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20년이 지난 1966년. 무명 독립운동가의 아들 이해동은 서울 종로구 옥인동 ‘벽수산장’에 자리 잡은 유엔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언커크)에서 일하는 통역비서다. 언커크의 사무실로 쓰이는 벽수산장은 친일파였던 윤덕영이 지은 별장이다. 평범하던 그의 일상은 윤덕영의 막내딸 윤원섭이 나타나면서 달라진다. 벽수산장 내 아무도 몰랐던 비밀의 방을 찾아냄으로써 파견 온 외교관에게 ‘옛 주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친일파 윤덕영의 아호를 따 벽수산장이라 불렸고 이후 언커크 본부로 쓰이다 1973년 철거된 공간. 크고 아름다운 이 대저택은 이해동에겐 적산(敵産)인 동시에 윤원섭에겐 유산(遺産)이다. 전혀 상반된 내력을 가진 두 인물의 삶이 교차하며 충돌하는 상징적 공간 벽수산장은 그 자체로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품는다. 작가는 “물질로도 정신으로도 박멸된 벽수산장의 예를 통해 적이 남긴 유산 앞에 선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고자 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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