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안을 작성하는 것은 어려워요
다른 기획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획자가 작성해야 하는 각종 문서들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작성해야 하는 것인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식에 맞추어 작성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양식을 어떻게 구비할 수 있을지, 양식을 구하더라도 그 내용을 어떻게 다 채워 넣을 수 있을지, 꼭 작성해야 하는 것들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이 기획 업무의 결과물이라고 내어놓았을 때 비웃음거리가 되거나, 비난받진 않을지에 대한 그런 종류의 스트레스였다.
물론, 기획자의 성격에 따라 이런 부분을 고민조차 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고, 이런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이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과 성격이 정말 비슷해서, 예전에 충분히 겪었던 종류의 스트레스였기에 충분히 공감해줄 수 있었다.
누가 문서를 보는 걸까요?
내가 내어놓았던 고민에 대한 답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보자.
그 문서를 읽는 사람의 관점과 요구사항에 맞추어 작성하는 것
나는 새로운 회사나 팀에 기획 업무를 위해 합류하게 되었을 경우 보통 2가지 작업을 수행한다. 아래 작업들이다.
- 기존 업무 수행 방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한다.
- 함께 일할 개발자 및 디자이너들이 어떠한 업무 수행 방식을 희망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만약 기존 업무 수행 방식에 기존 팀 인원들이 충분히 만족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기존 방식대로 업무를 수행하면 된다. 만약 기존 업무 수행 방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거나, 기존 팀 인원들이 기존의 업무 수행 방식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면,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보고 그들이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구상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기획자가 만들어내는 기획 문서를 가장 많이 보고,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기획자 본인보다는 그 기획 문서를 계속 들여다보며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디자이너와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들이 필요한 문서를, 그들의 관점에서 작성하고자 한다.
정답이 있는 건가요?
사실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꼭 ‘기획 산출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모두 작성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는 한 가지의 문서도 작성할 필요도 없다. 기획자가 어떻게 해달라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기재하지 않아도, 함께 충분히 논의하고 토의함으로써 합의를 일구어냈다면, 그다음에는 그 합의사항에 맞추어 디자인과 개발자가 협업을 통해 어떤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초창기 회사나 프로젝트의 경우 모든 것들을 문서화하고, 정해진 방식대로만 수행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기획자는 오히려 필요 없기도 하다. 괜히 기획자가 존재함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늦어짐으로써 출시 시기가 늦추어지거나, 커뮤니케이션에 혼선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단 기획자로써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함께 협업함으로써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기획자 스스로가 완벽한 정답을 찾아내려고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굳이 정답이 있는 거냐고 물어본다면, 정답은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답이다.
그들의 요구사항을 확인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봄으로써 그들의 업무 수행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해보자. 거창한 정책서나, 디테일한 기능 정의에 대한 문서가 꼭 필요하진 않다고 하면, 따로 시간을 내어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저 회의 때 진행했던 내용만 기록해두어도 그게 곧 기획 문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
물론, 지금 현업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획 문서의 양식은 오랜 시간을 거쳐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과 노력을 담아내었기에 효율적인 좋은 문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것들을 따라서 작성해보고, 공부하는 것 또한 기획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기획 업무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 정해진 양식을 굳이 따라가야 할 필요성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는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의견이다.
만약 누군가가 꼭 기획 문서를 작성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맞는 생각이다. 회사 내부 프로세스를 정립하기 위해서 필요할 수도 있고, 새로운 직원들에게 원활하게 기존 업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할 수 있다.
원문: June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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