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활약한 보재 이상설(1870∼1917)선생의 순국일은 지금까지 알려진 4월 22일이 아니라 4월 1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박걸순(충북대 사학과)교수는 14일 충북 진천군 진천화랑관에서 열린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기 학술대회’에서 “보재의 순국일은 4월 1일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 동안 학계와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지역 주민 등은 보재 순국일을 4월 22일로 알고, 매년 진천 충렬사에서 추모 제례를 거행해왔다.
박 교수가 선생의 순국일이 4월 1일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일제의 정보보고 문서와 매일신보 기사이다.
그는 “1917년 4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대리가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일제의 정보보고 문서에 의하면 선생은 4월 1일 니콜리스크 우스리스크시에서 병사한 것으로 되어있다”며 “4월 10일 블라디보스토크 파견원도 선생이 폐질환으로 병원(대년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4월 1일 오후에 사망했다고 구체적으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매일신보의 보도기사는 선생의 순국일을 알 수 있는 더 결정적인 자료”라고 했다.
그는 “매일신보는 1917년 4월 17일자 2단 기사에서 ‘이상설이 신병에 걸려 음력 윤 2월 10일 시베리아의 니콜라에프스크에서 사망했는데, 4월 15일 경성에 있는 아우에게 부음이 도착했다’고 보도했다”며 “1917년 윤 2월 10일은 양력으로 4월 1일”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선생의 사망 시점과 입원한 병원이 밝혀진 것은 최초의 자료”라며 “순국일이 자료로 분명하게 밝혀진 만큼 이제라도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4월 22일을 순국일로 알고 제례를 봉행해온 데 대해 박 교수는 “선생의 순국일을 1917년 3월 2일이라고 한 일부 학자의 주장을 근거로 이 날을 음력으로 보고 양력으로 환산해 확정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진천군측은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관련 자료를 정밀 검토한 뒤 잘못된 사실은 바로 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진천군은 선생 순국 100주년을 맞아 긴념관 건립, 해외 숭모 사업 등 선생 추모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진천 출신인 보재는 1907년 이준 열사 등을 이끌고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 대한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그는 간도 지방에 최초 민족교육 기관인 서전서숙을 세우고 북만주에 해외 첫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했다. 선생은 망국의 한을 품고 연해주에서 임종할 당시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니 어찌 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마라”고 유언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그에게 추서했다.
한덕동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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