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 브랜드 밀로의 공동 창립자들이 꾸민 완벽한 침실
침구 브랜드 밀로의 공동 창립자 로라 탠저와 제시카 심슨이 밀라노 외곽의 고성으로 향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색과 패턴, 감촉과 향기로 가득한 완벽한 침실을 꾸미기 위해서다.
침구 브랜드 ‘밀로(Milaux)’의 공동 창립자 로라 탠저(Laura Tanzer)는 어느 날 문득 주치의에게 침구를 개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의사가 보인 반응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말했죠. ‘그거 정말 꼭 필요한 일이군요. 침대는 자궁 같은 거니까요.’” 그 전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지만 듣고 보니 침대와 자궁에서 깊은 유사성이 느껴졌다. 베트멍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로라 탠저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입학해 디자인 공부를 계속했다. 그 후 뎀나 곁에서 3년간 일하며 발렌시아가 꾸뛰르 컬렉션 론칭을 준비했다. 탠저와 결혼한 밀로의 공동 창립자 제시카 심슨(Jessica Simpson)은 전직 프로 테니스 선수다. 그는 해마다 35주가량을 해외에 머물며 수많은 호텔을 전전했다. 심각한 부상으로 테니스를 그만둔 후 심슨은 아트 갤러리부터 호스피탤리티 브랜드까지 다양한 일을 하며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비전을 그렸다. 함께 밀로를 설립하기 전, 두 사람은 영국에서 만나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
“로라와 한때 장거리 연애를 했어요. 당시 호텔과 침구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로맨틱한 대화의 일부였죠. ‘방 느낌은 어때?’ ‘어떤 부분이 특히 아늑해?’ 같은 질문을 나누면서 말이에요.” 심슨이 회상했다. 시간이 흘러 함께 살기로 한 둘은 침실을 꾸미며 원하는 침구를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인 건 둘 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도전을 즐긴다는 사실이었죠.” 심슨이 어깨를 으쓱했다.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하게 된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클래식한 전통이나 이유 없는 미니멀리즘에 치우치지 않고, 맥시멀하면서 독특하고 즐거우면서도 평화로운 이미지의 침구를 만들기로 다짐했죠.”
‘밀로’라는 이름은 탠저의 어린 시절 추억에서 떠올렸다. “프랑스 남부에 미요(Millau)라는 도시가 있어요.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가 있는 곳이죠. 어렸을 때 자주 갔어요.” 그 다리 근처에 있었던 조부모의 집은 어린 그에게 깊은 잔상을 남겼다. “할머니 댁 정원에는 전갈도 있었어요. ‘세상에, 정말 별의별 생물이 다 있구나’ 싶은 대저택이었죠.” 언뜻 들으면 옛 동화 같은 이 신비로운 추억은 밀로라는 브랜드의 기반이 되었다.
“패션계에서 활동한 프린트 디자이너와 협업하면서 패션의 관점에서 침구에 접근했어요.” 탠저가 밀로의 탄생 스토리를 묻자 답했다. “오뜨 꾸뛰르 컬렉션처럼 주기적으로 새 컬렉션을 출시했죠. 게다가 고객이 요청하면 색상이나 사이즈를 맞춤 제작하는 것도 얼마든 가능하도록 기획했어요. 예를 들어 집에 걸린 아름다운 녹색 태피스트리와 어울리는 침구를 갖고 싶은데 가능하냐는 식의 문의도 언제나 환영이죠.” 프린트는 피오나 블레이크먼(Fiona Blakeman)과 협업해 개발한다. 탠저와 센트럴 세인트 마틴 동문인 블레이크먼은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와 오랫동안 협력했으며, 셀린느 시절 피비 파일로 밑에서 일했고, 최근에는 JW 앤더슨을 위해 기네스 맥주 전용 잔 프린트를 개발했다. 협업은 처음부터 순조로웠다. “피오나에게 우리의 비전을 설명하면서 컬렉션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집’과 그 안을 구성할 여러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설명했어요.” 그런 다음 다양한 시각 레퍼런스와 영감을 수집했다. “침실 사진부터 신화 속 동물까지, 우리의 테이블엔 온갖 희한한 이미지가 다 펼쳐졌어요. 어떤 추상적인 것이든 존재할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밀로는 모든 것이 가능한 그 ‘집’에서 최근 ‘패스토럴(Pastoral)’과 ‘로얄(Royale)’이라는 두 컬렉션을 동시에 선보였다. “애니멀 프린트는 꼭 만들고 싶었어요.” 탠저가 말했다. “꽃이나 정원도 어떤 식으로든 다루고 싶었던 주제예요.” 꽃무늬를 촌스럽지 않고 우아하게 보이도록 디자인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블레이크먼이 있었다. 이 외에도 밀로 컬렉션에는 중세 깃발을 연상시키는 삼각형, 지그재그나 ‘엑스(X)’ 자 형태 같은 기하학적 모티브도 추가했다.
탠저와 심슨은 침대가 더 다채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침실은 모든 부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공간이어야 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특정 연령대가 되면 ‘어른스러운’ 침구를 선택하더라고요. 전부 하얀색이거나 서로 매치되는 것들로만요.” 심슨이 이야기했다. “그래서 베갯잇을 하나하나 단독 출시해서 사람들이 원하면 모조리 다른 베갯잇을 구입하거나 침대 시트와 전혀 매치되지 않는 이불 커버를 써도 괜찮다고 여기게 하고 싶었어요. 세상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요!”
이들은 컬렉션을 선보이는 ‘상상의 집’을 위해 맞춤 향도 개발했다. (향은 케이프타운에서 브랜드 맞춤 향기를 개발하는 심슨의 이모와 협업해 만들었다.) “잡초가 무성한 다 허물어져 가는 집을 상상했어요. 허허벌판에 우뚝 선 거대한 저택 말이죠. 겉보기엔 아무도 살지 않는 곳 같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놀랍도록 아름다운 향기가 나요. 촛불로 환히 밝힌 집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한, 그러면서도 가족 구성원 모두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을 부족함 없이 갖춘 그런 집이요.” 탠저의 말이 빨라졌다. “그리고 오래된 책이 잔뜩 꽂힌 서재에 들어서면 반쯤 열린 창문으로 약간의 비바람이 들이치는 거죠. 그 때문에 바깥에서 풀 향이 솔솔 풍겨오는, 상상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공간을 꿈꿨어요.” 밀라노 외곽의 고성은 이들의 꿈을 실현하는 무대가 되었다. “컬렉션 촬영을 위한 완벽한 저택을 찾으려고 많은 공을 들였는데, 밀라노 외곽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서 딱 맞는 성을 발견했어요.” 탠저가 회상했다. 이들은 곧바로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서 3일 동안 드넓은 성안을 두루 누비며 상상 속 이미지를 구현해나갔다. “살면서 다림질을 그렇게 많이 해본 적은 없었어요.” 탠저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침실에 관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비전을 담아 선보인 이 브랜드를 더 키우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탠저와 심슨은 그 계획을 고수하진 않을 생각이다. 이번에는 심슨이 나섰다. “그때그때 느낌이나 필요에 따라 움직일 거예요.” 현재 밀로에서는 제품 하나를 수작업으로 완성하기까지 6~8주가 필요하다. 다행히 비교적 느린 제작 속도는 브랜드 정체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많은 사람이 8시간의 근무시간에는 많은 돈과 시간, 노력을 할애하죠. 그러나 집 안에서 보내는 8시간에 대해서는 그만큼 신경 쓰지 않아요. 바로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 말이에요.” 탠저가 이야기했다. “침실은 하루를 차분히 마무리하고, 새로운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는 공간이에요. 이 의식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죠. 그런 일상을 찬미하며 신비로운 수면 문화를 계속 탐구할 거예요.”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사진
- ISABEL BRONTS
- 글
- NICOLE KL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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