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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hyamaka and the non-existence of a fundamental level

2023, Buddhism and Culture

A brief popular piece on Madhyamaka for a Korean publication. The original English follows the Korean translation.

불교문화 산책 사유와 성찰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것의 의미 대승불교는 크게 두 가지 학파로 나뉜다. 용수 를 시조로 두며 반야부 경전들을 근본으로 삼 는 중관학파가 있고, 세친과 무착을 시조로 두 며 『능가경』, 『해심밀경』과 같은 경전들을 근 본으로 삼는 유식학파가 있다. 두 학파 모두 직 관에 반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듯한 주장들 얀 웨스터호프 옥스퍼드 대학교 불교철학 교수, 본지 편집위원 을 여럿 펼치는데, 필자는 이 글에서 ‘모든 것 이 공하다’는 중관학파의 가장 잘 알려진 주장 중 하나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관학파와 근본적인 공(空)함 이 주장을 해석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모든 것이 다른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의 미로 이해하는 것이다. 전체는 그 부분들에, 결과는 원인에, 개념은 이를 구성해 낸 정신에 의존한다. 부품들 없이는 자전거가 존재할 수 없으며, 볍씨 없이는 싹 도 날 수 없고, 개념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정신 활동이 없다면 ‘사람들의 평균 키’ 와 같은 개념도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듯하나, 보다 직관 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의존의 연쇄가 끊기지 않는다는 중관학 파의 생각이다. 전체를 이루는 각 부분에서 우리는 더 많은 부분들을 찾을 수 있 고, 모든 원인에는 이를 야기한 또 하나의 원인이 있으며, 모든 개념은 또 다른 개 념 구조에 근거해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물리적 원 자, 제1원인자, 혹은 개념 구조의 연쇄가 끝나는 지점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 81 장이 얼마나 타당한지와는 별개로, 이러한 의존 관계를 일종의 ‘빌려오는’ 관계로 이해할 때에는 분명한 문제가 따른다. 중관학파에 의하면 자전거는 바퀴와 기어, 브레이크와 같은 부품들의 합으로부 터 기능을 빌려오고, 싹은 마찬가지로 씨앗으로부터 속성들을 빌려오며, 복합적 인 개념 또한 그것을 구성하는 더 단순한 개념들로부터 그 속성을 빌려온다. 이렇 듯 한 대상이 다른 대상에게 무언가를 빌려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앞선 대상으로 부터 이를 빌려왔기 때문이라는, 이 ‘빌려옴’의 연쇄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연쇄 전체가 실은 첫 번째 고리에 근거해 있으며, 연쇄를 따라 쭉 전달된 속 성은 본래 이 첫 번째 고리만의 고유한 속성으로 여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러나 중관학파에서는 반대로, 실제 현금이 없는 상태에서 수표를 끝없이 다른 수표로 정산하는 것과 같은 체계를 제시하는 듯하다. 이 점은 이미 유식학파에서 도 지적한 바 있다. 무착은 만일 연쇄의 모든 고리들이 앞선 고리에 의존한다면, 무 한한 연쇄는커녕 어떠한 존재도 성립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집이 토대가 없다면 무너지게 되듯이, 일체의 비의존적, 독립적 존재를 부정하는 중관학파의 공론은 결과적으로 어떠한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 허무주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중관학파의 견해와 불교 수행 이러한 비판은 두 가지 흥미로운 의문점을 낳는다. 첫째, 모든 것이 다른 무언 가에 의존한다는 중관학파의 공론을 어떻게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가? 그리고 둘째, 존재에 대한 중관학파의 견해가 불교 수행의 관점에서는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가? 모든 것이 공하다는 중관학파의 이론이 모순적이지도, 허무주의로 귀결되지도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수학적으로 입증 가능하다. 유감스럽게도 그 내용을 이 짧 은 글에서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신 중관학파 공론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 여주는 두 가지 비유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통화(通貨) 제도의 비유이다. 82 갈애란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얻고자 하는 욕구와, 우리가 처해 있는 불 만족스러운 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이 다. 모든 것이 공하며 상호 의존적이라는 생각은 윤회의 뿌리인 갈애를 끊는 데 도움을 준다. 일체 대상의 존재론적 토대를 부정하는 중관학파의 공론은 모든 형태의 갈애를 끊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통찰의 원천이다. 혹자는 현금과 수표의 금전적 가치가 궁극적으로는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덩이의 가치에 기반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렇지 않다. 돈이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치 있는 다른 것에 토대를 두어야 할 필요는 없다. 지폐나 동 전, 장부의 품목과 같은 특정 사물들이 통화 가치를 지닌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합의만 있으면 될 뿐이다. 이처럼 통화 가치에서의 의존 관계는 별도의 종착점 없 이 순환적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비유는 어떠한 지반도, 토대도 없는 집에 관한 것이다. 이 집을 이루는 모든 부분들은 자유낙하 중이지만, 각 벽돌과 창문, 문틀 하나하나가 같은 속도로 떨어지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집의 전체적인 구조는 보존된다. 집을 지탱하는 땅 없이 모든 부분들이 함께 낙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부분이 집의 다른 부분 들과 맺고 있는 공간적 관계는 유지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관학파에서는 일반 사물들 또한 별도의 자립적 토대 없이도 서로 의존 관계망을 이루며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은 공하며 상호 의존적 모든 것이 공하다는 중관학파의 입장, 그리고 이것이 수반하는 상호 의존성에 대한 논의는 불교 수행에서 중시하는 바와는 다소 거리가 먼, 매우 이론적인 이야 83 기로 보일 수 있겠으나, 사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 지한다. 부처님께서는 갈애(愛)가 실존적 고통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셨다. 갈애란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얻고자 하는 욕구와, 우리가 처해 있는 불만족스러운 상 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언제나 우리와는 독 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것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중 일 부만을 획득하고 일부는 버리고자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따라서 모든 것이 공하며 상호 의존적이라는 생각은 윤회의 뿌리인 갈애를 끊는 데 도움을 준 다. 가령 현실에서 사물들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원리를 스스로 잘 이해하고 있다 고 믿고 싶어 하는 형태의 갈애 역시 ‘나(我)’의 실체성에 대한 환상을 지속시키며, 끝없는 윤회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단 한 가지 방식으로 세계가 이루어져 있기를 바라곤 한다. 이러한 갈애는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갈애가 아닌 ‘견취(見取)’, 즉 이론에 대한 갈애이다. 현실에는 어떠한 근본적 층위도 없다고 보 는 중관학파의 입장은 그러한 층위를 발견하고 이에 집착하려는 욕구를 약화시킨 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물리적 원자든, 정신적 존재자든, 수학적 대상이든 간 에 궁극적 실재에 대한 어떠한 믿음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 중 관학파는 자신들의 공론 역시 연기적으로 형성된, 공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만 물의 공함을 궁극적 진리로 여기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이 궁극적 진리를 발견해 낸 실체로서의 ‘나’의 존재 모두를 기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일체 대 상의 존재론적 토대를 부정하는 중관학파의 공론은 정교하고도 탁월한 철학적 작 업물일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갈애를 끊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깨달 음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통찰의 원천인 것이다. 번역|조연우·권건우 얀 웨스터호프(Jan Westerhoff)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SOAS 런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옥스퍼드와 더럼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 다. 현재 옥스퍼드대 불교철학 교수이자 레이디 마가렛 홀(LMH) 소속 펠로,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로는 『Ontological Categories』(2005), 『Nāgārjuna’s Madhyamaka』(2009), 『The Golden Age of Indian Buddhist Philosophy』(2018), 『The Non-Existence of the Real World』(2020) 등이 있다. 84 Madhyamaka and the non-existence of a fundamental level Jan Westerhoff Mahāyāna Buddhism divides into two main schools of thought: Madhyamaka, which is based on the Prajñāpāramitāsūtras and goes back to Nāgārjuna, and Yogācāra, based on texts like the Laṅkāvatārasūtra and the Saṃdhinirmocanasūtra, going back to Asaṅga and Vasubandhu. Both schools make a number of claims that might appear counterintuitive or difficult to understand. In this article I will look at one of the Madhyamaka’s most famous claims, the claim that everything is empty. One way of interpreting this claim is by understanding it as saying that everything depends on something else. Wholes depend on parts, effects on causes, and conceptual constructions on the conceptualizing mind: without its parts, there would be no bicycle, without a grain of rice there would be no rice-sprout, and without the conceptual activity of humans there would not be the property of the height of the average man. While this much seems uncontroversial, what is less intuitive is the Madhyamaka idea that these chains of dependence never terminate. For every part of a whole we can find further parts, for every cause of an effect there are prior causes that caused the cause, every conceptual construction is based on entities that are themselves conceptually constructed. Independent of how plausible one finds the idea of a world in which there are no material atoms, no first cause, or no termination points for chains of conceptual construction, a specific problem arises when we conceive of dependence relations as a kind of borrowing. For the Mādhyamika, the bicycle borrows its function from all its parts, the wheels, the gears, the breaks and so forth put together, in the same way the sprout borrows its qualities from its cause, and a complex concept borrows its qualities from the simpler concepts that were used in its construction. But how can we make sense of a chain of borrowings where each person possesses the item he lends only because he has borrowed it from a previous member in the chain? Would we not want to assume that the whole chain has to be grounded in a first member who actually owns the property subsequently passed on through the chain? What Madhyamaka seems to be proposing is a system in which every cheque is cashed by providing a further cheque, without any real money standing behind the whole structure. This point was already brought to bear against the Mādhyamikas by their Yogācāra opponents. Asaṅga pointed out that if every item in a chain depends on a previous one, we do not end up with an infinite sequence of things, but with nothing whatsoever. A house without a foundation will collapse, and the Madhyamaka denial of anything independent, anything that does not itself depend on further things will result in nihilism, the position that nothing whatsoever exists. This criticism leaves us with two intriguing questions. First, how can we make sense of the Madhyamaka theory that everything depends on something else without ending up with nihilism? And second, what is the relevance of the Madhyamaka picture of existence from the perspective of Buddhist practice? It is possible to provide a mathematically precise analysis of the Madhyamaka theory of universal emptiness that shows it to be neither contradictory nor leading to nihilism. Unfortunately, explaining this would go beyond the scope of this short essay, so I would instead like to introduce two analogies to illustrate the structure of the Madhyamaka theory. The first concerns the monetary system. While one might think that every piece of paper money and every cheque has to be backed in the final instance by some piece of gold held in some central bank, this is in fact not the case. Money does not need a foundation in ultimately valuable things; all that is required is a network of collective agreement by humans to treat specific things (bills, coins, items in registers) as the bearers of monetary value. Dependence for monetary value can, it seems, go all the way round in a circle, without ever requiring any independent stopping point. The second analogy concerns a house without foundations. Each of its parts is in free fall, but because each brick, each window, and each lintel falls at the same speed, the structure of the house as a whole is preserved. Even though there is no ground propping up the entire house, its structure is preserved because every element of the house retains its spatial relations to all the other elements, though all of them are moving together. In the same way objects could, for the Mādhyamika, be suspended in a network of dependence relations with each other, though the whole network is not grounded in anything independent that supports it. Despite the fact that the discussion of the Madhyamaka theory of the universal emptiness and the idea of interdependence it entails appears very technical, and might be considered somewhat remote from what matters from the perspective of Buddhist practice, it occupies a central place on the path to enlightenment. The Buddha has identified craving (ae, 愛) as the main cause of existential suffering. Craving, which incorporates both the desire to obtain things that we do not have, and the desire to get rid of whatever unpleasant state we might be in always involves things that exist objectively and independent from us, for if they did not exist in this way, what would be the point of gaining some of them, and trying to push others away from us? The notion of emptiness and the thoroughgoing interdependence of things is therefore able to cut through craving, the root of cyclic existence. This applies both to relatively coarse forms of desire and aversion, such as desire for pleasant objects of the senses and aversion towards illness and pain, as well as to more subtle forms of craving. Another form in which craving supports the illusory sense of a substantial self (a, 我) that keeps us trapped in the cycle of rebirth is by the desire to be right about how things exist at the most fundamental level of reality. We want there to be one way the world is really structured in its most basic form, and we want this to be the way we have discovered it to be. This is not a craving for things, but a craving for theories (kyŏnch’wi, 見取), and to the extent that Madhyamaka denies that there is a fundamental level of reality it undercuts our desire to identify and to hold on to such a level, a belief in ultimately real things, whether these are the fundamental particles of physics, mental entities, mathematical objects, or some other things. Madhyamaka also argues that its own theory of emptiness is empty too, a dependently arisen object in itself, so that the desire to hold on to emptiness as the final truth of things, thereby supporting the existence of a substantial I that has identified this final truth is equally baseless. The Madhyamaka theory of emptiness, and its rejection of a fundamental level of existence is therefore not only an intricate and fascinating piece of philosophical theorizing, but, in its ability to undercut craving of all forms, a source of insight of the greatest importance for the traveler on the path to enlighte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