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이 진작 끝나, 사내에 작성한 수습 회고글을 블로그에도 옮깁니다.
전직장에서 되게 확실하게 배운게 하나 있는데, 개발팀이 개발만 하면 망한다 였다.
좀 더 풀어나가자면,
회사를 이루는데는 크게 2가지 축이 있다.
- 문제를 정의하고 찾아내는 축
- CEO(를 비롯한 임원진) / 기획 / PM / 영업 / 컨텐츠 등
- 문제를 해결하는 축
- 개발 / 마케팅 / 디자인 등
여기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개발자의 입장에서 개발로만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비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다.
마치 "망치질밖에 모르는 사람은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것" 처럼 말이다.
- 이게 진짜 고객이 원하는 것일까?
- 이 기능이 진짜 CS 운영자들분들께 필요한 기능일까?
- 이렇게 기능 추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고객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 우리팀의 개발인력이 부족한것은 단순히 사람이 부족해서일까?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 회사가 채용해줄때까지 기다리는게 맞을까? 급한 당사자가 우리라면 우리가 발벗고 채용에 나서야하는 것은 아닐까?
- 요청한 저 기능은 현재는 구현하기 어려운데, 진짜 이 기능이 필요해서 기획한것일까? 아니면 사실은 본질적인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면 1줄의 코드 없이도 복잡하거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종종 얻게 된다.
이런 경험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개발자로서의 역량에 대해 이것 저것 고민하게 해준다.
개발 역량만 키운다고 진짜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말이다.
개발자도 하나의 RPG 직업군처럼 육각형 능력치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크게 보면 다음과 같다.
- 개발역량 (설계/클린코드/튜닝등등 모든 개발 요소들)
- 기획/디자인 등을 비롯한 UX 역량
- 커뮤니케이션/소통을 비롯한 협업
- 주변 개발자들을 성장시키는 역량
- 자신을 비롯한 팀 브랜딩 (블로그/채용등)
- 기타 다시 함께 일하고 싶은 여러 역량들
일반적으로 큰 기업에서는 이중 1~2개의 역량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개발자로 평가 받게 된다.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이 모여서 하나의 큰 집단을 이루기 때문에, 어설픈 서브 역량으로는 제대로 회사에 기여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핵심역량 1~2개 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들이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고, 제대로 활용해 보는것이 쉽지는 않다.
반면에 인프런에서의 지난 3개월은 이런 육각형 능력치의 전부를 활용해 볼 수 있는 시간이였다.
개발파트의 시니어 엔지니어로서
- 신규 기능 설계
- 개발파트 코드리뷰
- 장애 대응
- 모니터링/알람 등 후속 조치 작업
- 서비스 성능 튜닝
- 차기 개발 스택 준비
- 서버/프론트 면접관
- 리팩토링2 스터디 진행
- Confluence 등 협업 도구 도입
개발자가 아닌 인프런의 구성원으로서
- 어드민 검색 기능 정리
- 제품 개발 파트 (개발자 + PO) 워크샵 진행
- 신규 채용 Notion 작성과 톤앤매너 정리
- 3번의 전사 (혹은 개발파트) 발표
- 지난 3년간 인프런 장애 정리 및 회고
-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앞으로 겪을 일
- 문서 가이드
- 채용 공고 작성
- 데이터리안과의 협업
- 주간 인프런 제안 및 작성
- 컨텐츠 리뷰
개발자로서의 역량 외에 다른 역량이 진짜 개발자에게 필요할까? 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할수는 없다.
다만 그동안 만난 수많은 뛰어난 개발자들 사이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기술을 포기한다는건 아니다.
그들과 같이 협업이 가능한 수준까지의 개발 역량을 쌓는건 기본값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육각형 모델을 쌓는데 있어서 인프런은 아주 좋은 장소가 될 수 있을것 같다.
아마 인프런도 투자 라운드가 진행됨에 따라 수백명 ~ 수천명의 회사가 될테고, 그때는 이렇게 여러 능력치를 쌓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많은 경험치를 누적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애정하는 책 중에 하나인 열정은 쓰레기다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나의 그림 실력은 부족하고, 업무 관련 실력은 평범하고, 글쓰기 재능은 그럭저럭 쓸 만하지만 뛰어나지는 않았다.
유머 감각 또한 괜찮지만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
여기에 인터넷을 남들보다 일찍 알았다.
아는 양은 많지만 평범한 수프 같다.
내가 익힌 기술들 중 그 무엇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평범한 기술들이 하나로 합쳐지자 나는 강력한 시장성을 갖게 됐다.
지금 내가 가져야할 스탠스인것 같다.