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공격 유도'는 외환죄? 외환죄가 뭔지 따져보니
- 기자, 이선욱
- 기자, BBC 코리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에서 '북방한계선(NLL)에서의 북 공격 유도'라는 표현이 발견되면서, 노씨와 계엄 관련자들에게 외환죄(외환유치죄) 혐의를 추가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접경지역 주민들과 일부 시민사회 단체들은 26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 4명을 외환죄에 해당하는 '일반이적죄'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9일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을 같은 혐의로 고발한 바 있으며, 지난 20일엔 '외환 유치 의혹'을 전담하는 별도 팀을 만들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외환죄가 무엇인지, 이번 계엄 과정에서 드러난 혐의에 외환죄 적용이 가능한지 알아봤다.
외환죄가 뭐길래?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내란죄와 외환죄 모두 국가를 문란하게 하는 범죄"이지만 "내란은 내국인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외환죄는 외국을 통해서 이뤄지는 범죄"라고 설명한다. 다른 나라를 통해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는 범죄라는 뜻이다.
현행 형법은 외환유치죄, 여적죄, 일반이적죄, 간첩죄, 모병이적죄, 시설제공이적죄 등 8개 죄를 '외환의 죄'로 규정하고 있다.
타국의 공격이나 전쟁을 유발하거나 기밀을 누설하거나 적국의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행위 등이 외환의 죄에 해당한다. 이들은 미수에 그치더라도 처벌 대상이 된다.
이중 이번에 논란이 되는 것은 형법 제 99조 일반이적죄와 제 92조 외환유치죄다.
일반이적죄는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를 말한다. 적국의 공격을 유도해 실제 국군에 해를 초래했거나, 미수에 그쳤어도 이를 의도했으면 일반이적죄가 적용될 수 있다.
26일 윤 대통령 등을 외환죄 혐의로 고발한 접경지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에서 북 공격 유도 메모 내용을 지적하며 이는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한 자에게 적용되는 형법 제99조 일반이적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외환유치죄는 "외국과 통모하여 전단을 열게" 하거나, "대한민국에 항적한" 행위를 말한다. '전단을 연다'는 말은 전투를 개시한다는 뜻이고, 항적은 적대행위를 한다는 뜻이다. 즉 외국과 공모해 한국을 공격하게 하거나 적대행위를 하게 한다는 말이다.
외환죄 적용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외환죄 중 일반이적죄 적용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접경지 주민들의 고발을 대리한 김종귀 변호사는 BBC에 "공격 무기로도 사용되고 있는 무인기를 영공을 침범해 침투시킨 행위"가 "상대방한테 대한민국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줬다"며, 이것이 사실일 경우 "일반이적죄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무인기를 통한 "전단 살포 의혹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찰 목적에 그치지 않고 굳이 김정은을 비방하는 내용의 전단까지 뿌렸다"면, "이렇게까지 했는데 군사적 반격을 안 할 거냐는 식으로 떠민 셈"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 10월 국군이 보낸 무인기가 평양 상공을 침투했으며 발사지가 백령도라고 공개한 바 있다.
계엄 사태 이후 민주당은 군이 일부러 이 무인기를 침투시켜 계엄 명분을 만들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며, 군은 이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또 '오물풍선 원점 타격 지시'에 대해서도 "합참에 원점타격을 지시했다는 사실만 밝혀내면 예비 음모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군이 북한 오물풍선 발생지에 대한 원점 타격을 검토했다는 의혹에 대해 김 전 장관 측 유승수 변호사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김 전 장관이 "타격할 수 있는 태세까지도 갖추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면서 이는 "국방부장관으로서 지극히 정당한 사무"라고 밝혔다.
한편 합참은 같은 날 출입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군은 오물·쓰레기 풍선 상황에서 실제 포격을 검토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노상원 전 사령관의 수첩에서 나온 'NLL 부근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메모도 사실로 밝혀질 경우 외환죄 적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질의에서 "NLL 부근에서 국지전을 유도하고 총격전을 유도했으면, 이건 외환죄에 해당되는 것이냐"는 정청래 위원장의 질문에 "그런 의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답했다.
노 변호사도 오물풍선 원점 타격, NLL에서의 북 공격 유도 등이 "군사상 이익을 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형법 99조의 일반이적죄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도발을 막아야 되는 대한민국 군대가 일부러 도발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군사상 이익을 해하는 것으로 볼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노 변호사는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상 형법 92조의 외환유치죄를 적용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쟁점은 북한의 도발을 유도한 행위를 함에 있어 '북한과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다. 외환유치죄에 "외국과 통모하여"라는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통모는 '남몰래 서로 통하여 공모한다'는 뜻이다.
"통모는 최소한 연락에 의한 합의가 있어야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외환유치죄로 보기는 좀 어렵고,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김 변호사 역시 "외환유치죄는 외국과 직접 통하는 것"이라며 이번에 드러난 혐의는 "이런 것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에 무력 도발을 요청했던 '총풍사건'
한편 이번 외환죄 공방과 관련해 지난 1997년 북한에 무력 도발을 요청했던 이른바 '총풍 사건'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총풍사건은 지난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오정은 당시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건이다. 이들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진영에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중국에서 만난 북한 참사관에게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여 긴장을 조성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1998년 당시 여당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는 이들 3명에 대해 형법상 외환유치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이 죄는 적용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외환유치죄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선거에 이용할 목적으로 무력시위를 요청한 것일 뿐 전쟁을 기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 2003년 확정 판결에서 이들이 북한 관계자에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들이 "총격요청을 모의했다는 진술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를 적용해 이들에게 징역 2~3년, 집행유예 3~5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의도적으로 안보 불안을 조성해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했다는 이른바 '북풍'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당시에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이 계엄을 위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는 총풍을 뛰어넘는 북풍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