조르지오 부스티오와 함께 그는 상무이사로도 활동했다. 최고 경영진의 대표 인물 중 한 명은 Cesare Bustio 전무 겸 부사장이었다.

'Compasso d'Oro'상

1954년, 리나센트는 지오 폰티와 알베르토 로셀리의 뇌출연인 'Compasso d'Oro' 상을 제정하였다. 이 상은 최고의 산업 생산과 일상적인 물체를 창조하는데 있어서 미학과 기능성을 결합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수여되었다. 자신의 작업악기 중 하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알베 스타이너는 상으로 주어지는 실제 나침반을 디자인하기 위해 알베르토 로셀리와 마르코 자누소에게 맡기는 동안 이 상의 로고를 만들었다. 1959년 리나센테는 1956년 설립된 산업디자인협회(ADI)에 이 상을 수여했다.

1960년대 성장

1960년에는 리나센테-UPIM 매장 외에도 스마 슈퍼마켓 체인을 만들어 영업을 확대했다. 이 상점들은 1957년 11월 27일 비알레 레지나 지오반나의 밀라노에서 문을 연 최초의 이탈리아 슈퍼마켓의 모델을 따랐다. 이것은 식료품과 식료품의 보다 현대적이고 진보된 유통과 소매업의 한 예였다. 경제 호황의 해였고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밀라노의 리나센테 가게는 가끔 과밀 때문에 입구를 막아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이 몰렸다.[citation needed]

또한 그해 리나센테는 로마 피우메 광장(Piaza Fume)에 프랑코 알비니(Franco Albini)와 프랑카 헬그(Franca Helg)가 디자인한 새 매장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알비니가 설계한 유명한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된 7층 이상 확장되었다. 그것은 밀라노 지점의 특징인 모든 테마와 범위를 전시하는 50개의 영업 부서를 보유했다. 이렇게 해서 리나센트는 로마에서 가장 완전한 쇼핑 장소가 되었다.[according to whom?]

1963년, 프랑스의 저명한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딘은 라 리나센트와 적당한 가격의 의류 라인을 만드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최신 패션 작품들은 민주적이고 시대에 발맞춰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Adriana Botti Monti는 광고부의 아트 디렉터가 되었다. 수많은 상과 전문적인 상이 그녀의 경력을 돋보이게 했다.

1969: FIAT 그룹 인수

알도 볼레티가 사망한 후인 1967년 새로 선임된 그룹 회장은 볼레티 상원의원(창립자의 형제 중 한 명의 아들)이었고, CEO는 체사레 브루스티오였다. 1969년 볼레티 가문은 젤몰리가 회사를 떠난 1965년 이후 지분을 보유한 IFI와 메디오방카에 보유 지분을 매각했다. 1970년에는 귀도 콜론나 디 팔리아노 대사가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그룹은 현재 5개의 리나센테 매장, 150개의 UPIM 매장, 54개의 스마 슈퍼마켓을 소유하고 있다. 1972년 Rinascente – Citta Mercato는 브레시아에서 첫 번째 하이퍼마켓을 헐값에 판매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새 회사의 경영 목표는 대형 소매 부문과 전통 소매 부문의 대조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두오모 광장의 소매점은 새롭게 단장되었고 리나센테의 새로운 조직은 시대에 맞게 더 합리적이 되었다. 1973년 토리노에 새 점포를 열었다. 움베르토 브루스티오는 1972년 4월 25일에 사망했고 보레티 상원의원은 1973년 3월 23일에 부통령이 되었다.

1977년, 이 그룹은 롬바르디에 4개의 점포를 가진 JC 페니라는 미국의 가장 큰 소매점 중 하나를 인수했다. Rinascente는 현대적이고 성공적인 비즈니스 조직뿐만 아니라 소매 네트워크에서의 모든 경험에 의해 지탱되는 더 큰 시장 점유율을 추구했다. 결과는 1학기 매출이 20.7% 증가한 것이다. 1983년 이 그룹은 토리노에 DIY 매장인 이탈리아산 브리카켄터를 처음 열었다. 2년 후, 홈웨어 유통 전문 회사인 크로프 누오바 SpA의 구매를 위한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1997년 피아트 에스테이트는 아우찬과 금융 및 기술협약을 규정하여 23개의 '시타 메르카토'와 2개의 '조이랜드'를 아우찬 브랜드로 점진적으로 전환하였다. 이 그룹은 이직률이 증가하면서 폐업했고 2002년까지 40개의 하이퍼마켓을 열어서 식품 분야를 강화한다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개발했다.

관련 투자자 그룹에 대한 판매

2005년 그룹 분할에 이어 리나센트의 백화점은 투자자 그룹(피렐리 부동산 20%, 연합투자자 46%, 도이체방크부동산 30%, 볼레티 가족 4%)과 라 리나센테S.A.가 설립됐다. 비토리오 라디스가 경영진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의 시기의 시작을 의미했다. 즉, 브랜드 시장 상위의 위치를 바꾸어 그것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상점의 구조 조정과 갱신 그리고 이용 가능한 상품의 종류를 업그레이드 하는 방법으로 달성되었다. 두오모 광장에 있는 상점의 완전한 리노베이션은 2007년에 극도로 국제적인 푸드 홀을 추가했고 2009년에는 2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전시된 디자인 슈퍼마켓이 전 층을 차지하는 것을 포함했다.

Central Retail Group에 의한 인수

2011년 5월 태국에 본사를 둔 중앙 소매 회사는 2억 9천만 유로에 리나센트를 구입했다.[4] 수디담 시라티바트는 토스 시라티바트와 함께 리나센테의 이사로 대통령이 되었다. 기자회견에서, 토스 시라티바트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유명하고 아시아 전역에서 잘 알려진 브랜드 리나센트를 만들고 싶다고 발표했다. 이듬해인 2007년부터 총지배인인 알베르토 발단이 CEO로 선임되었다. 비토리오 라디스는 그룹 내 명품 매장의 국제적 발전을 담당하는 부사장 역할을 맡았다. 2013년 센트럴그룹은 코펜하겐에 있는 백화점 Illum을 인수했고 2015년에는 시그마와 카데위 그룹의 과반수 지분 인수를 위한 협약을 맺어 베를린에 있는 카데위, 뮌헨에 있는 오버폴린저, 함부르크에 있는 알스테르하우스 등을 인수했다. 2016년 5월 26일 리나센테 밀라노는 취리히에서 열린 2016 글로벌 백화점 서밋 시상식에서 세계 최고의 백화점으로 상을 받았다.[5]

로마의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2017년 10월 리나센테는 제2의 로마 플래그십 스토어를 기지에 오픈했다. 이 새 상점은 로마 비아델트리톤에 있는 8층짜리 리퍼브 빌딩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특이한 점은 1층 관람이 가능한 고고학적 유적지다. 이 사이트는 기원전 19년 전의 아쿠아 비르고 수로의 잔해를 밝혀준다. 이 가게에는 1900년대의 '팔라제토'라고 불리는 작은 건물도 포함되어 있다. 꼭대기 층에 위치한 푸드홀은 방문객들에게 수도의 옥상을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360도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당초 2012년 개장 예정이었으나 여러 차례 연기됐다.[6] 이 상점은 11년 동안 개발 및 건설 중이었으며 총 2억 유로의 비용이 들었다.[7]

참조

  1. ^ "IADS Presidents". www.iads.org. Retrieved 22 April 2021.
  2. ^ "La Rinascente". Vogue.
  3. ^ Portoghesi, Paolo (2011). "Gio Ponti's Ceramics". In Celant, Germano (ed.). Espresioni di Gio Ponti. Milan: Triennale Electa. pp. 18–22.
  4. ^ "La Rinascente to go global, Thai Central Retail says". Reuters. 30 May 2011. Retrieved 21 November 2017.
  5. ^ "La Rinascente of Milano wins the award for "The Best Department Store in the World"". creattiva.com.
  6. ^ Ciancio, Antonella (8 September 2010). "Rinascente store sees 2010 sales up at least 5 pct". Reuters. Retrieved 24 November 2017.
  7. ^ Turra, Alessandra (11 October 2017). "Rinascente Opens New Department Store in Rome". Women's Wear Daily. Retrieved 24 November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