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A. 해리슨

Gilbert A.

길버트 에이버리 해리슨(1915년 5월 18일 ~ 2008년 1월 3일)은 1953년부터 1974년 사이에 영향력 있는 미국의 잡지 《더 뉴 리퍼블릭》의 소유주 겸 편집자였다. 해리슨은 1964년 신공화국을 활성화시킨 공로로 조지 폴크상을 받았다.[1]

뉴욕타임스(NYT)는 이 잡지의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중 "이 잡지는 민권 운동을 대변하는 강한 목소리였다. 당초 베트남 전쟁을 지지한 뒤 린든 B 대통령을 거듭 비판하며 강력한 적수가 됐다. 존슨리차드 M. 닉슨."[1]

"1968년, 잡지는 휴버트 H에 대한 승인을 거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어 "결국 민주당 후보 험프리 씨가 대통령 지명에 실패한 유진 매카시 미네소타주 진보성향 상원의원이 대표를 맡을 새 정당 창당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1]

전기

1915년 5월 18일 미시간디트로이트에서 새뮤얼 해리슨과 마벨 울프의 세 자녀 중 한 명이다.[1]

1937년 그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그곳에서 그는 또한 이 대학의 신문인 데일리 브루인의 편집자였다.[1] 그 후 그는 종교간 협력을 촉진하는 대학 종교회의에서 일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워싱턴 D.C.에 있는 민방위청 청년본부장으로 그를 영입한 엘리너 루스벨트를 만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 공군에 복무했고 필리핀에서 복무했다. 1948년 해리슨은 미국 재향군인 위원회의 국가 의장이 되었다.[1]

해리슨은 1951년 아니타 매코믹 블레인(Anita McCormick Blaine)의 손녀 앤 블레인(Anne Blaine)과 결혼했다. 그들에게는 야고보와 다윗과 요엘이라는 세 아들과 딸 엘리노어가 있었다.[1]

그는 "A Timeless Affair: 그의 시할머니의 전기인 아니타 매코믹 블레인(Unita McCormick Blaine, 1979년 시카고대학 출판부)과 '마니아: 손턴 와일더의 삶'(Ticknor & Fields, 1983년)이다.[1]

그는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살았다. 2008년 1월 3일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사망하였다.[1]

참조

  1. ^ a b c d e f g h i "Gilbert Harrison, Ex-Editor, 92, Dies". New York Times. January 8,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