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 이민
Immigration to Costa Rica2011년 인구조사 기준 코스타리카의 이민자 수는 총 39만 명으로, 이는 코스타리카 인구의 약 9%에 해당한다.[1][2] 1950년부터 1980년까지 상당한 감소에 이어 최근 수십 년간 코스타리카로의 이민이 증가했다.
코스타리카의 민족 구성은 대부분 유럽 태생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메스티조스의 인구가 많고 숫자로는 흑인과 토착민이 적다.
2012년[1] 총 외국인 인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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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나라 | 숫자 | |||||
1 | 니카라과 | 287 766 | |||||
2 | 콜롬비아 | 16 514 | |||||
3 | 미국 | 15 898 | |||||
4 | 파나마 | 11 250 | |||||
5 | 엘살바도르 | 9 424 | |||||
6 | 베네수엘라 | 3 886 | |||||
7 | 쿠바 | 3 860 | |||||
8 | 온두라스 | 3 778 | |||||
9 | 페루 | 3 404 | |||||
10 | 중국 | 3 281 | |||||
11 | 멕시코 | 3 059 | |||||
12 | 과테말라 | 2 573 | |||||
13 | 스페인 | 1 806 | |||||
14 | 아르헨티나 | 1 786 | |||||
15 | 캐나다 | 1 679 | |||||
16 | 이탈리아 | 1 494 | |||||
17 | 도미니카 공화국 | 1 475 | |||||
18 | 독일. | 1 412 | |||||
19 | 칠리 | 1 364 | |||||
20 | 에콰도르 | 1 040 | |||||
21 | 프랑스. | 936 | |||||
22 | 타이완 | 797 | |||||
23 | 브라질 | 605 | |||||
24 | 스위스 | 551 | |||||
25 | 잉글랜드 | 503 | |||||
26 | 네덜란드 | 434 | |||||
27 | 러시아 | 429 | |||||
28 | 우루과이 | 356 | |||||
29 | 볼리비아 | 331 | |||||
30 | 대한민국. | 263 | |||||
31 | 벨기에 | 254 | |||||
32 | 푸에르토리코 | 245 |
사회적 영향
코스타리카로의 이민은 몇 가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나은 취업 기회를 찾기 위해 입국하지만, 일부 이민자들은 범죄 활동에 관여해왔다. 코스타리카 정부는 니카라과인들의 불법 이민을 막고 이미 코스타리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추방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또한 니카라과 출신의 가장 가난한 이민자들을 위한 경제적 번영을 촉진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코스타리카에서 박해를 받고 망명을 신청한 정치 난민도 적지 않다.[3]
이민자 집단
이민자 공동체는 니카라과(74.6%), 콜롬비아(4.3%), 미국(4.1%), 파나마(2.9%), 엘살바도르(2.4%) 등이다. 나머지 11.7%는 다른 국적의 것으로 중국(3281명), 쿠바(3860명), 온두라스(3778명), 페루(3404명), 베네수엘라(3886명) 등 주요 지역사회가 있다.[1] 최근 몇 년간 많은 유럽인들이 코스타리카로 이민을 왔는데, 특히 스페인, 불가리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스위스, 스웨덴이 그렇다. 아시아계(중국계, 대만계, 일본계) 이민자도 많다. 이민자들은 정치적 안정, 삶의 대안, 온화한 기후에 이끌릴 수 있다.
미국인(미국)
미국 내 미국인 1만6000명 중 절반가량이 29세 미만이다. 이들은 주로 산호세, 페레스 젤레돈, 에스카주, 알라후엘라, 산타아나, 산타크루즈 등에 산다. 미국 이민자들은 교육, 상업, 관광, 행정 활동 분야에서 일한다. 이 이민자들의 약 절반은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다.[4]
아르헨티나인
코스타리카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의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3,600명의 아르헨티나가 살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1976년부터 1983년 사이에 아르헨티나를 통치한 군사독재로부터 탈출한 난민들의 철새 물결이 두 차례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1999~2002년) 때 제2의 물결이 일어났는데 이때 많은 아르헨티나 전문가들이 코스타리카로 이주를 결정했다. 코스타리카에서 가장 많은 아르헨티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코르도바, 로사리오 출신이다. 그들 대부분은 산호세, 카르타고, 리몬, 구아나카스테 지방에 거주한다.
벨리즈인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1,275명의 벨리즈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몬교 임무의 일환으로 도착했다.[citation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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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인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1,300명의 브라질 사람들이 있다. 오는 사람들 중에는 배우, 여배우, 모델, 텔레비전 진행자가 많다. 코스타리카의 브라질 사람들은 주로 산호세 지역의[citation needed] 비싼 호텔에 산다.
영국인
코스타리카 독립(1821년) 이후 코스타리카 정부는 외국인 이민을 장려해 노동력을 강화했다. 독일인, 영국인, 미국인들도 도착했지만, 새로 도착한 사람들은 주로 중앙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왔다. 영국은 코스타리카가 커피 생산으로부터 제공해야만 했던 잠재력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리브해와 북부 코스타리카의 농업 지역은 영국의 통제하에 있었고, 특히 커피 농장이었다. 그 후 영국인들은 알티플라노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이탈리아인들을 데려왔다. 농업 생산 지역의 대부분은 영국에 의해 소유되었다.[5]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5200명의 영국인이 있으며, 스페인 다음으로 큰 유럽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캐나다인
2011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1,700명의 캐나다인들이 있다.[6] 그들은 주로 캘거리, 알버타, 오타와에서 온다. 많은 사람들이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유명한 해변 근처의 해안가에 거주하고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산호세나 산타 아나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7]
칠레인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거의 2,600명의 칠레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산호세 등 도시지역에 정착했다.
중국어
코스타리카의 중국 커뮤니티(대만 포함)는 코스타리카에서 가장 큰 아시아 커뮤니티다.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약 4,500명의 중국인들이 살고 있다. 최초의 중국 이민자들은 1855년에 코스타리카에 도착했다. 이들은 원래 캔턴 출신 77명으로 구성된 단체였는데, 이들은 파나마 철도 공사를 위해 중앙아메리카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1859년부터 1863년까지 호세 마리아 몬테알레그르의 통치 하에, 유럽 정착을 위해 코스타리카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으로 흑인과 아시아인의 이민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었다.[8] 이후 1873년 광둥성 중산 출신의 이민자 조셉 첸 아푸이가 세운 이 지역에 '중국의 식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펀타레나스라는 이름의 이 식민지는 중국에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한 나라의 이름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9] 1970년대에 대만은 코스타리카에 가장 많은 중국 이민자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살 수 있는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코스타리카를 임시정류지로 이용했다.
콜롬비아인
1980년대 이후, 코스타리카는 콜롬비아 내전에서 탈출한 수천명의 콜롬비아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2만 명의 콜롬비아인이 있으며, 이 지역 외 콜롬비아인의 10번째로 큰 지역사회가 되고 있다. 많은 콜롬비아 이민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어 이중 국적을 쉽게 얻을 수 있다.[10] 코스타리카의 콜롬비아인들은 이 중앙 아메리카 국가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중 하나이다.
쿠바인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1,700명 이상의 쿠바인들이 살고 있다. 이민은 1960년대부터 피델 카스트로 독재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배를 통해 시작됐다. 그들은 코스타리카의 정치적 안정에 이끌렸다.
도미니카인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1,475명의 도미니카인이 있다. 그들은 주로 카리브해 연안에 산다.
에콰도르인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900명의 에콰도르인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산호세 시에 흔히 살고 있는 텔레비전 진행자, 모델 또는 기업가도 있다.
엘살바도르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7,189명의 살바도르인이 있으며, 주로 산호세 지역에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상류층 출신으로 사업 발전을 꾀하고 있다.
프랑스어
코스타리카의 프랑스 이민은 1840년대에 시작되었다. 자유주의 정부의 승리에 따라 화가, 음악가, 프랑스 가수들의 이민이 쉬워졌다. 프랑스는 코스타리카의 문화와 영향에 크게 기여했다. 프랑스의 작곡가 가브리엘-피에르 라폰드는 코스타리카의 국가를 부분적으로 책임지고 있었는데, 코스타리카의 주 작곡가는 마누엘 마리아 구티에레스였다. 미술관은 프랑스의 조각가 루이 로베르 캐리어 벨루세(Louis-Robert Carrier Belleuse)가 만든 것으로 코스타리카의 국기는 프랑스의 국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11]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1,000명의 프랑스인이 거주하고 있다.
독일인들.
독일인의 코스타리카 이민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뉘는데, 1871년 이전(독일 제국이 건국된 해), 1871년부터 1918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 말기, 1918~1919년부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최초의 독일 이민자들은 1825년에서 1826년 사이에 도착했다. 1850년 독일 이민은 보잘것없었다. 1864년 코스타리카에는 164명의 독일인이 살고 있었다. 대부분은 성장하는 외국 상거래에 끌렸다. 1840년대 독일이 직면한 경제 상황과 1848년 실패한 혁명 때문에 이주한 사람들도 있다. 그 후 19세기 후반에 또 다른 집단이 나타났다. 새로운 인프라 프로젝트들이 있었고, 독일과 코스타리카 사이의 기존 개인 네트워크들이 이민을 증가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이미 1910년에 설립된 독일 클럽과 1912년에 시작된 독일 학교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제3의 이민자 집단이 도착했다. 전쟁이 끝난 후,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깨졌고, 전쟁 이후 많은 귀화 독일인들은 더 이상 통계에 나타나지 않았다.[12] 현재 코스타리카에는 2100명의 독일인이 살고 있다.
과테말라인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1,200명의 과테말라인이 있다. 경제적, 정치적 이주민이 모두 있다. 대부분은 산호세에 산다.
아이티인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아이티 공동체는 150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두라스인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5669명의 온두라인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산호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 이민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니카라과를 통해 도착했다.
인디언
2016년 12월 현재 코스타리카의 인도 커뮤니티는 주로 코스타리카의 IT 산업에 종사하는 250명의 거주자로 구성되어 있다.[13] 이 중 20명은 인도 시민권을 포기하고 PIO 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인
이탈리아의 코스타리카로의 이주는 1887년에서 1888년 사이의 몇몇 철새 파도로 이루어져 있다. 1887년 2월, 미국의 철도 사업가 마이너 쿠퍼 키스(Minor Cooper Keith)는 400명의 남자가 새로운 노선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같은 해 10월, 이탈리아 카나리아 제도, 케이프 베르데에서 위원들을 설득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후, 키스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수입을 주선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다. 1888년 5월 10일, 안나 엘리스는 리몬(코스타리카)에 정박했다. 그것은 671명의 노동자들을 태우고 있었다. 이 이탈리아인들은 코스타리카에 첫 철도 노선을 건설하는 등 중국에서 온 다른 이민자들과 합류했다. 그 조건들은 위험했고 이탈리아인들은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화가 났다. 1888년 10월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했고, 1888년 10월 20일 많은 사람들이 노동 캠프를 떠나 카르타고(코스타리카)로 도망쳤으며, 많은 사람들이 정착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탈리아로 가는 배를 타고 돌아왔다. 그들은 1889년 3월 16일에 온 848명의 이민자로 대체되었다.[14]
한 무리의 이탈리아인들이 1950년대 중반에 산 비토 지역으로 이민을 왔다. 이러한 농업 식민지 주민들은 특히 이 지역의 고립 때문에 많은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4년부터 커피의 생산은 이탈리아 식민지 개척자 500명과 코스타리카인(이탈리아 철도 노동자의 후손)이 이 지역이 제시한 경제적 가능성에 이끌려 더 나은 전망을 갖게 했다.
현재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2300명의 이탈리아인이 있으며, 그 후손은 카르타고에서 발견되고 있다.
자메이카인
애틀랜틱 철도 건설을 위해 코스타리카 정부가 고용한 미국인 헨리 메이그스 키스(Henry Meiggs Keith)가 숲 청소와 철길 건설에 '흑인'(아프로아메리카로 알려진) 노동자들을 활용할 것을 주장했고, 1872년 자메이카 1군단이 입국했다. 이러한 자메이카인들과 그 후손들은 이 나라의 카리브해 지역의 주요 거주자가 되어 코스타리카 내에서 독특한 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다. 처음에는 철도 건설 시대 동안 자메이카의 대규모 이주, 그리고 다음 세기에는 유나이티드 스탠더드 과일 회사가 소유한 바나나 농장을 위한 이주 사건이 두 번 발생했다.
일본인입니다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의 일본 커뮤니티는 190명에 이른다.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많은 기술 회사를 발전시켰다.
멕시코인
코스타리카는 멕시코 이민으로[citation needed] 가장 인기 있는 중미 국가다. 멕시코에서 코스타리카로 이주하는 물결은 197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사람들이 안정된 민주주의와 온화한 기후, 정치적 안정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누에보 레온, 타마울리파스, 치와와, 바하 캘리포니아, 멕시코 시티에서 코스타리카에 거주하는 멕시코인은 4285명이었다. 그들은 전형적으로 전문가, 의사, 비서, 그리고 다른 역할들이다. 코스타리카는 세계에서 9번째로 멕시코 이민자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다.[15]
니카라과인
니카라과인은 코스타리카의 외국인 출생 인구의 거의 4분의 3을 차지한다.[16] 1984년 코스타리카에는 니카라과 태생이 45,918명이었다. 2012년에는 그 수가 약 28만 7천 명으로 증가했다.[17]
파나마인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11,427명의 파나마인이 있다. 그들은 주로 산호세에 산다. 이들은 이민 인구의 4.1%를 형성해 코스타리카에서 5번째로 큰 이민자 공동체가 된다.
페루인
2012년의 인구 조사 결과, 거의 2,700명의 페루인들이 코스타리카에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는 원산지에서 직접 도착했고, 다른 일부는 먼저 칠레로 이민을 간 뒤[citation needed] 칠레의 반페루 정서를 피했다. 코스타리카에서도 페루인을 상대로 인종차별을 하는 사례가 있지만, 그 정도는 덜 발생한다.
폴란드의
1929년부터 1941년까지 코스타리카로의 폴란드 이민이 발생했다. 1929년에 약 15개의 폴란드인들이 코스타리카에 도착했고, 1930년에는 그 수가 90개로 늘어났다. 최초의 폴란드 입국자 중에는 코스타리카에 정착하기 위해 조국을 떠난 유대계 이민자 자코보 쉬프터와 롤루 구드문드슨도 있었다. 이는 더 많은 폴란드인들이 코스타리카로 가는 동기가 되었다. 폴란드인들이 코스타리카로 이주한 가장 큰 물결은 1933년에서 1936년 사이였다. 제노포비아는 코스타리카에서 발달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폴란드인들이 유대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코스타리카의 폴란드인들은 국내 산업과 소규모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후 1939년경 나치 탄압을 피해 탈출한 유대인 폴란드 가족의 물결이 여러 차례 도착했다. 다른 사람들도 전쟁이 끝난 후 뒤따랐다. 1950년대까지 대다수는 멕시코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났다.[18] 현재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1,900개의 북극이 있다고 한다.
러시아 및 구소련 민족
코스타리카로의 러시아와 소련의 이민은 20세기에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 난민으로 몰려드는 벨라루스의 볼가(우크라이나와 발트해 국가 포함)에서 입국자가 가장 많다. 많은 코스타리카인들이 장학금을 통해 소련에서 공부했고, 러시아인과 결혼하여 코스타리카에 가정을 꾸렸다.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2,300명 이상의 러시아인들이 있다.
한국인
한국 이민은 최근 중앙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1990년대에 코스타리카에 처음 온 한국인들은 의류, 자동차, 식당, 운송업에서 일했다. 학원도 많고 한인회도 많다. 인구 중 개신교 신자 비율이 높은 가운데 한국교회 선교사도 있다.[19] 코스타리카는 2012년 인구조사에 따라 522명의 주민으로 구성된 한인 커뮤니티가 크지 않다.
스페인 사람
스페인 이민은 16세기 초 태평양 연안을 따라 에르난 폰세 데 레온과 후안 데 카스타녜다의 탐험으로 시작되었다. 후안 데 카스타녜다는 곧 이 지역의 원주민들을 스페인의 지배하에 두었다. 독립 후 주지사들은 유럽으로부터 수입된 백인 노동자로 영토를 채우는 데 관심을 가졌다.[20] 대서양으로 가는 철도의 건설을 위한 바나나 재배와 노동력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였다. 1864년의 인구조사에서, 코스타리카에는 41명의 스페인 사람만이 있었지만, 1927년에는 2,527명으로 늘어났다.[21]
20세기 초,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파나마 운하의 건설에 이끌려 파나마로 이주하기 위한 다리로 코스타리카를 이용했다. 같은 시기에 카탈로니아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많은 카탈로니아인들이 코스타리카로 이주하도록 자극했고, 몇 년 안에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산호세에서 번영하고 영향력 있는 공동체가 되었다. 현재 코스타리카에서 카탈루냐인들이 스페인 사람들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09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현재 코스타리카에는 16,482명의 스페인 시민이 있다.[22]
스위스인
스위스 사람들은 19세기부터 코스타리카로 이민을 와서 코스타리카 초콜릿 개발에 관여해 왔다.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citation needed] 약 1,642명의 스위스인이 있다.
우루과이인
2012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약 1,200명의 우루과이 사람들이 있다. 이 나라는 최근 우루과이 기업인들에게 매력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베네수엘라인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는 에스카주, 산타아나 지역에 주로 산호세 지역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인이 약 3886명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들 나라의 정치적 문제로부터 피난민으로 도착했다. 이 인구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크게 늘었는데, 주로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 위기 때문이다. 오늘날 코스타리카에는 약 15,000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있다.
참고 항목
참조
- ^ a b c "Costa Rica: Población total nacida en el extranjero por zona y sexo, según país de nacimiento y año de llegada al país". Instituto Nacional de Estadística y Censos (in Spanish). Retrieved 27 December 2017.
- ^ "Costa Rica: Población total por lugar de nacimiento, según provincia de residencia actual y sexo". Instituto Nacional de Estadística y Censos (in Spanish). Retrieved 27 December 2017.
- ^ Cepal Inmigracion en Costa Rica: Caraceticas societes y lobales, integracion y politicas publicas recovered, 2014년 11월 12일.
- ^ 2014/11/12년 코스타리카에서 라 나시온 라 미타드 데 로스 에스타도니덴스(La Nacion La mitad de los estadidens)가 대기하고 있다.
- ^ Los inmigrantes y el poder in Costa Rica Archived 2015-07-03 Wayback Machine 페이지: 133,134 및 135 검색됨, 2014/11/12.
- ^ "Costa Rica: Población total nacida en el extranjero por zona y sexo, según país de nacimiento y año de llegada al país". INEC Costa Rica. National Institute of Statistics And Censuses, Costa Rica.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6-10-10. Retrieved 10 Jul 2018.
- ^ 코스타리카에 살고 있는 캐나다인들은 2014년 11월 12일에 회복되었다.
- ^ 로리아 차베스 & 로드리게스 차베스 2001
- ^ Chen Apuy 1992, 페이지 5 (
- ^ 2014년 11월 12일 코스타리카의 훌리오 바렐라 자라 인미그라시온 콜롬비아인 리콜 대상
- ^ 2014/11/12년 코스타리카 콘 프랑시아 리베드, Republica de Costa Relacion de Costa Rica Con Francia Recovered.
- ^ 비즈니스 매거진 La inmigracion allemana in Costa Rica. Migracion, 위기 y cambios는 1920 y 1950년 에 엔트레비스타 con entrevistas con downines Alemanes. 검색됨, 2014/11/12.
- ^ "MEA - GOI" (PDF). MEA - Government of India.
- ^ Revista Acta Academica La inmigracionon Italiana in Costa Rica Retried, 2014/11/12.
- ^ 2014/11/12년 Wayback Machine Retried, 2014/11/12에 2012-06-25를 보관한 멕시코인
- ^ 월드 팩트북
- ^ 2002년 12월 5일 코스타리카에서 카를로스 카스트로 발베르데 미가라시온 니카라귀엔센스 (쿠아드로 2) 검색됨, 2014년 11월 12일
- ^ 코스타리카의 폴라코스 주디오스 이 외국인 혐오증: 1929 - 1941 웨이백 머신 리리버드, 2014/11/12에 2014-04-19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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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INE-Censo cerrado el extranjero에 거주하는 Censo 선거구 데 에스파뇰. 2014년 11월 12일 회수된 웨이백 머신에 2010-01-27 보관.
메모들
- 1. 이 페이지의 통계는 섹션 인구통계학의 스페인어 위키백과 페이지(코스타리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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