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곤살베스
Harold Gonsalves해럴드 곤살베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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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 캘리포니아 알라메다 | )1926년 1월 28일
죽은 | 1945년 4월 15일 오키나와, 류큐 열도, 일본 제국 | (199세)
매장지 | 캘리포니아 산브루노의 골든 게이트 국립묘지 |
얼리전스 | 미국 |
서비스/지점 | 미국 해병대 |
근속년수 | 1943–1945 |
순위 | 퍼스트 클래스 개인 |
구성 단위 | 배터리 L, 4대대대, 해병 15대, 해병 6사단 |
전투/와이어 | 제2차 세계 대전 |
수상 | 메달 오브 아너 퍼플 하트 메달 전투 액션 리본 대통령부대 표창장 해군부대 표창(2) |
해롤드 곤살베스(Harold Gonsalves, 1926년 1월 28일 ~ 1945년 4월 15일)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오키나와 전투 중 전사했던 미 해병대의 일등병이었다. 그는 1945년 4월 15일 영웅적인 행동으로 사후 국가 최고 용맹의 군상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초년
곤살베스는 1926년 1월 28일 캘리포니아 알라메다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라메다에서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2년 반 후에 오클랜드에 있는 몽고메리 워드와 함께 주식 점원으로 일하기 위해 그만두었다. 고등학교 때, 그는 축구, 야구, 육상, 수영에 참가했다. 그는 또한 학교 글리 클럽에서 테너를 불렀다.
제2차 세계 대전
미국 해병대
곤살베스는 1943년 5월 27일 해병대 예비군에 입대하였고, 1943년 6월 17일 현역으로 소집되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해병대 리크루트 디포에서 신병훈련을 받은 뒤 자신의 요청으로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 있는 해병대 레이더스에 파견됐다. 3주 후 같은 진영의 포병대로 전출되었다. 1943년 가을 제30차 교체대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75·105밀리 포에 식인족으로 분류되었다.
해외
Pvt. 곤살베스는 1943년 11월 8일 미국을 떠났고, 그 달 말에 하와이에 있던 제2팩 하우처 대대에 배속되었다. 1944년 3월 일병 1급으로 진급했고, 두 달 뒤 그의 대대와 함께 22해병연대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마셜 제도의 엥게비 제도와 패리 제도에 대한 공격과 포획, 점령에 참여했다. 제22 해병대는 토마스 E 소장이 인용했다. 왓슨, 전술 그룹 1의 총사령관 마샬스 캠페인에 참여했네 에니웨톡에서 곤살베스는 22번째 해병대를 이끌고 콰잘린, 과달카날, 다시 콰젤린, 에니웨톡으로 갔다가 7월에 괌까지 가서 전쟁 전 미국 섬의 해방에 참가했다.
괌에 이어 제22 해병대가 과달카날로 돌아왔다. 11월에는 연대에서 이탈하여 제4대대대, 제15해병연대, 제6해병사단 배터리 L에 입대하였다.
오키나와
PFC 곤살베스는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에 15번째 해병대와 함께 상륙했다. 4월 15일, 모토부 반도의 일본 진지에 대한 보병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포사격을 지휘하는 8인조 전방 감시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마침내 팀이 실제 전선으로 진출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담당 장교는 곤살베스와 다른 한 사람을 데리고 갔다. 곤살베스는 그 팀의 스카우트 하사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와 다른 해병대는 포병대대와 교신하기 위해 전화선을 깔아야 했다. 대원들이 전선으로 진격하면서 그들은 적의 중소총과 수류탄, 박격포 사격을 받았다. 세 사람이 전선에 닿았을 때 마침 일본 수류탄 한 발이 그들 사이에 떨어졌다. 세 사람으로부터 1피트도 안 되는 거리였다. 곤살베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수류탄에 몸을 던지며 완전한 폭발을 감행했다. 나머지 2명의 해병은 수류탄 파편에도 손대지 않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메달 오브 아너
명예 훈장, 해리 S 대통령이 서명한 표창장. 트루먼은 1946년 6월 19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USMC의 헨리 루이스 라르센 태평양부 사령관 사무실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부모님들 앞에서 PFC 곤살베스의 누이에게 선물되었다.
매장
PFC 곤살베스의 유해는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반환되어 재조명을 받았다. 1949년 3월 20일 캘리포니아주 산브루노에 있는 황금문 국립묘지에 군예의 영예를 안고 안장되었다.
네임스케이크
1958년 오키나와 북쪽 끝의 단일 및 이중 캐노피 정글 2만 에이커(80km2)에 위치한 미 해병대 훈련기지 '북방 훈련구역'이 1986년 PFC 곤살베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후 1998년 해병대 정글전투훈련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MCAS 미라마에 있는 곤살베스 에비뉴는 1997년 해병대가 통치를 맡은 후 그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지어졌다.
명예훈장 표창
미국 대통령은 사후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
미국 해병대 예비군
다음 인용문에 명시된 서비스:
1945년 4월 15일 류큐 체인 오키나와 시마에서 적군 일본군에 대한 전투 중 전방 감시단의 정찰병 대행을 맡고 있는 전방 감시대 대위로서의 임무 이상과 그 이상의 용맹함을 위해. 모토부 반도에서 일본군의 강력한 군사력에 대한 해병대 보병 대대의 맹렬한 공격 중 모토부 반도에 맞닥뜨린 강력한 조직적인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곤살베스 일병 일병은 포사격을 지휘하는데 있어서 그의 전방 감시팀을 돕기 위해 그리고 그의 임무가 있을 때 계속해서 맹렬한 적대적인 공격을 가했다.앤딩 장교가 적의 방어태세에 보다 효과적인 폭격을 등록하기 위해 전선으로 진격하기로 결심하고, 적군의 박격포와 소총의 격파에도 불구하고 장교와 또 다른 해병과 함께 거침없이 오르막길을 진격했다. 그들이 전선에 이르자 일군의 수류탄 한 발이 가까이 떨어졌다. 즉시 곤살베스 일병이 그 치명적인 미사일에 뛰어들어 자신의 몸에서 폭발하는 전하를 흡수하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심각하고 아마도 치명적인 상처로부터 보호했다. 강인하고 불굴의 일등병인 곤살베스 일병은 광신적인 일본인에 대한 무자비한 전투와 그의 냉정한 결정, 신속한 행동, 용맹스러운 희생정신은 자신과 부대에 대한 최고의 공로를 기꺼이 반영했다.에드 주 해군. 그는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S/ 해리 S. 트루먼
군장 & 상
- 메달 오브 아너
- 퍼플 하트 메달
- 전투 액션 리본
- 대통령부대 표창장
- 금 5/16인치 별을 가진 해군 부대 표창
- 아메리칸 캠페인 메달
- 동종 서비스 스타와 함께하는 아시아 태평양 캠페인 메달
- 제2차 세계 대전 승리 메달
참고 항목
참조
- ""Private First Class Harold Gonsalves, USMCR", Who's Who in Marine Corps History, History Division, United States Marine Corp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February 4, 2012. Retrieved September 29, 2010.
- "Medal of Honor citatio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July 14, 2007. Retrieved September 29,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