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 암멘
Jacob Ammen제이콥 암멘 | |
---|---|
태어난 | 버지니아 주, 핀캐슬 | )1806년 1월 7일
죽은 | 1894년 2월 6일 오하이오 주 록랜드 | ) 87세)
매장지 |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스프링 그로브 묘지 |
얼리전스 | 미국 유니온 |
서비스/지점 | 미국 육군 유니온 아미 |
근속년수 | 1831–1837, 1861–1865 |
순위 | 준장 |
보유된 명령 | 4사단, XXIII 군단 캠프 더글러스 |
전투/와이어 | 미국 남북 전쟁 |
관계 | 다니엘 암멘 |
기타작업 | 대학교수, 토목기사 |
제이콥 암멘(Jacob Ammen, 1806년 1월 7일 ~ 1894년 2월 6일)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대학교수, 토목기사, 연합군의 장군이었다. 그의 동생 다니엘 암멘은 미국 해군 제독이었다.
어린 시절과 경력
암멘은 버지니아주 핀캐슬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그의 부모는 암멘이 학교에 다니는 오하이오주 조지타운으로 이사했다.[1] 1831년 미 육군사관학교 명예졸업생으로, 미 1군 포병대 제2중위로서의 임무 외에 2선 조교수였다.[1] 조지타운 민병대에서 훈련 교관과 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무효화 위기 때 찰스턴 항구에 주둔했다.
1837년 육군에서 물러난 암멘은 켄터키와 미주리 주의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1840년부터 1843년까지 인디애나 대학교의 수학학부 석좌를 지냈다. 그는 후에 켄터키와 미주리에서 다시 가르쳤고, 1855년 11월 토목 공학자로 일하기 위해 오하이오 리플리로 이사했다.[1]
내전
1861년 4월 남부 연합군이 섬터 요새를 폭격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암멘은 연방군에 재입대하여 새로 기른 오하이오 12 보병대의 대위로 복무했다.[1] 그는 곧 오하이오 24 보병대의 대령으로 임관되었다. 캠프 체이스에서 훈련을 받은 후, 7월 말 암멘의 연대는 치터 마운틴 전투에서 첫 전투를 보고 서부 버지니아에서 복무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서부극장으로 수송된 암멘은 실로 전투와 코린트 포위전에서 오하이오 육군에서 여단을 지휘했다. 암멘은 1862년 7월 16일 준장으로 진급되었다. 지난 8월 암멘은 새로운 지휘권을 부여받고 켄터키주 리치먼드를 방어하기 위해 파견된 윌리엄 '불' 넬슨에 의해 사단 지휘부가 공석인 것으로 추정했다.
암멘은 건강이 악화되자 1863년 초 일리노이주 캠프 더글라스를 지휘하는 등 1년 가까이 행정업무를 수행했다. 1863년 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XX 4사단을 지휘하였다.III 군단. 1864년 9월, 그의 800명의 병력은 스티븐 버브리지의 솔트빌 급습 도중 테네시 주 불스 갭의 중요한 버지니아와 테네시 철도를 막았다. 종전 직전인 1865년 1월 사임하고 귀국했다.[1]
후기 경력
암멘은 오하이오주 해밀턴 카운티에서 측량사 겸 토목 기술자로 있다가 1872년 메릴랜드주 벨트빌 인근의 농장을 매입했다. 2년 후, 그는 제안된 파나마 운하의 가능한 항로를 결정하는 데 관여했다. 그는 1875년 웨스트포인트의 방문객 이사회에서 일했다. 그는 신시내티 인근 오하이오주 와이오밍으로 은퇴했다.
노년에 장님이 된 그는 1891년 오하이오주 록랜드에서 아들과 함께 거주하다가 1894년 2월 6일 사망했다.[1] 그는 신시내티의 스프링 그로브 묘지에 묻혔다.[2]
참고 항목
참조
- Who Was Who: History Volume, 1607-1896. 시카고: 후작 후작 1967년
- 워너, 에즈라 J, 블루의 장군: 유니온 지휘관의 삶. 배턴 루즈: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출판부, 1964, ISBN 0-8071-0822-7.
- 암멘의 USMA 전기
- 인도 힐 (오하이오) 암멘 장군의 역사학회 전기
- 묘지 찾기의 제이콥 암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