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 국

Kai Province
일본 지방도(1868년)와 카이 성 지도 하이라이트

카이 국(甲斐國, 카이노쿠니)은 지금의 야마나시 현 일본 지역에 있는 일본의 지방이었다.[1] 카이는 사가미 국, 스루가 , 시나노 국, 무사시 국과 접했다. 약칭 형태명은 고슈(高sh)이다. 그 이름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현대 시즈오카 현과의 경계를 따라 후지산이 포함된 육지로 둘러싸인 산악지대의 도쿄 서부의 혼슈 중심부에 있다.

「60개국의 명장면」(明長面)의 히로시게유키에 「카이」에, 야마나시 오쓰키에 지금의 다리인 사루하시를 그렸다.

역사

카이는 타이호 강령에 따라 나라 시대에 성립된 일본의 원성 중 하나이다. 그 지방의 원래 수도는 지금의 푸에후키에 위치해 있었다. 엔기시키 분류 체계에서 카이는 중요도 면에서 '상위국가'(上上國)로, 수도와의 거리에서는 16개 '중위국가'(中國家) 중 하나로 꼽혔다. 도카이도 지방에는 직접 있지 않지만 도카이도 지방 중 하나로도 포함되었다.

카이에서는 코펀 시대의 수많은 유해가 발견되었다. 헤이안 시대에 이 지역은 가마쿠라 시대 내내 지방을 지배했던 카이 겐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센고쿠 시대에는 일족의 한 분파인 다케다 일족이 두각을 나타냈다. 군벌 다케다 신겐고후(高福)에 있는 본거지에서 카이를 통치하고 씨족의 소유권을 시나노(新野)와 스루가(Suruga)까지 확대하여 에치고(Echigo)우에스기(武 u) 일족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연합군에 다케다군이 패배한 후, 카이 국은 노부나가의 유신 가와지리 히데타카의 치하에 잠시 왔다. 노부나가가 암살된 후, 오다와라에 본거지를 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고호조 가문 사이에서 이 지방은 경합되었다. 그러나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고호조가 멸망한 후, 이 지방은 도요토미 충신들의 잇단 지배를 받게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성립과 함께, 가이도 고슈에 의해 카이 국을 거쳐 연결되는 도카이도(道海道)와 나카센도(中山道) 간 지위가 있어 에도 방위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카이 성은 도쿠가와 씨족이나 야나기사와 씨족에게 고후 번으로 잠시 맡겼으나, 대부분의 경우 하타모토급 다이칸의 연계를 통해 막부가 직접 통치하는 덴료 영토로 유지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69년 카이 국이 고후 현으로 개칭되었다. 1871년 한제가 폐지되면서 야마나시 현으로 개칭되었다.

역사 지구

카이는 전통적으로 네 구역으로 나뉘었다.

고속도로

참고 항목

참조

  1. ^ 누스바움, 루이 프레데릭 (2005). 일본 백과사전의 "카이" 페이지 448.

외부 링크

위키미디어 커먼스의 카이관련 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