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쿨리 전투
Battle of Itakhuli이타쿨리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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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힘-무굴 분쟁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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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전성 | |||||||
아옴 왕국 | 무굴 제국 | ||||||
지휘관과 지도자 | |||||||
디힝기아 알룬 보르바루아 | 만수르 칸, 알리 아크바르 |
다음 시리즈의 일부 |
아삼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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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이타쿨리 전투는 1682년 아옴 왕국과 무굴 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투였다.아옴족은 영원히 무굴의 지배를 마나스 강 서쪽에 밀어넣었다.[1]주요 전투는 브라흐마푸트라에 있는 수비대 섬에서 진행되었는데, 이 섬에서는 무굴파우즈다르, 만수르 칸이 패배하고 무굴군의 잔당들이 마나스 강으로 추격하였다.이번 승리로, 아옴스는 무굴에서 사르카 카므럽을 되찾았다.
아옴 준비
1681년 가다하르 싱하가 아옴 왕이 된 후, 1682년 3월 구와하티에서 무굴족을 추방하기 위한 전쟁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디힌기야 알룬 바르바루아 산하에 군대가 조직되었다.A three-pronged advance was made in June and July 1682: under the commands of Holou Deka-Phukan and the Namdangiya Phukan along the north bank of the Brahmaputra river; under Garhgayan Sanikoi Neog Phukan and Khamrak Charingiya Phukan along the south bank; and the navy under Bandar Barphukan and Champa Paniphukan.[2]
무굴 방어와 전투
무굴인들은 푸즈다르 만수르 칸이 병들어 병사들 사이에 불만이 팽배해 있는 등 불리한 입장에 있었다.[3]제국의 관심은 다른 곳에 집중되었다.무굴 황제 아우랑제브는 무굴-마라타 전쟁(1680~1707)으로 데칸 쪽으로 끌려갔고, 벵골 수바는 동인도 회사와의 분쟁으로 바빴다.[4]아옴군이 진격함에 따라 무굴들은 북안의 바하리와 쿠루아, 남안의 카잘리와 파니카이티 등 전진 전초기지에서 이타쿨리 요새로 후퇴했다.The Ahoms now cast their focus on Shah Buruz on the north bank (Salal Borgohain, Bandar Borphukan, the Sadiyakhowa Gohain, the Marangikhowa Gohain and others) and on Itakhuli on the south bank (Dihingiya Borbarua, Saring Phukan and others posted at the Sarania fort).파니 푸칸은 바르나디 강 어귀에 함대를 유지했다.[5]
이타쿨리 사령관 알리 아크바르가 사라니아 요새에서 아옴군을 공격했을 때 유일하게 경합된 전투였지만 큰 패배를 당한 뒤 후퇴해야 했다.이로 인해 faujdar Mansur Khan은 요새를 탈주하게 되었다(1682년 7월 17일).이때 아옴족은 이타쿨리까지 진격하여 포위했다.[6]1682년 8월 15일 파니두아르에서 디힝기아 라즈카하(아옴)와 자얀타 싱하(무할) 사이에 해전이 벌어졌고, 자얀타의 패배와 항복으로 이타쿨리 수비대는 아무런 해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타쿨리에 남겨졌다.[7]
지위를 지탱할 수 없었던 알리 아크바는 다음날 새벽에 이타쿨리를 부대와 함께 버리고 구와하티에서 마수르 칸을 만나 배를 타고 은밀히 랑가마티로 후퇴했다.인드라다만, 달란 싱, 카비르 칸 휘하의 기병대는 육로로 소생하고 보르바루아가 육지로 추격하여 마나스 강까지 물을 공급했다.대피한 이타쿨리 요새는 당시 체티아 보르푸칸이 점령했다.[8]
전리품
전리품들은 막대했다. 송아지, 금, 은, 구리, 놋쇠, 납, 무기, 그리고 전쟁의 동물들.포로 중 라자 람싱의 사촌들은 풀려났지만, 고 랄루콜라 보르푸칸의 동생인 바트다라 푸칸은 구와하티를 버린 채 처참하게 살해되었다.[9]
이타쿨리가 함락되면서 아옴 왕국은 재빨리 이 지역을 마나스 강까지 점령하고, 보르푸칸 산하에 그의 본부를 구와하티에 두고 행정을 세웠다.[10]
메모들
- ^ "1682년 9월 이타쿨리 전투에서 아옴군은 패배한 무굴들을 거의 100km 떨어진 마나스 강까지 추격했다.그 후 마나스는 영국 점령 때까지 아옴-무갈 경계가 되었다."(1995년, 페이지 247)
- ^ (Sarkar 1992, 페이지 253)
- ^ (Sarkar 1992, 페이지 254)
- ^ (Sarkar 1992, 페이지 256)
- ^ (Sarkar 1992, 페이지 254)
- ^ (Sarkar 1992, 페이지 254)
- ^ (Sarkar 1992, 페이지 255)
- ^ (Sarkar 1992, 페이지 255)
- ^ 바트다라 푸칸은 아들들의 살을 먹도록 만들어져 살해되었다.(사르 1992년, 페이지 255ff)
- ^ (Sarkar 1992, 페이지 256)
참조
- Richards, John F. (1995). The Mughal Empir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0521566037. Retrieved 26 January 2013.
- Sarkar, J N (1992). "Assam-Mughal Relations". In Barpujari, H K (ed.). The Comprehensive History of Assam. Vol. 2. Guwahati: Publication Board Assam. pp. 148–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