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룩셈부르크 총선
1945 Luxembourg general e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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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 51석 과반수 확보에 필요한 26석 | |||||||||||||||||||||||||||||
여기에는 의석을 얻은 정당들이 나열되어 있다. 아래 전체 결과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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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21일 룩셈부르크에서 총선이 치러졌다.[1] 이 선거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점령 이후 치러진 첫 선거였다. 전쟁의 결과로, 전쟁 기간 동안의 정치적 동맹은 종식되었다. 이들의 자리에는 각각 우파, 사회당, 급진자유당 대신 기독교사회인민당, 룩셈부르크사회노동당, 애국민주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4년까지 유지될 4개의 기성 정당과 함께 당 정치질서가 확립된 이번 선거는 재집권 선거로 평가된다.
보수세력은 우세한 파벌로 남아 있었고, 기독교사회인민당(SPC)의 피에르 뒤퐁 당수는 다른 정부 수반으로 초청되었다. 이번 선거는 자유당과 공산당의 후보 모두에게 성공적이었고, 애국당과 민주, 공산당이 전쟁 전의 지난 선거보다 4석을 더 얻었다.[a] 정치적 안정을 되찾기 위해 샬롯 대공비는 두퐁에게 이전의 해방 정부보다 더 넓은 기반의 연합군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로 생긴 전국 연합 정부는 4개 정당을 모두 포용할 것이며, 또한 하원 전체의 지지를 보장하는 독방적인 무소속도 포함할 것이다. 정부는 1947년까지 제자리를 유지했다.
결과.
파티 | 투표 | % | 좌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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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회인민당 | 907,601 | 41.41 | 25 | |
룩셈부르크 사회주의 노동자당 | 569,025 | 25.97 | 11 | |
애국민주단체 | 366,860 | 16.74 | 9 | |
룩셈부르크 공산당 | 295,701 | 13.49 | 5 | |
자유당 | 36,321 | 1.66 | 0 | |
동양의 무소속 정당 | 13,977 | 0.64 | 1 | |
슈머당 | 2,015 | 0.09 | 0 | |
합계 | 2,191,500 | 100.00 | 51 | |
유효표 | 153,596 | 96.55 | ||
유효하지 않은/빈 표 | 5,487 | 3.45 | ||
총표 | 159,083 | 100.00 | ||
출처: 노를렌 & 스토버 |
메모들
- ^ 애국민주당은 신당이었지만 이념의 선구자였던 1937년 급진자유당이 얻은 것보다 4승을 더 많이 얻었다.
참조
- ^ 디터 노렌 & 필립 스탕버(2010년) 유럽 선거: 데이터 핸드북, p1244 ISBN978-3-8329-56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