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M. 디몬드
Francis M.프랜시스 무어 디몬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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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아일랜드 23대 주지사 | |
재직중 1853년 7월 20일 – 1854년 5월 2일 | |
선행자 | 필립 앨런 |
성공자 | 윌리엄 W. 호핀 |
개인내역 | |
태어난 | 로드아일랜드 브리스톨 | 1796년 6월 6일
죽은 | 1859년 4월 12일 | (62)
휴게소 | 주니퍼 힐 묘지 |
정당 | 민주적인 |
배우자 | 마사 스탠튼 굴드 |
거주지 | 로드아일랜드 브리스톨 |
직업 | 정치인, 철도맨 |
프랜시스 무어 디몬드(Francis Moore Dimond, 1796년 6월 6일 ~ 1859년 4월 12일)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로드아일랜드의 제23대 주지사였다.
전기
디몬드는 1796년 6월 6일 로드 아일랜드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 카리브해로 건너가 포르토프랭스의 미국 영사로 몇 년(1832년-1835년) 동안 근무했다.
1842년부터 1849년까지 디몬드는 멕시코 항구도시 베라크루즈의 미국 영사였다.[1] 그가 그곳에서 얻은 지식은 멕시코와의 전쟁 동안 귀중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멕시코와의 전쟁 중, 그는 베라크루즈 공격에 도움이 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불려갔다. 전투가 끝난 후, 미군은 그 지역을 점령했다. 당시 디몬드는 윈필드 스콧 장군의 공식 통역관으로 활동했다. 또한 베라크루즈 항구의 수집가가 되었다.
로드아일랜드로 돌아오자 남태평양 철도를 홍보하고 공사를 주재했다. 그는 1853년 로드아일랜드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그는 필립 알렌이 상원의원이 되기 위해 사임했을 때 로드 아일랜드 주지사가 되었다. 1853년 7월 20일부터 1854년 5월 2일까지 주지사직을 지냈다.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 그는 1859년 4월 12일에 죽었다. 디몬드는 주니퍼 힐 묘지에 묻혔다.
프란시스 M. 디몬드 하우스
1838년, 뛰어난 건축가 러셀 워렌은 브리스톨의 희망 가에 디몬드를 위한 집을 설계했다.[2] 그것은 워렌이 서로 50피트 이내에서 설계한 그리스 부흥 주택 세 채의 세트 중 하나였다.[2] 디몬드의 집은 세 집 중 가장 비싼 집이었고, 디몬드는 파산하여 완공된 해에 팔았다.[2] 그 집은 아직도 브리스톨에 서 있다.
참조
- ^ "The Political Graveyard".
- ^ a b c Zipf, Catherine (25 May 2016). "Bristol's Greek Revival houses". The Providence Journal. Retrieved 26 May 2016.
외부 링크
원천
- 소벨, 로버트와 존 라이모. 1789-1978년 미국 주지사 인명록. 그린우드 프레스, 1988년 ISBN 0-313-280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