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코엘로

Claudio Coello
자화상

클라우디오 코엘로(Claudio Coello, 1642년 3월 2일 ~ 1693년 4월 20일)는 스페인바로크 화가였다. 코엘로는 17세기의 마지막 위대한 스페인 화가로 여겨진다.

포르투갈의 유명한 조각가인 파우스티노 코엘로의 아들로 샤를 2세궁정화가였다. 그는 마드리드의 많은 교회와 공공 건물에서 일했는데,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사제들과 궁정들의 초상화로 가득 찬 엘 에스코리알성찬식에 있었다.

삶과 일

클라우디오 코엘로는 포르투갈인 부모였으나 1642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란시스코 리지에 의해 예술 교육을 받았고, 아직 그 학교에 있는 동안 마드리드에 있는플라시도 제단을 위한 제단을 처형했다. 궁중 화가인 후안 카레뇨미란다와 친분이 있는 그는 왕실 소장품 방문 허가를 얻어 그곳에서 티티안, 루벤스, 반 다이크의 작품을 연구함으로써 최대의 진보를 이룩했다. 그의 우정은

로마에서 공부했던 호세 히메네즈 도노소와는 그에게도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 그 예술가와 함께 그는 마드리드와 톨레도에서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올리언스의 여왕 마리아 루이사의 입구를 위해 트라이얼 아치를 실행했다. 이 그림들에 의해 그는 잘 알려지게 되었고, 1683년에 사라고사 대주교에게 고용되었다. 그는 에스코리알에 고용된 찰스 2세의 화가가 되었다.

사그라다 포르마, 클라우디오 코엘로, 엘 에스코리알의 작품

쿠엘로는 루카 지오다노가 스페인으로 소환될 때부터 미술은 점차 쇠퇴해 갔기 때문에 몇 년 동안 마지막으로 유명한 스페인 화가였다. 그의 작품의 많은 훌륭한 예들은 마드리드, 사라고사, 살라망카의 교회와 수녀원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주요 작품은 '기적의 숙주'를 상징하는 산 로렌초 성찬의 유명한 제단 조각이다. 이 작품은 7년 동안 화가를 점령했다.

행렬을 이루는 인물의 무리 속에는 왕의 초상화와 궁중의 주요 인물들을 포함하여 50여 점이나 되는 초상화가 있는데, 그 초상화는 극히 정밀하게 그려지면서도 대담하고 명철한 문체로 그려져 있으며, 전체적인 배치에는 장엄한 엄숙함이 있어 주제의 웅장함에 잘 어울린다. 매우 파격적인 공연으로 티티안과 루벤스의 작품 옆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692년 마드리드에 온 루카 지오다노가 에스코리알의 대계단을 그리는데 선호가 가해진 것은 코엘로를 너무나 굴욕케 하여 1693년 마드리드에서 분개하여 세상을 떠났다.[citation needed]

코엘로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크리스도 온 더 크로스'라는 접시 세 개를 에칭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세인트. 모니카,' 그리고 찰스 2세와 그의 어머니의 초상화들. 세바스티안 무뇨즈테오도로 아르만스의 교관이었다.

선택한 작품

갤러리

참조

  • Public Domain 이 글에는 현재 공개 도메인에 있는 출판물의 텍스트가 통합되어 있다. Bryan, Michael (1886). "Coello, Claudio". In Graves, Robert Edmund (ed.). Bryan's Dictionary of Painters and Engravers (A–K). I (3rd ed.). London: George Bell & Sons.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