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 38°14′26″N 85°45′54″w / 38.2405°N 85.76496°W / 38.2405; -85.76496

이클립스 파크

Eclipse Park
이클립스 파크
이전 이름이클립스 파크 1세 (c.1874–1893)
이클립스 파크 II(1893–1899)
이클립스 파크 3세(1902–1922)
위치28번가와 엘리엇가 (I)
28번가와 브로드웨이 (II)
7위 및 켄터키 (III)
켄터키 주 루이빌
세입자
루이빌 이클립스 (MLB) (1882–1884)
루이빌 콜로넬스 (MLB) (1885–1899)
루이빌 콜로넬스 (MiLB) (1902–1922)
루이빌 브레켄리지 클럽 (Ind) (c.1899–1906)
루이빌 브레켄리지 (Ind./NFL) (1907–1922)
루이빌 카디널스 (NCAA) (1909–1912, 1920–1922)

이클립스 공원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세 개의 연속 야구장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루이빌 이클립스로 알려졌고 나중에는 루이빌 콜론엘스로 알려졌던 루이빌 야구팀의 홈구장이었다.

이 야구장의 특이한 이름은 협회 클럽의 원래 이름인 이클립스에서 유래되었다. 더 많은 지역 이름인 "콜로넬스"가 결국 승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클립스"는 복수형처럼 들리지만, "이클립스"는 단수형 팀 이름들 중 하나였다.

세미프로 야구는 빠르면 1874년에 첫 번째 이클립스 공원에서 열렸다. 루이빌 이클립스는 1882년부터 1884년까지 그곳에서 연주를 했다. 그 후 이 팀은 루이빌 콜론엘스로 이름이 바뀌었고 1885년부터 1893년까지 그 이름으로 계속 뛰었다. 이 팀은 1891년 미국 협회가 문을 닫았을 때 내셔널 리그에 합류할 때까지 미국 협회의 일원이었다. 공원은 1892년 9월 27일 화재로 소실되었다. 1893년 시즌은 공원의 남은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1892년 이클립스 파크 1세

원래의 이클립스 공원은 28번가에 위치해 있었고 엘리어트 거리는 루이빌 서쪽에 있었다.

1905년 이클립스 파크 2세

번째 이클립스 공원은 원래 공원의 남쪽 블록에 지어졌다. 도시의 디렉토리와 지역 신문들은 그 위치를 28번가(동쪽)와 브로드웨이(북쪽)로 제시한다. 루이빌 콜로넬스는 1893년 시즌 초반부터 1899년 시즌까지 그곳에서 경기를 했다. 1897년 7월 19일 명예의 전당 호너스 바그너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라운드다.

제2의 이클립스 공원은 1899년 8월 12일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그 클럽은 도로 여행 중이었다. 이들은 열흘 뒤 부분적으로 새로 지은 공원으로 돌아왔지만 관중석이 부족했고 구단이 도로팀으로 마지막 달을 뛰었다.

이번 화재는 한 때 강했던 루이빌 구단이 시즌 종료 후 계약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구단주 바니 드레이퍼스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인수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바람에 흩어지는 대신 와그너, 3루수 토미 리치, 외야수 프레드 클라크 감독, 에이스 우완 디콘 필립 등 루이빌 대표팀 명단에서 뽑힌 최고의 선수들이 피츠버그 연봉에 올랐다. 이러한 재능의 유입은 곧 영구적인 지하실에서 생활하는 파이리츠를 3개의 페넌트 우승자로, 그리고 최초의 현대 월드시리즈 참가자로 바꾸었다.

프로 볼이 1년 동안 결장하자 1901년 루이스빌 콜론엘스의 서부협회 입국이 공원 잔해에서 열렸다. 이 클럽은 6월 말 경에 추첨이 잘 되지 않아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로 이적했다.

1905년 이클립스 파크 3호

번째이자 마지막인 이클립스 공원은 7번가(동쪽), 켄터키 거리(남쪽), 8번가(서쪽), 그리고 리머릭 근교의 플로렌스 플레이스(북쪽)가 경계한 블록 위에 지어졌다. 야구장은 조지 "화이트 윙스" 테보가 1902년부터 1922년까지 그곳에서 뛰었던 미국 협회 마이너리그 루이스빌 콜론엘스의 홈구장으로 지어졌다.

마지막 이클립스 공원은 1922년 11월 21일 화재로 역시 소실될 때까지 20년 이상 운영된 처음 두 곳보다 운이 좋았다.

세 곳의 이클립스 공원은 모두 다양한 기원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루이빌 쿠리어 저널은 다음 날 이 사건들을 다루었다. 이 신문은 1922년 화재 이후 목재 야구장은 구식이고 강철과 콘크리트로 대체해야 한다고 사설했다. 구단은 그 충고를 따랐고, 이듬해 봄 파크웨이 필드를 개장했다.

참고 항목

참조

  • 녹색 대성당, 필 로리 편
  • 북미의 야구장, 마이클 벤슨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